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年08月19日「結婚と離婚 결혼과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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結婚と離婚 결혼과 이혼

日付
説教
川栄智章 牧師
聖書
マタイによる福音書 19章1節~12節

聖句のアイコン聖書の言葉

19:1イエスはこれらの言葉を語り終えると、ガリラヤを去り、ヨルダン川の向こう側のユダヤ地方に行かれた。
19:2大勢の群衆が従った。イエスはそこで人々の病気をいやされた。
19:3ファリサイ派の人々が近寄り、イエスを試そうとして、「何か理由があれば、夫が妻を離縁することは、律法に適っているでしょうか」と言った。
19:4イエスはお答えになった。「あなたたちは読んだことがないのか。創造主は初めから人を男と女とにお造りになった。」
19:5そして、こうも言われた。「それゆえ、人は父母を離れてその妻と結ばれ、二人は一体となる。
19:6だから、二人はもはや別々ではなく、一体である。従って、神が結び合わせてくださったものを、人は離してはならない。」
19:7すると、彼らはイエスに言った。「では、なぜモーセは、離縁状を渡して離縁するように命じたのですか。」
19:8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たちの心が頑固なので、モーセは妻を離縁することを許したのであって、初めからそうだったわけではない。
19:9言っておくが、不法な結婚でもないのに妻を離縁して、他の女を妻にする者は、姦通の罪を犯すことになる。」
19:10弟子たちは、「夫婦の間柄がそんなものなら、妻を迎えない方がましです」と言った。
19:11イエスは言われた。「だれもがこの言葉を受け入れるのではなく、恵まれた者だけである。
19:12結婚できないように生まれついた者、人から結婚できないようにされた者もいるが、天の国のために結婚しない者もいる。これを受け入れることのできる人は受け入れなさい。」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マタイによる福音書 19章1節~12節

原稿のアイコン日本語メッセージ

イエス様はガリラヤを去り、エルサレムに向かう途上、ヨルダン川の東側のペレヤの地域に来ました。ガリラヤとペレヤは、領主ヘロデ・アンティパスによって治められている地域です。ヘロデ・アンティパスと言えば、自分の妻がいるにも関わらず兄弟の妻ヘロディアの事を気に入って、自分の妻にめとってしまった人物です。洗礼者ヨハネはそのことを正面からとがめ獄中に入れられてしまい、ついにはヘロデの宴会の席で処刑にされてしまいました。この、ペレヤという場所で、ファリサイ人がイエス様に近寄ってきて、あえて、大変敏感で、かつ現実的な問題である離婚の問題について質問をしました。“何か理由があれば、夫が妻を離縁することは、律法に適っているでしょうか”この問題は、現代においても週刊誌のゴシップを賑やかせていますが、夫婦仲において一つ確かに言えることは、夫婦の関係が円満になるとその家庭に平安が訪れ、険悪になると家庭に地獄のような痛みと混乱をもたらすということだと思います。皆様もそれぞれの家庭において天国と、地獄を体験されて来られ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ファリサイ人の質問は、旧約聖書の申命記24章を根拠としていました。申命記を見るとモーセは離婚を命じているように解釈できるからです。申命記24:1をご覧ください。

“人が妻をめとり、その夫となってから、妻に何か恥ずべきことを見いだし、気に入らなくなったときは、離縁状を書いて彼女の手に渡し、家を去らせる。”

男尊女卑の社会であった当時、離婚ができる要因について、ラビによっていろいろな解釈があったので、その離婚の要因に関する質問だと考えられます。あるファリサイ派のラビは、「妻に何であれ、気に入らないところがあれば、離婚してもよい」と解釈しました。そのような解釈に立つなら、ヘロデ・アンティパスの結婚も認められる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イエス様にヘロデの結婚を認めさせるなら、イエス様の名を地に失墜させ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この質問はイエス様を陥れる罠でありました。イエス様は、この質問に対して独自の解釈によって答えられました。4-6節をご覧ください。

“イエスはお答えになった。「あなたたちは読んだことがないのか。創造主は初めから人を男と女とにお造りになった。」そして、こうも言われた。「それゆえ、人は父母を離れてその妻と結ばれ、二人は一体となる。だから、二人はもはや別々ではなく、一体である。従って、神が結び合わせてくださったものを、人は離してはならない。」”

イエス様の解釈は、離婚そのものを禁止されました。その根拠を創世記1:27の“創造主は初めから人を男と女とにお造りになった。”という御言葉と、創世記2:24の“それゆえ、人は父母を離れてその妻と結ばれ、二人は一体となる。”という御言葉から引用しています。人が男と女とに創造されたというのは、最初から異性と組み合わせられることを前提として造られたということです。そして、神は結婚を「一体」という言葉によって描写することによって、男と女はもはや二人ではなく、ペアとして一体に組み合わされた、神秘的な結合体であるということを教えています。さらに、この男女の結合は、それぞれの父母を離れ、父母との結びつきを忘れさせるほどの説明しがたい神秘な結合であると言うのです。普通、子供が親を出すことは考えられないですね。それ以上に、夫は妻を出すことが考えられないというのです。ですから、離婚というのは、この神によって定められた聖なる結合を引き裂くことですから、何人によっても、離されてはならないというのです。神が宇宙の創造の初めに、結婚の制度を制定され、それを永遠の法として確立されたことを、イエス様は改めて確認しておられるのです。そう言えばイエス様の最初の奇跡もカナの結婚式における、水がぶどう酒に変わる奇跡でありました。結婚とはそれほど神聖なものなのです。主イエスの答えに対して、ファリサイ人は、モーセの権威を盾にしながら、イエス様に異議を申し立てました。19章7-9節をご覧ください。

“すると、彼らはイエスに言った。「では、なぜモーセは、離縁状を渡して離縁するように命じたのですか。」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たちの心が頑固なので、モーセは妻を離縁することを許したのであって、初めからそうだったわけではない。言っておくが、不法な結婚でもないのに(不品行以外の理由で)妻を離縁して、他の女を妻にする者は、姦通の罪を犯すことになる。」”

ファリサイ人の異議申し立てに対するイエス様の答えによれば、モーセがそのようにしたのは、モーセが離婚を命じた訳ではなく、アダムとエバが堕落した結果、生じた人間の罪深い状態において、離婚を譲歩せざるを得なかった、許容せざるを得なかった、その結果であるというのです。命令ではなく、許容に過ぎない。しかし、宇宙の創造における初めからそうだった訳ではなく、自分の妻を離縁し、別の女を妻とする者は、姦淫の罪を犯すことになるということです。エデンの園の回復という絶対的な基準に立つなら、離婚は絶対的に禁じられているのです。ただ、堕落した世にあって、例外は考えられます。例外とは、妻に対して不品行が発見された場合です。イエス様の時代においても相変わらず男尊女卑は続いていましたから、通常、女性が不品行を行った場合、石打で処刑されることになりました。ですから、もし女性の不品行を認めたなら、石打の刑に処するより、むしろ離婚しなさいという解釈です。イエス様の父、ヨセフも、妻のマリアが何者かによって身ごもったことを知った時、そっと離縁しようと決意しました。例えばユダヤの社会においては、たとえ家族の中であっても、重い皮膚病であるツァラアトの患者が出たなら、共同体から隔離さ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同じ理屈で、不品行を犯した汚れた妻に対しても、汚れが移らないよう、離縁してもよいという考え方があったのです。ですから9節において「淫らな行い以外の理由で」と例外規定を設けられているのは、そのような男尊女卑の社会の背景があったからだと思われます。しかし、聖書全体を見るなら、やはり結婚は神の永遠の法であり、何人も「一体」となった夫婦を離縁させてはならないという結論が浮き彫りにされてきます。ファリサイ人はよく離婚をしていました。マラキ書を見ても離婚する祭司たちをとがめている箇所があります。マラキ2:15-16をお読みします。

“主は、霊と肉を持つひとつのものを造られたではないか。そのひとつのものが求めるのは、神の民の子孫ではないか。あなたたちは、自分の霊に気をつけるがよい。あなたの若いときの妻を裏切ってはならない。わたしは離婚を憎むと イスラエルの神、主は言われる。”

それでは、なぜ、聖書においてこのように離婚が厳しく禁じられているのでしょうか。なぜ結婚は、創世記に書いてあるように、神聖なものとしてみなされるのでしょうか。

それは、男女の夫婦の関係が、まさに神とイスラエルの関係の、つまり神と教会の関係の比喩だからであります。そのことが最も分かりやすく書いてある箇所がホセア書2:21-22と3:1です。ご覧ください。

“わたしは、あなたととこしえの契りを結ぶ。わたしは、あなたと契りを結び/正義と公平を与え、慈しみ憐れむ。わたしはあなたとまことの契りを結ぶ。あなたは主を知るようになる。”

次に3:1です。

“主は再び、わたしに言われた。「行け、夫に愛されていながら姦淫する女を愛せよ。イスラエルの人々が他の神々に顔を向け、その干しぶどうの菓子を愛しても、主がなお彼らを愛されるように。」”

3:1では、はっきりと神は預言者ホセアに、不品行な妻ゴメルを愛して受け入れなさいと命令しておられます。これは、神様が不品行なイスラエルを永遠の愛によって愛しているということをはっきりと宣言するためであり、そのことを預言者の行いを通して象徴的に教えているのです。このような、エデンの園を回復させるような結婚観は、罪深い現実の中を生きている私たちには、もしかしたら恐ろしく聞こえてくるかもしれません。弟子たちの口から、思わず“夫婦の間柄がそんなものなら、妻を迎えない方がましです”と、本音がポロッと出てしまいましたが、実は弟子たちのこの本音は大変鋭い指摘だとも言えるのです。というのは、当時はもちろんのことで、現代においても言えることですが、この世で結婚生活を継続することほど、ある意味において難しいことはないからです。結婚生活を30年40年50年続けてこられた方々は、その事一つだけとっても、心から尊敬に値するものだと思います。クリスチャンの中で、あなたが生涯負うべき自分の十字架とは何ですか、と問われれば「私の配偶者です」と告白する人は意外に多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男尊女卑の文化の恩恵を受けていた弟子たちは、イエス様の言葉を聞いて私たち以上に恐れおののいた事でしょう。そのような弟子たちにイエス様は次のように答えられます。19:11-12をご覧ください。

“イエスは言われた。「だれもがこの言葉を受け入れるのではなく、恵まれた者だけである。結婚できないように生まれついた者、人から結婚できないようにされた者もいるが、天の国のために結婚しない者もいる。これを受け入れることのできる人は受け入れなさい。」”

この箇所の解釈は大変難しいとされています。その原因である11節の指示代名詞の「この言葉」が一体何を指しているのかですが、それによって「独身の賜物」が授けられているのか、「結婚の賜物」が授けられているのか、論調が二つに分かれてくるからです。最初に、独身の賜物とする考えです。「この言葉」を、10節の弟子たちの言葉「夫婦の間柄がそんなものなら、妻を迎えない方がましです」を指しているとするなら、神様から「賜物」を授けられた人だけが、独身生活を受け入れられる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具体的には、生まれつき性的な障碍者、宦官など他人の手によって去勢された者、或いは天の国のために結婚しない者たちであります。しかしこのように三種類の独身者を特権的に解釈するなら、いっそ、結婚しない方が多くの罪を犯さずに済むという結論になってしまいます。第二に、結婚の賜物とする考え方です。「この言葉」を、4-6節のイエス様の結婚に関する言葉であると考えるなら、どうでしょうか。結婚は、誰もが受け入れられるのではなく、神の助けによって、「結婚の賜物」によってはじめて結婚生活をす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続く文章は、結婚が許されなかった人々を羅列して、なぜなら、生まれつき性的な障碍者、他人の手によって去勢された宦官など、或いは天の国のために結婚しない者たちもいるからです、と続くのです。

これら二つの解釈の中で、私は二番目の解釈が正しいと思います。なぜなら、第一に聖書の中には、たとえイエス様ご自身は独身で過ごされましたが、だからと言って、どこにも独身生活が奨励されている箇所はないからです。人は一人でいるのは良くないと、独身より結婚が奨励されているのです。また、文法的な観点から見ても、新共同訳聖書には翻訳されていませんが、12節の冒頭に「なぜなら」という接続詞がございますので、12節は11節の付属的説明ではなく、12節は11節の理由を述べている内容であると言えるからです。最後に前後の文脈の観点から見ても、弟子たちの結婚に対する恐れを払拭しているのは、明らかに二番目の解釈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神の絶対的基準に照らし合わせた理想的な結婚生活とは、それは、確かにイエス・キリストと教会との結合を象徴しておりますが、私たちからは、あまりにも高いハードル、あまりにも高い要求に感じられます。私たちは、日々ささいなことで夫婦喧嘩をし、日々お互いがお互いのことをののしり合っているからです。場合によっては離婚に至ってしまうこともあるでしょう。しかし、そのような現実にあっても、結婚生活を尊重し、結婚生活を全うすることができるのは、私たちの結婚を神から許され、神から恵みを授けられ、祝福されているからです。主の恵みによって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る人は受け入れなさいと招いてくださっているからです。ここに希望をもって歩んでいくことができるのです。そして、この世での男女の結婚がこれほど尊重され大切にされているのは、私たち一人ひとりが、永遠においてイエス様の花嫁であって、一つ身体に固く結合されているからです。この神秘的結合は何人によっても、離されることがないということも、同じように覚え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お祈りいたしましょう。

原稿のアイコンハングル語メッセージ

결혼과 이혼

2018년 8월 19일 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마태복음 19장 1~12절

예수님은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중, 요단강 동쪽의 베뢰아 지역에 이르셨습니다. 갈릴리와 베뢰아는, 영주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리는 지역이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 하면, 자신의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의 아내 헤로디아를 마음에 들어하여 자신의 아내로 삼은 인물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 일을 정면으로 꾸짖어 감옥에 갇혔고, 결국 헤롯의 연회 자리에서 처형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베뢰아라는 곳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일부러 매우 민감하고 현실적인 문제인 이혼 문제에 대해 질문했습니다.「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 문제는 현대에도 주간지의 가십을 떠들썩하게 하지만, 부부 관계에서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부부 관계가 원만해지면 그 가정에 평안이 찾아오고, 악화되면 가정에 지옥 같은 고통과 혼란을 가져온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각자의 가정에서 천국과 지옥을 경험해 오셨을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질문은 구약성경 신명기 24장을 근거로 하고 있었습니다. 신명기를 보면 모세가 이혼을 명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4:1을 보십시오.

신명기 24장

1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남존여비 사회였던 당시, 이혼이 가능한 요인에 대해 랍비들 사이에 다양한 해석이 있었기에, 이 질문은 이혼 요인에 관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떤 바리새파 랍비는「아내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다면 이혼해도 좋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런 해석을 따른다면 헤롯 안티파스의 결혼도 인정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 헤롯의 결혼을 인정하게 한다면, 예수님의 이름을 땅에 실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 독자적인 해석으로 대답하셨습니다. 4-6절을 보십시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예수님의 해석은 이혼 자체를 금지하셨습니다. 그 근거를, 창세기 1:27의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는 말씀과 창세기 2:24의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는 말씀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처음부터 이성과 결합될 것을 전제로 지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혼을 「한 몸」이라는 말로 묘사함으로써 남자와 여자가, 더 이상 둘이 아니라 한 쌍으로 결합된 신비로운 결합체임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더욱이 이 남녀의 결합은, 각자의 부모를 떠나 부모와의 유대를 잊게 할 만큼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결합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보통 자녀가 부모를 떠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상으로 남편이 아내를 떠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룩한 결합을 찢어 버리는 것이므로, 누구에 의해서도 헤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창조 초기에 결혼 제도를 제정하시고 그것을 영원한 법으로 확립하셨음을, 예수님께서 다시금 확인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의 첫 기적도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었습니다. 결혼은 그만큼 신성한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대답에 대해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권위를 방패 삼아 예수님께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19장 7-9절을 보십시오.

7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바리새인들의 이의 제기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에 따르면, 모세가 그렇게 한 것은 모세가 이혼을 명령한 것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결과로 생긴 인간의 죄악된 상태에서 이혼을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고,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결과라는 것입니다. 「명령이 아니라 허용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주 창조 시점부터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며,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아내로 삼는 자는, 간음의 죄를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에덴 동산의 회복이라는 절대적 기준에 서면, 이혼은 절대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다만 타락한 세상에서는 예외가 있을 수 있다. 예외란 아내에게 불륜이 발견된 경우를 말한다.」 예수님 시대에도 여전히 남존여비가 계속되고 있었기에, 보통 여성이 불륜을 저질렀을 경우, 돌로 쳐 죽이는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만약 여성의 불륜을 인정한다면, 돌로 쳐 죽이는 형벌을 내리기보다는 차라리 이혼하라는 해석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도 아내 마리아가 누군가에 의해 임신한 것을 알았을 때, 조용히 이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예를 들어 유대 사회에서는, 가족 내에서도 중증 피부병인 나병 환자가 나오면, 공동체에서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같은 논리로 음행을 저지른 더러운 아내로부터, 더러움이 옮지 않도록 이혼해도 좋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9절에서「음행한 이유 외에」라는 예외 규정이 마련된 것은 그러한 남존여비의 사회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결혼은 여전히 하나님의 영원한 법이며, 누구도 「한 몸」이 된, 부부를 이혼시켜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부각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주 이혼했습니다. 말라기서를 보더라도 이혼하는 제사장들을 책망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말라기 2:15-16을 읽어보겠습니다.

말라기 2장

15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그렇다면 왜 성경에서 이처럼 이혼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을까요? 왜 결혼은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신성한 것으로 여겨질까요?

그것은 남녀 부부의 관계가 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즉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를 비유하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이 가장 명확히 기록된 구절이 호세아서 2:19-20와 3:1입니다. 보십시오.

호세아2장

19 네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다음으로 3장 1절입니다.

호세아 3장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3:1에서는 하나님께서 예언자 호세아에게 불륜을 저지른 아내 고멜을 사랑하며 받아들이라고 분명히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불륜을 저지른 이스라엘을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선언하기 위함이며, 선지자의 행동을 통해 상징적으로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에덴 동산을 회복시키는 결혼관은, 죄악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쩌면 두려운 소리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의 입에서「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라는 속마음이 무심코 흘러나왔지만, 사실 제자들의 이 속마음이 매우 날카로운 지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는 물론이고 현대에도 마찬가지지만, 이 세상에서 결혼 생활을 지속하는 것만큼 어떤 의미에서는 어려운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혼 생활을 30년, 40년, 50년 지속해 오신 분들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진심으로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당신이 평생 짊어져야 할, 자신의 십자가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의 배우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을까요? 남존여비의 문화적 혜택을 누리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보다 더 두려움에 떨었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19:11-12을 보십시오.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

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이 구절의 해석은 매우 어렵다고 여겨집니다. 그 원인이 되는 11절의 지시 대명사 「」「이 말」이 대체 무엇을 가리키느냐에 따라, 「독신의 은사」가 주어지는 것인지, 「결혼의 은사」가 주어지는 것인지 논조가 둘로 갈리기 때문입니다. 첫째, 「독신의 은사」라는 관점입니다. 「이 말」이, 10절 제자들의 말인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를 가리킨다고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은 사람만이, 독신 생활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선천적 성기능 장애인, 환관 등 타인의 손에 의해 거세된 자, 혹은 천국을 위해 결혼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세 종류의 독신자를 특권적으로 해석한다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편이 많은 죄를 범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둘째, 「결혼의 은사」라는 관점입니다. 「이 말」을 4-6절의 예수님의 결혼에 관한 말씀으로 본다면 어떨까요? 결혼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으로,「결혼의 은사」를 통해서야 비로소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이어지는 문장은, 결혼이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을 열거하며, 왜냐하면 선천적으로 성적 장애를 가진 자, 타인의 손에 의해 거세된 환관 등, 혹은 하늘나라를 위하여 결혼하지 않는 자들도 있기 때문이라고 이어집니다.

이 두 해석 중에서 저는 두 번째 해석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첫째, 성경에는 비록 예수님 자신은 독신으로 지내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디에도 독신 생활이 권장되는 구절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다고, 독신보다 결혼이 권장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문법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새공동번역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12절의 시작 부분에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가 있기 때문에, 12절은 11절의 부수적인 설명이 아니라, 12절은, 11절의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전후 문맥의 관점에서 보아도, 제자들의 결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있는 것은, 분명히 두 번째 해석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기준에 비추어 본, 이상적인 결혼 생활은, 그것은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결합을 상징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높은 장벽, 너무나 높은 요구로 느껴집니다. 우리는 매일 사소한 일로 부부 싸움을 하고, 매일 서로를 욕하며 험담하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혼에 이르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결혼 생활을 존중하고, 결혼 생활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결혼이 하나님께 허락받고,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축복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이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희망을 가지고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남녀의 결혼이 이토록 존중받고 소중히 여겨지는 것은, 우리 각자가 영원히 예수님의 신부이며, 한 몸에 굳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신비로운 결합은, 아무도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기억하고자 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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