2018年07月01日「宮の納入金を納めるキリスト 성전세를 내시는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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宮の納入金を納めるキリスト 성전세를 내시는 그리스도

日付
説教
川栄智章 牧師
聖書
マタイによる福音書 17章22節~27節

聖句のアイコン聖書の言葉

17:22一行がガリラヤに集まったとき、イエスは言われた。「人の子は人々の手に引き渡されようとしている。
17:23そして殺されるが、三日目に復活する。」弟子たちは非常に悲しんだ。
17:24一行がカファルナウムに来たとき、神殿税を集める者たちがペトロのところに来て、「あなたたちの先生は神殿税を納めないのか」と言った。
17:25ペトロは、「納めます」と言った。そして家に入ると、イエスの方から言いだされた。「シモン、あなたはどう思うか。地上の王は、税や貢ぎ物をだれから取り立てるのか。自分の子供たちからか、それともほかの人々からか。」
17:26ペトロが「ほかの人々からです」と答えると、イエスは言われた。「では、子供たちは納めなくてよいわけだ。
17:27しかし、彼らをつまずかせないようにしよう。湖に行って釣りをしなさい。最初に釣れた魚を取って口を開けると、銀貨が一枚見つかるはずだ。それを取って、わたしとあなたの分として納めなさい。」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マタイによる福音書 17章22節~27節

原稿のアイコン日本語メッセージ

エルサレムを目指して進まれる主イエスの一行の旅は、はるか北に位置する町、ヘルモン山のふもとのフィリポ・カイサリヤの地から出発しました。思い出してください。「フィリポ・カイサリヤからの出発」とはどのような出発だったでしょうか。そこで、ペトロを代表とする弟子たちの「あなたこそ、生ける神の子キリストです」という信仰告白から始まったのです。ですから、本日出てくるガリラヤのカファルナウムという町は、ペトロの家もあり、マタイ福音書の前半部分においては宣教活動の拠点ではありましたが、ここではエルサレムに向かうただの通過点にすぎませんでした。主イエスは、このエルサレムへ向かう旅が「受難の道」であることは、信仰告白を聞かれてすぐに一回目の受難告知をされて、当初から明らかにされましたが、ここガリラヤにおいても、そのことに念を押すように二度目の受難告知をされます。時は過越しの祭りの約一か月前の頃でありました。17:22-23をご覧ください。

“一行がガリラヤに集まったとき、イエスは言われた。「人の子は人々の手に引き渡されようとしている。

そして殺されるが、三日目に復活する。」弟子たちは非常に悲しんだ。”

新共同訳聖書の翻訳では微妙なところまで確認できませんが、文の構造を見ますと「人の子は、人々の手に渡されて、三日目に復活させられる」というように二つの動詞である「渡される」、「復活させられる」が共に受動態になっています。これは通常、「神様によって」と言う言葉が省略されている、ユダヤ人独特の表現であると考えられます。したがって、神様の目から見るときに、主イエスの一行がエルサレムへ向かう旅の目的は何かと言いますと、神様のご計画通り、「引き渡され十字架に架けられ」そして「復活させられる」ために、つまり父なる神の御心を成し遂げるためであるということが分かります。しかし、弟子たちの目から見るなら、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もたらされる神の国とは、楽しく、喜びに満ちたものであることを確信していました。決してイスラエルの指導者である祭司たちや律法学者が、この神の国に敵対するとは想像できませんでした。この旅はまさに、栄光のエルサレム入城だったのです。しかし、イエス様がどんなに山の上で栄光の姿に変貌されたとしても、どんなに大いなる奇跡の力をもっておられるとしても、受難告知から分かるように神が御子を人々の手に渡されるという予定は変わることがありませんでした。イエス様の口から二度目の受難告知をされることを聞いて、たとえ、その真の意味について、まだ十分には理解してはいませんでしたが、弟子たちは非常に悲しくなりました。そのような状況においてユダヤ当局から、神殿税を集める者たちがペトロのところに来て「あなたたちの先生は神殿税を納めないのか」と尋ねて来たのです。毎年、この頃、すなわち過越し際の約一か月前になると一人あたり1/2シェケルつまり、2ドラクマの神殿税の徴収が始まります。2ドラクマというのは、二日分の労働の賃金に相当しますから、現在の日本で考えると2万円くらいだと考えてください。神殿税は、主に神殿の維持、管理などに用いられ、祭司などは免除されましたが、基本的にイスラエルの成人男子であればほとんどの人が一律に支払わなければならない納入金でした。出エジプト記30:12-13のみ言葉を見ると神殿税がどのような性質のものだったのか理解できます。

“あなたがイスラエルの人々の人口を調査して、彼らを登録させるとき、登録に際して、各自は命の代償を主に支払わねばならない。登録することによって彼らに災いがふりかからぬためである。登録が済んだ者はすべて、聖所のシェケルで銀半シェケルを主への献納物として支払う。一シェケルは二十ゲラに当たる。”

銀半シェケルとは、災いが降りかかるのを防ぐ「命の贖い」金であり、もし、年に一度のこの税金を支払わなければ、牢獄行き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が、人々から神を神として恐れない人であり、神殿を無視する人だと思われたことでしょう。ペトロは一回目の受難告知を聞いたときに「主よ、とんでもありません」とイエス様を諫めて、逆に「サタン、退け」と叱られましたから、今回、受難告知を聞いた時にはさすがに静かにしているものの、先生に対する不要な誤解や、変な噂が立たないようにあくせくしており、「あなたたちの先生は神殿税を納めないのか」という質問に対して力を込めて、「もちろん納めます」と自信をもって答えました。ペトロ自身、普通に考えてもイエス様が神殿に対する義務を果たすのは当然だと思われたのでしょう。しかし、ペトロがイエス様のことを神の子であると信じているならば、イエス様も神殿税を当然払うべきであるとは必ずしも言いきることはできません。むしろ、神の子であるなら、神殿の税金から自由であるのが当然なのかもしれません。以前フィリポ・カイサリヤで、ペトロがした信仰告白は、生活のあらゆるところで試されるのです。そして最大の試練は、何といってもイエス様が十字架に架かった事件であります。主イエスが人々の手に引き渡されて十字架に架かられ、惨めな死に方で人前で晒されたのは事実であり、この事件の後にも「あなたこそ生きる神の子メシアです」と告白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弟子たちは、聖霊の力によってそのような告白へと導かれるのですが、信仰告白は、それが生きた心からの告白なのかどうか、生活の中で常に試されるのです。イエス様は、ペトロに対して、ご自身が神殿税を支払う義務から自由であり、免除されていることを教え始められました。ペトロが家に入ると、イエス様の方からペトロに話しかけられます。25節途中から26節をご覧ください。

“「シモン、あなたはどう思うか。地上の王は、税や貢ぎ物をだれから取り立てるのか。自分の子供たちからか、それともほかの人々からか。」ペトロが「ほかの人々からです」と答えると、イエスは言われた。「では、子供たちは納めなくてよいわけだ。”

人間の王様が自分の息子たちから徴税しないように、神殿の神である、天の王はその子から税をとることはありません。26節の「子供たちは納めなくてもよい」と言う箇所は、直訳しますと、「子供たちは(税金から)自由である」と書かれています。この時、ペトロが気づいたかどうかは分かりませんが、イエス・キリストと結ばれて養子とされた神の子供たち、つまりペトロをはじめとするキリスト教会についても、同じように神殿税から自由にされていると言えるのです。現代の私たちに適用するなら税金を払う義務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なぜならイエス様の弟子たちの国籍はこの世にあるのではなく、天にあり、神の子としての市民権をもっているからです。イエス様の教えはさらに続きます。27節をご覧ください。

“しかし、彼らをつまずかせないようにしよう。湖に行って釣りをしなさい。最初に釣れた魚を取って口を開けると、銀貨が一枚見つかるはずだ。それを取って、わたしとあなたの分として納めなさい。」”

この釣りの奇跡には少し物言いが入りそうです。なぜなら、これまでイエス様の奇跡とは、気の毒な貧困者や、病いにある者を救うために行われてきました。決して自分自身のために、利己的な奇跡を、イエス様はなされなかったのです。例えば、自分の腹を満たすために石に向かって「パンになれ」とは言いませんでした。ところが、今回に限っては、あえて利己的とも見えるような奇跡を行いました。これは、一体なぜでしょうか。第一に、そもそもイエス様は、1/2シェケル、二人分でも1シェケルほどの税金であれば、ご自分の会計から十分に出せたはずですが、あえて奇跡を行いました。そのことを通して、ペトロに宮の納入金を納める義務がメシアにはないことをはっきりと教えるためだったのです。つまり、ペトロに釣りをさせて、一番最初に釣れた魚の口から銀貨が一枚見つかるはずだから、それを納めなさいと言いました。本来、自分の所得からとか、自分の財布の中から捧げなければ意味のない税金を、魚の口から取って納めさせることによって、ご自分には神殿税を納める義務がないことを弟子たちに対して、はっきり示されたのであります。そして、同時にこの奇跡は主イエスがただの人ではなく、自然をも支配しておられる神の子であられることを悟らせる標しにもなりました。第二に、ユダヤ当局者たちに対しては、躓かせることのないよう、必要のない葛藤を避けるようにとの配慮がなされています。少なくとも生ける神の子であるイエス様お一人について言えば、神殿税を払わなくてもよい自由があったはずです。なぜなら、イエス様は、罪びとではなく、罪の贖いのための神殿税を納める必要もない、栄光の姿に変貌される栄光の主であられるからです。しかし、ご自分の正当な自由を行使することなく、自発的に神殿税を支払われました。ご自分の正当な自由を行使するより、他の人を愛して配慮することを選ばれました。イエス様が持っておられる栄光の本来のお姿にとどまろうとはされず、かえって自分を無とされ、すべての特権をお捨てになられ、僕の姿をとり、ご自身を罪人の一人として、神の子らではないよそ者の一人として数えられることに、甘んじられたということなのです。これは神の御心でありました。神は時の満ちるに及んで、御子を女から生まれさせ、律法の下にお遣わしになられました。それは、律法の下にある者を贖い出すためであり、私たち罪びとに子たる身分を授けるためだったのです。弟子たちが先ほど、受難告知において悲しんだ「十字架の死」の真の意味とは、それはメシアの謙卑の完成、神の御心の成就に他ならなかったのです。マタイ5:17には次のようなみ言葉がございます。

“わたしが来たのは律法や預言者を廃止するためだ、と思ってはならない。廃止するためではなく、完成するためである。”

イエス様は決して律法を廃止するために来られたの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ご自分が罪人の一人として数えられ、律法の下に置かれることに甘んじられました。それは律法を完成するためだったのです。この後、イエス様の捧げられる十字架の犠牲によって、神殿を完全に不必要にさせるのでありますけれども、その死の前に、再び、イエス様は、ご自分を通して律法を完成させるため、神殿に税金を払うことを希望されたのです。イエス様が律法の下に罪びとの一人として遜られたことは、なんと、かたじけない恵み、なんという恐れ多い謙卑でありましょうか。ですから、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の受難告知の真の意味を知る者として、贖い金として、或いは義務として神様に献金を捧げるのではなく、愛の動機から自発的に喜んで捧げるのであります。十字架の贖いと復活の出来事に心を痛め、悲しむのではなく、むしろ、そのことによって天の国籍を持つ神の子とされたことに感謝しながら、恵みによって自分に与えられた光栄と、特権と、自由の用い方に心を留めるべきであります。与えられた自由と権利を自分のために行使するのではなく、罪赦された者として、恵みによって神の子とされた者として、愛によって遜り、他人に仕え、配慮する自由であります。

原稿のアイコンハングル語メッセージ

성전세를 내시는 그리스도

2018년 7월 01일 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마태복음 17장 22~27절

서론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시는 주 예수님의 일행의 여정은 먼 북쪽에 위치한 마을, 헐몬 산 기슭의 빌립보 가이사랴 땅에서 출발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빌립보 가이사랴에서의 출발」은 어떤 출발이었을까요? 바로 그곳에서 베드로를 대표로 한 제자들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신앙 고백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나오는 갈릴리의 가버나움이라는 마을은 베드로의 집도 있었고, 마태복음 전반부에서는 선교 활동의 거점이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단순한 경유지에 불과했습니다. 주 예수께서는 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이 「수난의 길」임을, 신앙 고백을 들으시고 곧바로 첫 번째 수난 예고를 하심으로 처음부터 분명히 하셨지만, 여기 갈릴리에서도 그 점을 강조하듯 두 번째 수난 예고를 하십니다. 때는 유월절 축제 약 한 달 전이었습니다. 17:22-23을 보십시오. 「」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신공동역 성경의 번역에서는 미묘한 부분까지 확인할 수 없지만, 문장 구조를 보면「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는 식으로 두 동사인 「넘겨져」, 「살아나리라」가 모두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보통 「하나님에 의해」라는 말이 생략된 유대인 특유의 표현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주 예수님의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의 목적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계획대로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그리고 「부활하시기」 위함, 즉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다가 올 하나님의 나라는, 즐겁고 기쁨으로 가득 찬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결코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적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여정은 바로 영광의 예루살렘 입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무리 산 위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하셨다 하더라도, 아무리 큰 기적의 능력을 지니셨다 하더라도, 수난 예고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아들을 사람들의 손에 넘기신다는 예정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두 번째 수난 예고를 들었을 때, 비록 그 참된 의미에 대해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제자들은 매우 근심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유대 당국에서 성전세를 거두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너희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매년 이맘때, 즉 유월절 약 한 달 전이 되면 1인당 반 세겔, 즉 2드라크마의 성전세 징수가 시작됩니다. 2드라크마는 이틀치 노동 임금에 해당하므로, 현재 일본으로 치면 약 2만 엔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성전세는 주로 성전의 유지, 관리 등에 사용되었으며, 제사장 등은 면제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의 성인 남성이라면 거의 모든 사람이 일률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세금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0:12-13의 말씀을 보면 성전세가 어떤 성질의 것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0장

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것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반 세겔은 재앙이 내리는 것을 막는「생명의 속전금」이었으며, 만약 일 년에 한 번 내는 이 세금을 내지 않으면 감옥에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두려워하지 않는 자, 성전을 무시하는 자로 여겼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첫 번째 수난 예고를 들었을 때 「주님,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라며 예수님을 만류했고, 오히려 「사탄아 물러가라」고 꾸지람을 들었기에, 이번 수난 예고를 들었을 때는 당연히 조용히 있었지만, 스승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나 이상한 소문이 나지 않도록 안달하며, 「너희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는 질문에 힘주어 「내신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베드로 자신도 평범하게 생각해도 예수님께서 성전에 대한 의무를 다하시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다면, 예수님께서도 성전세를 당연히 내셔야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성전의 세금으로부터 자유로우신 것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이전에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베드로가 했던 신앙 고백은 삶의 모든 곳에서 시험받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시련은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비참한 죽음으로 사람들 앞에 드러나신 것은 사실이며, 이 사건 이후에도 「당신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십니다」라고 고백해야만 했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그런 고백에 이르게 되지만, 신앙 고백은, 그것이 살아 있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고백인지 아닌지 삶 속에서 끊임없이 시험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자신께서 성전세를 내야 할 의무에서 자유로우시고 면제 받으셨음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집에 들어가자 예수님께서 먼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5절 중간부터 26절을 보십시오.

25 …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배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사람의 왕이 자기 아들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지 않듯이, 성전의 하나님이신 하늘의 왕도 그 아들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26절의「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는 구절은 직역하면 「아들들은 (세금에서) 자유롭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깨달았는지 알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양자로 삼아 주신 하나님의 자녀들, 즉 베드로를 비롯한 그리스도 교회 역시 마찬가지로 성전세에서 자유롭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대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세금을 낼 의무가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의 국적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계속됩니다. 27절을 보십시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이 낚시의 기적에는 약간의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예수님의 기적은, 불쌍한 가난한 자나 병든 자를 구원하기 위해 행해져 왔기 때문입니다. 결코 자신을 위해 이기적인 기적을 예수님께서 행하신 적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돌을 향해「떡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만은 일부러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것은 대체 왜일까요? 첫째, 애초에 예수님께서는 반 세겔, 두 사람 분이라도 한 세겔 정도의 세금이라면 자신의 재정으로, 충분히 감당하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베드로에게 성전세를 낼 의무가 메시아에게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베드로에게 낚시를 시켜 가장 먼저 잡힌 물고기 입에서 돈 한 세겔이 나올 것이니, 그것으로 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래 자신의 소득에서나 자신의 지갑에서 바쳐야 의미가 있는 세금을, 물고기 입에서 꺼내 바치게 함으로써 자신에게는 성전세를 낼 의무가 없음을 제자들에게 분명히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기적은 주 예수님이 단지 사람이 아니라 자연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하는 표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둘째로, 유대 지도자들에게는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려는 배려가 담겨 있습니다. 적어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한 분에 관해서는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시며, 죄의 속죄를 위한 성전세를 낼 필요도 없는 영광의 모습으로 변형하신 영광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정당한 자유를 행사하지 않으시고 자발적으로 성전세를 내셨습니다. 자신의 정당한 자유를 행사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니신 영광의 본래 모습에 머물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비우시고 모든 특권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을 취하시어, 자신을 죄인 중 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나그네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를 기꺼이 받아들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차매 아들을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보내셨습니다. 이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시고, 우리 죄인들에게 아들의 신분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방금 전 수난 예고에서 슬퍼했던 「십자가의 죽음」의 참된 의미는, 바로 메시아의 겸손의 완성, 하나님의 뜻의 성취에 다름 아니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5:17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결코 율법을 폐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죄인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시고, 율법 아래 놓이심을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완성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후 예수님께서 드리신, 십자가의 희생으로 성전은 완전히 불필요해지게 되었지만, 그 죽음 전에 예수님은 다시 한번 자신을 통해 율법을 완성하시기 위해 성전에 세금을 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 아래 죄인 중 한 사람으로 낮아지신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은혜이며, 얼마나 경외스러운 겸손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예고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자로서, 속전이나 의무로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동기로 자발적으로 기쁘게 드리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 사건에 마음을 아파하며 슬퍼하기보다, 오히려 그로 인해 하늘의 국적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심을 감사하며, 은혜로 자신에게 주어진 영광과 특권과 자유의 사용법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주어진 자유와 권리를 자신을 위해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죄 사함을 받은 자로서,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로서, 사랑으로 겸손히 낮아져 타인을 섬기고 배려하는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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