わたしが命のパンである 나는 생명의 떡이니
- 日付
- 説教
-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ヨハネによる福音書 6章30節~40節
6:30そこで、彼らは言った。「それでは、わたしたちが見てあなたを信じ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どんなしるしを行ってくださいますか。どのようなことをしてくださいますか。
6:31わたしたちの先祖は、荒れ野でマンナを食べました。『天からのパンを彼らに与えて食べさせた』と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
6:32すると、イエスは言われた。「はっきり言っておく。モーセが天からのパンをあなたがたに与えたのではなく、わたしの父が天からのまことのパンをお与えになる。
6:33神のパンは、天から降って来て、世に命を与えるものである。」
6:34そこで、彼らが、「主よ、そのパンをいつもわたしたちにください」と言うと、
6:35イエスは言われた。「わたしが命のパンである。わたしのもとに来る者は決して飢えることがなく、わたしを信じる者は決して渇くことがない。
6:36しかし、前にも言ったように、あなたがたはわたしを見ているのに、信じない。
6:37父がわたしにお与えになる人は皆、わたしのところに来る。わたしのもとに来る人を、わたしは決して追い出さない。
6:38わたしが天から降って来たのは、自分の意志を行うためではなく、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の御心を行うためである。
6:39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の御心とは、わたしに与えてくださった人を一人も失わないで、終わりの日に復活させることである。
6:40わたしの父の御心は、子を見て信じる者が皆永遠の命を得ることであり、わたしがその人を終わりの日に復活させることだからである。」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ヨハネによる福音書 6章30節~40節
나는 생명의 떡이니
2025년 11월 23일 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요한복음 6장 30~40절
서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무리에게 예수님은「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배고픔과 목마름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보시고 구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아무도 인생에서 겪는 배고픔과 목마름을 좋아해서 선택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굶주림과 목마름은 가능하면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혹독한 시련이자 고난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굶주림과 목마름을 통해 사람들의 완고한 마음을 깨뜨리시고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인도하시며, 그리스도를 믿고 빛 가운데로 나오도록 오늘도 부르시고 계십니다. 오늘도 요한복음을 통해 함께 말씀의 은혜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1) 믿을 수 없는 무리
30~3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이 말은 예수님의 대답을 물고 늘어지듯 내뱉은 무리의 말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냐면 29절의「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마도 이때 「하나님의 일을 행하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낮과 밤에도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율법을 완전히 암기하고, 가능하면 '구전 율법', 즉 '조상의 전승'도 모두 암기해야 한다」「일주일 중 두 번은 금식을 해야 한다」 등 어려운 요구를 하셨다면 무리는 예수님을 랍비로 인정하고 섬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그 한 가지만 말씀하셨습니다. 너무나도 간소한 요구였고, 또 그 요구를 따랐는지, 따르지 않았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답변이기도 했습니다. 무리는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을 수 있도록 어떤 표적을 해 주시겠습니까. 어떤 일을 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되묻고 있습니다. 31절의 괄호(일본어 성경)에 묶여 있는 부분은 구약성서에서 인용된 것으로 생각되는데, 출애굽기 16:4나 시편 78:24 혹은 105:40의 인용이라고 생각됩니다. 무리는 자신들이 마치 랍비라도 된 것처럼 성경 말씀까지 인용해 표적을 보여달라, 우리 조상이 하늘이 주신 만나를 먹은 것과 같은「표적」을 보여달라고, 예수님께 요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리의 말이 명백히 논리의 파탄에 빠진 것은, 여기 있는 무리가 비록 전원은 아닐지라도 그들이 이 곳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쫓아온 그 이유는, 어제 갈릴리 바다 건너편에서 예수님이 많은 병자를 치유하시고(6:2), 어젯밤에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을 겪으며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이상 도대체 어떤 기적을 원한다는 걸까요? 그들도 어젯밤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그 선지자」라고 인정했을 정도입니다. 그 것을 제쳐놓고, 새로운 「표적」를 지금,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무리에게 대답하셨습니다. 32, 33절이에요.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는 말은「아멘, 아멘, 레고, 휴민」이라고 해서 언제나처럼 중요한 사항을 예수님께서 지금부터 말씀하시기 시작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무리의 말을 정정하셨습니다.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하늘로 부터 참 떡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떡은 이스라엘의 주식이며, 사람의 삶에 있어서 삶의 근간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떡인 만나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양육되었습니다. 당시에 무려 60만 명쯤 되던 이스라엘 백성(민1:46)이 광야에서 안식일을 제외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고 양육받은 것입니다. 이 만나는 확실히 육의 양식이었지만, 그 뿐만이 아닙니다. 힘든 광야에서의 40년간의 방랑 생활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도 기를 수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는 육의 양식인 동시에 주님께서 주신 영의 양식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만나를 먹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자는 구원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의 물질적인 면만 볼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주신 영적인 면으로 눈을 돌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아버지께서 하늘에서 진정한 떡을 내려 주신다, 하나님의 참 떡은,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이 하늘의 참 떡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르는 무리들은 예수님께 엉뚱한 질문을 하고 말았습니다. 34절입니다.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그들이 여전히 육의 양식인 만나만을 떠올리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들이 음식으로 충만하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물질의 양식을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어젯밤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주신 참된 떡이신 예수님에 의해 비로소 영적으로 살아나고, 더 이상 굶주림 없이, 목마르지 않고, 양육되어지는 것입니다. 35절을 보세요.
(2) 나는 생명의 떡이니
3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나는 생명의 떡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예수님의 메시지의 진수가 담겨 있지 않을까요? 즉,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는, 그의 은혜와 진리, 그의 빛과 생명을 자신의 백성에게 나누어주겠다는 선언을 「나는 생명의 떡이니」'라는 말에 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죄의 상태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메시아의 선언이자 동시에 부르심의 말씀인 「나는 생명의 떡이니」라는 말씀을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은 결코 순풍에 돛 단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의 삶의 터전 속에서, 다양한 전투가 있으며, 다양한 시련과 유혹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 삶의 터전은 혹은 영적 전쟁터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육체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필요한 양식을 얻어야 하고, 음료를 섭취해야 합니다. 어떻게 풍부하고 쾌적한 음식을 얻을지, 사람들은 그것에 기를 씁니다. 그러기 위해 일하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얻고자 수입이 좋은 일자리를 모색합니다. 또,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뛰어나다는 확증을 얻기 위해, 지위나 직책의 향상을 목표로 합니다. 때로는 자신에게 눈에 거슬리는 사람을 제치고서라도 자신이 우위에 서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하며 산다고 해도 천재나 인재로 인해 갑자기 뜻밖의 일이 벌어져 좌절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또, 설사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었다고 해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 생각처럼 되지 않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누구나 죽음의 길을 걷습니다. 죽음이라는 현실과 마주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두려움이자 불안이자 스트레스이기도 합니다. 그 공포와 불안은 그것만으로 자기 자신을 갉아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고통과 끝없는 굶주림과 갈증을 이겨내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꼭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로잡힌 상태의 비참함에서 해방되어, 더 이상 영적으로 굶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고 안식할 수 있도록 참 떡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36절 이후부터는 조금 말씀의 어조가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물질적인 관심밖에 가지지 않는 무리로부터 몸을 돌려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3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실현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인데, 그것은 다시 말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신의 백성을 자녀 예수 그리스도께 주시는 것입니다. 즉, 구원이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것이지 결코 인간의 힘으로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자들이 예수님께 온다면 하나님의 비호와 보호 속에 들어갈 수 있고 극진하게, 영입될 것임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 주 예수 안에서 느끼는 안정감에 대해,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시편 36:8~10을 보세요.
8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9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10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
이 시편의 기자는, 결코 물질적으로 갈증이 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럼에도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주님 안에 있는 평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주님 안에 있는 기쁨에 대해「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날개 안에서만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물질적인 부나 번영이나 쾌락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그것들에 의해서는 결코 마음이 충족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아무리 매력적일지라도 영원한 세계로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있는 생명의 샘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의 것으로 여겨진 자들은 결코 그곳에서 밖으로 쫓겨나지 않습니다. 비록 물질적으로 채워지지 않고 만족스러운 건강이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참 떡이신 예수님에 의해 양육되어지고, 예수님의 보호 속에서 영적인 채움과 영적인 윤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어서 38~40절을 보시겠습니다.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는, 마지막 날에 일어나는 일이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께 있는, 어떤 영적인 채움만을 이야기하셨지만, 여기서는 눈에 보이는 부활, 눈에 보이는 채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죄로 인해 초래된 죽음의 문제라는 것은, 사실 일시적인 문제, 임시적인 문제에 불과했다는 것이 밝혀져 있습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곧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의 본래 창조의 목적이 회복되고, 비록 일시적인 죽음을 겪게 되지만, 이윽고 어느 날, 즉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날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부활되고 새롭게 갱신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건강한 몸으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몸은 지금 현재 우리 몸처럼 썩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죄로 인해 고통받는 일은 없고, 거기서는 영적인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영원한 그리스도와의 교제로 바뀌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영적인 채움이 눈에 보이는 채움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눈물은 닦여지고 가난과 병으로부터, 굶주림과 갈증으로부터, 추위와 더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모든 나약함과 수치와 부패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현재 주님의 날개 안에서 안정감이 주어지고 영적인 윤택이 주어지는데, 장차 이런 눈에 보이는 형태로 축복과 윤택과 영광이 주어질 것입니다.
결론
오늘의 내용을 정리하겠습니다. 「내가 생명의 떡이니」라는 그리스도의 선언을, 우리 교회는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결코 순풍에 돛 단 것이 아닙니다. 삶의 터전에서 극심한 굶주림과 갈증으로 유혹과 시련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우리의 교만과 고집을 꺾어 주시고,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으로 이끌어 주시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깊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독생자에게 주신 사람은 모두 예수님께로 인도됩니다. 독생자에게 오는 자를 자신의 날개 안에서 지켜주시고, 이 세상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굶주리지 않고 영적으로 마르지 않고 양육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축복이 영원한 축복이 되고,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교제가 영원한 교제가 되고, 모두 눈에 보이는 형태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序】
五つのパンと二匹の魚の奇跡を見て、イエス様を王に担ぎ上げようとした群衆に対し、イエス様は「いつまでもなくならないで、永遠の命に至る食べ物のために働きなさい」と言われました。それは即ち「神のお遣わしになった方を信じること」であります。人は誰でも生きて行く中で飢えと渇きを覚えるものです。神は、人々の飢えと渇きをご覧になられ、救いを与えてくださいました。神の救いは、キリストと出会い、そのキリストを信じることによって与えられます。誰も人生における飢えと渇きというものを、好き好んで選ぶ人はいないでしょう。飢えと渇きとは、出来れば遭遇したくない厳しい試練であり、艱難でありますが、神はその飢えと渇きを通して、人々の頑なな心を砕き、キリストとの出会いに導いてくださり、キリストを信じて光のもとに来るようにと、今日も招い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す。本日もヨハネによる福音書を通して、共に御言葉の恵みに与りたいと願います。
【1】. 信じられない群衆
30~31節をご覧ください。
“そこで、彼らは言った。「それでは、わたしたちが見てあなたを信じ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どんなしるしを行ってくださいますか。どのようなことをしてくださいますか。わたしたちの先祖は、荒れ野でマンナを食べました。『天からのパンを彼らに与えて食べさせた』と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
この言葉は、イエス様のお答えに対し、食い下がるようにして言い放った群衆の言葉であります。イエス様のお答えとは何だったかと言いますと、29節の「神がお遣わしになった者を信じること、それが神の業である」と言われたことです。恐らくこの時「神の業を行うためには、毎朝早く起きて祈りを捧げ、昼と夜にも決められた時間に祈りを捧げることを怠ってはならない。」「律法を完全に暗記し、できれば『口伝律法』、即ち『先祖の言い伝え』も全て暗記しなければならない。」「一週間の内、二回は断食をすべきである。」などと難しい要求をされたなら、群衆はイエス様をラビとして認め、お仕えしたの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イエス様はただ、「神のお遣わしになった者を信じること」その一つだけをお示しになられました。あまりにも簡素な要求であり、また、その要求に従ったのか、従わなかったのかを客観的に判断することが難しいお答えでもありました。群衆は、「それでは、わたしたちが見てあなたを信じ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どんなしるしを行ってくださいますか。どのようなことをしてくださいますか。」と問い返しています。31節のかぎ括弧で括られている箇所は、旧約聖書からの引用と考えられますが、出エジプト記16:4か、詩編78:24或いは105:40の引用だと考えられています。群衆は自分たちがまるでラビにでもなったかのように、聖書の御言葉まで引用して「しるし」を見せてほしい、我々の先祖が天からのパンを食べたような「しるし」を見せるようにイエス様に迫るのであります。
ここで、群衆の言葉が明らかに論理破綻しているのは、ここにいる群衆が、たとえ全員ではないにしても、彼らがこの場所に至るまでイエス様を追いかけて来たその理由とは、昨日、ガリラヤ湖の向こう岸で、イエス様が大勢の病人を癒され(6:2)、夕べには五つのパンと二匹の魚の奇跡を体験し、満腹したからでありました。これ以上、一体どのような奇跡を望むと言うのでしょうか。彼らだって、昨夜イエス様のことを、モーセのような「あの預言者」だと認めたくらいです。そのことを棚にあげて、さらなる「しるし」を今、求めているのであります。するとイエス様は群衆にお答えになりました。32、33節です。
“はっきり言っておく。モーセが天からのパンをあなたがたに与えたのではなく、わたしの父が天からのまことのパンをお与えになる。神のパンは、天から降って来て、世に命を与えるものである。”
「はっきり言っておく」「アーメン、アーメン、レゴ、ヒューミン」ということで、いつものように大切な事柄をイエス様はこれから話し始められるということです。イエス様は、群衆の言葉を訂正されました。モーセではなくて、わたしの天の父が、天からのまことのパンをお与えになられるということです。パンとはイスラエルの主食であり、人が生きる上で生活の根幹をなすものであります。そのパンであるマンナによって、イスラエルの民は荒れ野で40年間もの間、養われました。当時、なんと60万人ほどいたイスラエルの民(民1:46)が、荒れ野において、安息日を除き天から降ってきたマンナを食べて養われたのです。このマンナは確かに肉の糧でありましたが、それだけではありません。厳しい荒れ野での40年間の放浪生活を通して、イスラエルの民は信仰をも養われたのでありました。天から降ってきたマンナとは、肉の糧であると同時に、主なる神様からの霊の糧でもあったのです。そして、マンナを食べたイスラエルの民の中で、モーセを通して語られた神の御言葉を信じた者は救われたのでありました。ですから天から降ってきたマンナの物質的な面だけを見るのではなく、御父から与えられた霊的な面にこそ目を向けなさいとイエス様は言われているのです。そして、今、御父が天からのまことのパンをお与えになられる。神のパンとは、世に永遠の命を与えるものである、そう言われるのです。実は、この天からのまことのパンとは、イエス・キリスト御自身を指しているのですが、そのことが分からない群衆たちは、イエス様に頓珍漢な質問をしてしまいました。34節です。
“主よ、そのパンをいつもわたしたちにください”
彼らが、相変わらず肉の糧であるマンナだけを思い浮かべているのは明らかです。自分たちが食べ物によって満ち足りることだけを願っている訳です。イエス様は決して物質の糧をないがしろにしている訳ではありません。現に昨晩、五つのパンと二匹の魚によって五千人を養ってくださったばかりでした。しかし、人はパンだけで生きるのではないのです。天からのまことのパンであられるイエス様によって初めて霊的に生かされ、これ以上、飢えることなく、渇くことなく、養われるのです。35節をご覧ください。
【2】. わたしが命のパンである
“イエスは言われた。「わたしが命のパンである。わたしのもとに来る者は決して飢えることがなく、わたしを信じる者は決して渇くことがない。”
イエス様は、「わたしが命のパンである」と言われました。この言葉にはイエス様のメッセージの真髄が込められ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つまり、この世を救うために、御父から遣わされたキリストは、彼の恵みと真理、彼の光と命をご自身の民に分け与えるという宣言を「わたしが命のパンである」という言葉に込めているのだと思います。私たちは皆罪人であり、罪の状態から救われるために、メシアの宣言であり、同時に招きの言葉である「わたしが命のパンである」という言葉を、主から語られているのです。
私たちの日々の生活は、決して順風満帆ではありません。日々の生活の場の中で、様々な戦いがあり、様々な試練と誘惑に晒されています。この生活の場は、或いは霊的戦いの場であると言えるのかもしれません。肉体的に生き抜くために、私たちは必要な糧を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し、飲み物を取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いかにして豊かで快適な食物を得るのか、人々はそのことに躍起になります。そのために働き、少しでもより良い物を得ようとして、収入の良い働き口を模索します。また、少しでも他の人より自分の方が優れているという確証を得ようとするために、地位や役職の向上を目指します。時には自分に目障りな人を蹴落としてまでも、自分が優位に立ちたいと思う人も出てまいります。しかし、どんなに懸命に働いて生きたとしても、天災や人災によって突然思いがけないことが起こり、挫折することもあ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また、たとえ自然に年を重ねたとしても、今まで出来ていたことが思うようにできなくなることもあるでしょう。この世で生きて行く限り、誰もが死への道をたどります。死という現実と向き合うことは、ある意味、恐怖であり、不安であり、ストレスでもあります。その恐怖と不安は、それだけで自分自身を蝕んで行きかねないものです。そのような苦しみや、限りない飢えと渇きを乗り越えるには、イエス・キリストの恵みがどうしても必要であります。私たちが、悲惨な捕らわれの状態から解放され、これ以上、霊的に飢えることなく、渇くことなく、安息に入れられるために、まことのパンとして来られたイエス・キリストの恵みがどうしても必要なのであります。
36節以降からは、少し話しの口調が変わります。イエス様は物質的な関心しか持たない群衆から体をそらし、他の人々に語りかけているように見受けられます。37節をご覧ください。
“父がわたしにお与えになる人は皆、わたしのところに来る。わたしのもとに来る人を、わたしは決して追い出さない。”
イエス様を救い主として信じることは、神様が私たちの内に実現してくださる神の業でありますが、それは言い換えるなら、父なる神がお選びになったご自身の民を、御子イエス・キリストにお与えになられることであります。つまり、救いとはどこまでも神の選びによるものであって、決して人間の力でイエス様を信じることは出来ないということです。イエス様は「わたしのもとに来る人を、わたしは決して追い出さない」と言われました。神様によって選ばれた者たちが、イエス様のところに来るならば、神の庇護と保護の中に入れられ、手厚く、迎え入れられることを確信することが出来るのです。この時、主イエスの中で感じる安心感について、詩編の記者は次のように書いています。詩編36:8~10をご覧ください。
“神よ、慈しみはいかに貴いことか。あなたの翼の陰に人の子らは身を寄せ/あなたの家に滴る恵みに潤い/あなたの甘美な流れに渇きを癒す。命の泉はあなたにあり/あなたの光に、わたしたちは光を見る。”
この詩編の記者は、決して物質的にのどの渇きが癒された訳ではないと思いますが、それにも優る主の中にある平安、それにも優る主の中にある喜びについて「あなたの家に滴る恵みに潤い/あなたの甘美な流れに渇きを癒す」という言葉で表現しているのだと思います。このようにキリスト者は、イエス・キリストの御翼の中でしか安息を得ることは出来ません。たとえ世のいかなる物質的な富や繁栄や快楽を提供されたとしても、それらによって決して心が満たされることは出来ないのです。なぜなら、それらがどんなに魅力的であっても、永遠の世界に持っていくことはできないことを私たちは本能的に知っているからです。イエス・キリストにある命の泉は、キリストの中にあり、キリストのものとされた者たちは決してそこから外に追い出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たとえ、物質的に満たされず、満足な健康が与えられないこともあるかもしれませんが、まことのパンであるイエス様によって養われ、イエス様の守りの中で、霊的な満たしと霊的な潤いが与えられるのです。続いて38~40節をご覧ください。
“わたしが天から降って来たのは、自分の意志を行うためではなく、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の御心を行うためである。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の御心とは、わたしに与えてくださった人を一人も失わないで、終わりの日に復活させることである。わたしの父の御心は、子を見て信じる者が皆永遠の命を得ることであり、わたしがその人を終わりの日に復活させることだからである。”
ここでは、終わりの日に起こることが語られています。これまで、イエス様にある霊的な満たしだけについて語られていましたが、ここでは目に見える復活、目に見える満たしについて語られています。それからもう一つ重要なことがありますが、それは罪によってもたらされた死の問題というのは、実は一時的な問題、臨時的な問題に過ぎなかったということが明らかにされています。人は本来、神様と共に生きるように、神様によって創造されました。神のかたちに創造されました。すなわち神と共に永遠に生きるものとして創造されたのです。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人の本来の創造の目的が回復され、たとえ、一時的な死を経験することになりますけれども、やがての日に、つまりキリストが再臨される日に、キリストの内にある者たちは復活させられ、新たに更新された、新しい天と新しい地において、健康な体をもって永遠に生きることになるのです。その身体は今現在の私たちの体のように、朽ちるもので構成され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もはや罪によって悩まされることはなく、そこでは、霊的なキリストとの交わりが、永遠のキリストとの交わりへと替えられるのです。そこでは、霊的な満たしが、目に見える満たしへと替えられるのです。涙はぬぐい取られ、貧困と病から、飢えと渇きから、寒さと暑さから自由になり、すべての弱さと恥と腐敗から解放され、神に賛美と栄光を捧げるのであります。キリストの中にある者たちには、現在、主の御翼の中で安心感が与えられ、霊的な潤いが与えられますが、将来、このような目に見える形で祝福と潤いと栄光が与えられるのです。
【結論】
本日の内容をまとめます。「わたしが命のパンである」というキリストの宣言を、私たち教会は信じる者たちであります。私たちの人生は、決して順風満帆ではありません。生活の場において厳しい飢えと渇きに晒され、誘惑と試練に晒されています。しかし、そのような中で、私たちの高慢と頑な心を砕いてくださり、キリストとの人格的に出会いに導いてくださり、キリストへの信仰を深めてくださるのであります。御父から御子に与えられた者は皆、御子のもとにやって来ます。御子のもとに来る者を、御自身の御翼の中で守ってくださり、この世において私たちは霊的に飢えることなく、霊的に渇くことなく養われるのであります。そして、キリストが再臨する終わりの日には、神の国の霊的な祝福が、永遠の祝福となり、キリストとの霊的な交わりが、永遠の交わりとなり、すべて目に見える形によって完成されるのであり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