眠った者の初穂として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 日付
- 説教
-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コリントの信徒への手紙一 15章20節~28節
15:20しかし、実際、キリストは死者の中から復活し、眠りについた人たちの初穂となられました。
15:21死が一人の人によって来たのだから、死者の復活も一人の人によって来るのです。
15:22つまり、アダムによってすべての人が死ぬことになったように、キリストによってすべての人が生かされることになるのです。
15:23ただ、一人一人にそれぞれ順序があります。最初にキリスト、次いで、キリストが来られるときに、キリストに属している人たち、
15:24次いで、世の終わりが来ます。そのとき、キリストはすべての支配、すべての権威や勢力を滅ぼし、父である神に国を引き渡されます。
15:25キリストはすべての敵を御自分の足の下に置くまで、国を支配されることになっているからです。
15:26最後の敵として、死が滅ぼされます。
15:27「神は、すべてをその足の下に服従させた」からです。すべてが服従させられたと言われるとき、すべてをキリストに服従させた方自身が、それに含まれていないことは、明らかです。
15:28すべてが御子に服従するとき、御子自身も、すべてを御自分に服従させてくださった方に服従されます。神がすべてにおいてすべてとなられるためです。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コリントの信徒への手紙一 15章20節~28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2025년 4월20일 센겐다이교회 주일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고린도전서 15장 20~28절
서론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 기념예배입니다, 고전 15:1~58까지 부활에 대한 여러 가지 측면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몇 구절을 선택하여 오늘의 성경구절로 삼았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계시고, 마지막 날에 우리도 몸의 부활을 받을 것을 믿고 계십니다. 구약성경을 읽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로 일부 사람들(사두개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에 일어날 몸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몸의 부활은 갑자기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물질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는 당시의 헬라 사상이 배경에 깔려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헬라의 영육이원론의 철학자들에 따르면 사후 세계는 오직 영혼에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영혼이야말로 그 사람의 진정한 인격이고 육체는 영혼의 감옥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죽음이란 이 육체라는 감옥에서 영혼이 풀려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더러운 육체는 죽을 수밖에 없지만, 영혼은 영원한 상태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15:12에 기록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도 나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복음이 선포되고 있던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은 인정하지만 우리의 부활은 없다!”고 단언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죽은 자가 부활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도 부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논증해 나갑니다. 오늘은 부활에 대한 바울의 논증을 통해 말씀의 은혜를 함께 누리고자 합니다. 15:20을 보시겠습니다.
(1) 아담과 그리스도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잠자는 자들」이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으로 믿음생활을 하다가 죽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 서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약 20년이 지나고 나서 쓰여졌는데 20년이 지나면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형제자매들이 죽어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죽은 신자들의 영혼은 천국에 들어갔을 것이 틀림없지만, 설마 그들의 육체가 부활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은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부활신앙을 제거한다면 거기에는 아무런 복음이 남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가장 중요한 일로 부활 사건을 꼽고 있습니다. 15:3~4를 보시겠습니다.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여기에 가장 중요한 복음의 핵심이 짧게 요약되어 있습니다. 바울 서신은 복음서 등에 비해 더 이른 시기에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이 바울의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부활 신앙은 가장 오래된 교회의 고백에 속하고, 삼위일체 교리 등은 사도들의 시대보다 더 늦게 점차적으로 구축된 것이지만, 부활 신앙은 바로 사도들이 고백했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사도들과 제자들을「부활의 증인」이라고 불렀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몸의 부활은 교회가 항상 전해 가야 할 중요한 「사도들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몸의 부활을 「첫 열매」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열매」라는 뜻은, 「최초의 열매」라는 의미입니다만, 구약성경에서 첫 열매는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첫 열매에 이은 수확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축복임을 기억하고 감사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첫 열매는, 이후 풍성한 수확을 보장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부활도 결코 단독적인 사건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일어날 본격적인 부활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과 후에 일어날 성도들의 부활 사이에 왜 그런 관계가 성립되는 것일까요? 21~22를 보시기 바랍니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여기서는 아담과 그리스도가 대조적인 위치에 놓여 있고, 완전히 정반대의 작용을 가져왔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아담으로부터 인류에게 죄와 죽음이 들어왔고, 그리스도로부터 인류에게 의와 생명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좀 더 세세하게 말씀드리면, 22절의「아담 안에서」의 「~안에서」라는 전치사는 헬라어로 εν, 영어 성경에서는 in이라는 전치사가 사용되었습니다. 요컨대 여기서는 아담과의 관계, 혹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연결된 자에게는 죄와 죽음이, 그리스도와 연결된 자에게는 의와 생명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계명을 받았을까요?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사탄의 꾐에 빠져 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때 아담은 한 개인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사실 인류를 대표하여, 공인으로서, 인류의 머리로서 행동한 것입니다. 그 인류의 머리인 아담이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지 않고 죄를 지음으로써 아담의 후손인 전 인류에게 죄와 죽음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에 대해 이런 특수한 입장을 자진 것은 아담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한 명의 또 다른 머리가 존재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 예수님은 인류를 대표하여, 공인으로서 이러한 축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고, 모든 피조물이 이 분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아담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의 머리요, 맏아들이요, 근원이요, 원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골1:15). 이분은 자신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을 버리시고 우리 죄인들과 함께 하시려고 낮아지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죄로 인해 온 인류에게 임하게 된 저주를 모두 짊어지셨습니다. 우리는 어제까지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는 수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수난일의 저녁에는 각 가정에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수난은 실로 우리 죄의 형벌을 우리 대신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실로 우리 죄의 대가를 대신 치르셨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어도 쉽게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센겐다이교회의 월보 4월호 기고문에서도 있었지만, 우리는 신앙생활을 계속해 나가면서 조금씩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신 것뿐만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부과하신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셨고, 아담이 실패한 믿음의 행보를 인간으로서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연약함이 있었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받으실 때도 있었습니다. 또한 세상으로부터, 심지어 자기 백성들로부터 조롱과 모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공인으로서, 머리로서, 우리의 대표로서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죄인이 구속받을 수 있는 길을, 죄인이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죄인이 구속받을 수 있는 길을, 죄인이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15:22절의「모든」이라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조금 주의해야 하는데,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상관없이 만민이 모두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은 모든 사람, 예수님과 연합된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23~26를 보시겠습니다.
(2) 하나님 나라의 통일과 완성
23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방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여기서는 단서를 통해 부활의 순서와 하나님 나라의 통일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일과 완성은 미래적인 일임을 주목해야 하는데, 23절의 「먼저는」이라는 단어는 방금 전에 나온 「첫 열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영어와 한글 성경에는 제대로 「첫 열매인 그리스도」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첫 열매인 예수님의 부활 사건 다음에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그리스도께 연합된 사람들이 부활을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이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논과 밭이 물들어 있습니다. 재림의 때는 바로 하늘의 대추수의 시기가 찾아 온다는 것입니다. 대추수가 끝나고 그 다음에 세상의 종말이 오고 예수님은 모든「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무력화 시키실 것입니다. 이 통치와 권세와 능력이란 하나님을 대적하는 온갖 악의 세력을 가리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자의 부활 이후에 일어날 불신자들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의미할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에서 모든 인간은 심판자이신 그리스도 앞에 서서 지금까지 자신이 행한 행위와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원수인 사망이 멸망하고 사망과 음부도 영원히 타는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계20:14). 우리는 죽음을 최후의 원수로 생각한 적이 있었을까요? 아마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다”라고 누구나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죽음을 최후의 원수로 이해하게 되었고,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소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심판을 통해 자신의 최고의 승리를 거두시고 자신의 왕국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27~28을 보시기 바랍니다.
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함이라
아들이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때, 신천신지라는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내려올 것입니다. 그때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섬기는, 창조된 본래의 모습이 그곳에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부의 눈물을, 즉 교회가 받은 부당한 대우와 핍박을 모두 닦아 주시고, 더 이상 죽음이 없고, 슬픔도, 애통함도, 수고로움도 없는, 이전 것은 지나간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통일되고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는 아버지 하나님께 넘겨질 것입니다. 28절의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함이라」는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과 함께 거하시고,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거하시며,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가장 풍성한 충만함을 받는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 만물의 창조의 목적이 온전히 성취되어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질 것입니다.
결론
오늘의 내용을 정리합니다. 첫 열매인 그리스도의 부활은, 곧 다가올 대추수와 같은 부활을 기대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모든 적대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죽음 자체도 멸망시킬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세상의 여러 세력에 휘둘리고, 특히 죽음의 새력에 휘둘리며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인내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첫 열매로 부활하셨다는 희망이 주어져 있습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여러 가지 통치와 권세와 능력이 멸망하고, 죽음의 세력마저도 마지막 원수로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부활절을 기념하는 오늘, 그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희망에 굳건히 서서, 하루하루의 발걸음을 내딛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합시다.
【序】
本日は、イエス様のご復活を記念するイースター記念礼拝です。1コリント15章は、1~58節まで復活についていろいろな面から書かれていますので、数節を選んで本日の聖書個所とさせていただきました。
皆さまはイエス様の復活を信じていますし、終わりの日に私たちも、体の復活に与れることを信じています。旧約聖書を読んでいたユダヤ人も同じように、一部の人々(サドカイ派)を除いて、ほとんどの人々が将来に起こる体の復活を信じていました。ところが、コリントの人々においてはそうではなかったようです。彼らにとって体の復活というのは、にわかには信じられるものでありませんでした。おそらく、物質は悪であり、霊は善であるという、当時のギリシャ思想が背景にあったからだと思われます。ギリシャの霊肉二元論の哲学者たちによれば、死後の世界とは、魂にのみあると考えられていました。つまり、魂こそ、その人の本当の人格であり、肉体とは魂の牢獄に過ぎないと考えていたのです。死とは、この肉体という牢獄から魂が解き放たれることだと主張していました。ですから、汚れた肉体は死ぬしかありませんが、魂は永遠の状態に入るだろうと考えていたのです。こういった背景の中に置かれていましたので、15:12節に書かれているように、キリスト者の中から次のようなことを言い出す人も出てきました。
“キリストは死者の中から復活した、と宣べ伝えられているのに、あなたがたの中のある者が、死者の復活などない、と言っているのはどういうわけですか。”
イエス・キリストの復活の福音を宣べ伝えられていたコリントの信徒の中のある者たちは、「イエス様の復活は認めても、我々の復活などない!」と断言していたようです。それに対してパウロは、もし死者が復活しないのなら、キリストも復活しなかったはずだと論証していきます。本日は、復活についてのパウロの論証から、御言葉の恵みに共に与りたいと願います。15:20節をご覧ください。
【1】. アダムとキリスト
“しかし、実際、キリストは死者の中から復活し、眠りについた人たちの初穂となられました。”
「眠りについた人たち」とは、イエス様を受け入れ、キリスト者として信仰生活をしていましたが、死んでしまった人々のことを指しています。この手紙は、イエス様の十字架と復活の出来事から、約20年が経過した頃に書かれました。20年経過すると、信仰を共にした兄弟姉妹が死んでいくという現象が起こってきました。コリントの人々は、死んでいった信者の魂は、天国に入れられたに違いないが、まさか彼らの肉体が復活するなどとは思ってもみなかった訳です。しかし、復活信仰とは、福音の核心でありますから、もしキリスト教から復活信仰を取り除くなら、そこには何の福音も残らなくなるでしょう。パウロは福音の最も大切なこととして、復活の出来事を挙げています。15:3~4をご覧ください。
“最も大切なこととしてわたしがあなたがたに伝えたのは、わたしも受けたものです。すなわち、キリストが、聖書に書いてあるとおりわたしたちの罪のために死んだこと、葬られたこと、また、聖書に書いてあるとおり三日目に復活したこと、”
ここに最も大切なこととして福音が短くまとめられています。パウロ書簡とは、福音書などと比べるとより早い時期に執筆されたものですから、このパウロの言葉から分かることは、復活信仰は最も古い教会の告白に属していて、三位一体の教理などは、使徒たちの時代より後に、徐々に構築されていったものですが、復活信仰とは、これはまさに使徒たちが告白していた内容であったということです。当時、使徒たちや弟子たちが「復活の証人」と呼ばれたのは、それ相応の理由があったということであります。体の復活とは、教会が常に語り継いで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大切な「使徒たちの教え」なのであります。
パウロは体の復活について「初穂」という概念によって説明を始めました。初穂とは、「最初の実」という意味ですが、旧約聖書において初穂とは、神様に捧げられるべきものとして描写されています。初穂に続く収穫が、神様の恵みであり、神様の祝福であることを覚え、感謝するためであります。従いまして、初穂とは、後に続く豊かな収穫を保証するものでもあった訳です。これと同じようにイエス様の復活も決して単独の出来事と考えることはできません。後に起こる本格的な復活を保証するということを意味しているのです。それでは、なぜ、イエス様の復活と、後に起こる聖徒たちの復活の間に、そのような関係が成り立つのでしょうか。21~22節をご覧ください。
“死が一人の人によって来たのだから、死者の復活も一人の人によって来るのです。つまり、アダムによってすべての人が死ぬことになったように、キリストによってすべての人が生かされることになるのです。”
ここでは、アダムとキリストが対照的な位置に置かれていて、まったく正反対の作用を人類にもたらしたと語られています。すなわち、アダムから人類に罪と死がもたらされ、キリストから人類に義と命がもたらされたということです。少し細かいことを言いますと、22節の「アダムによって」の「~によって」という前置詞は、ギリシア語ではεν、英語の聖書ではinという前置詞が使われていますので、「アダムにあって」と翻訳すべきです。「キリストによって」という個所も同じように「キリストにあって」と翻訳すべきです。要するにここでは、アダムとの結びつき、或いはキリストとの結びつきに焦点が当てられているのです。アダムと結ばれている者たちには罪と死が、キリストに結ばれている者たちには義と命がもたらされるということです。
人類の始祖であるアダムは、エデンの園において、神様からどのように戒めを与えられたでしょうか。「園の中央に生えている善悪の知識の木から取って、食べてはならない。それを食べると必ず死ぬから」と戒められました。ところが、アダムとエバは御言葉に従わず、サタンにそそのかされ、取って食べてはならない木の実を食べてしまいました。あの時、アダムは一人の個人として行動していたのではなく、実は人類の代表として、公人として、人類の頭として行動していたのです。その人類の頭であるアダムが、神様の戒めに従わず、罪を犯したことによって、アダムの子孫である全人類に、罪と死がもたらされたのであります。
ところで、人類に対しこのような特殊な立場を持つのは、アダムだけ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もう一人の別の頭が存在します。それはイエス・キリストです。なぜイエス様は、人類の代表として、公人として、このような祝福をもたらすことができるのでしょうか。
その理由は、イエス・キリストは被造物より先に生まれたお方であり、全被造物はこの方によって造られたからです。この方こそ、真の意味で神のかたちであり、アダムも含めすべての被造物の頭であり、長子であり、源であり、原理であられるからです(コロ1:15)。この方は、ご自身の神の子としての栄光を放棄され、私たち罪びとに寄り添うような仕方で低くなられました。そしてアダムの罪によって全人類に臨むことになった呪いを、すべてご自身に引き受けてくださいました。私たちは、昨日までキリストの受難を覚えるアドベントを過ごしてきましたね。そして金曜日の受難日には、夜にそれぞれの家庭で祈祷会を持ちました。キリストの受けた御受難というのは、実に、私たちの罪の刑罰を、私たちの代わりに受けてくださったということであります。キリストの十字架の死とは、実に、私たちの罪の代価を代わりに負ってくださったということであります。その恵みというのは、洗礼を受けて、キリスト者になっても、中々すぐにはわからないことでしょう。月報4月号の寄稿文にもありましたが、私たちは信仰生活を続けていく中で、少しずつ自らの罪深さを悟り、キリストが受けたくださったご受難の真の意味を、悟って行くのだと思います。
イエス様は、私たちの代わりに刑罰を受けられただけではありません。御父からご自身に課せられた律法を完全に服従され、アダムが失敗した信仰の歩みを、人として完全に成し遂げてくださったのです。イエス様にも、もちろん人としての弱さがありました。サタンから誘惑されることもありました。また、この世から、甚だしくはご自身の民から嘲られ、侮辱されることもありました。しかし、公人として、頭として、私たちの代表として、私たちの代わりに、律法を完全に成就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従って、神はこのキリストとの結合において、罪人が贖われる道を、罪人が生かされる道を、開いてくださったのです。ですから、15:22節の「すべて」という言葉は、キリストにあるすべての人という意味になります。ここは少し注意が必要ですが、信じている人も信じていない人も関係なく万民がすべて救われるという意味ではなく、イエス様を信じる全ての人が、イエス様に結び合わされている全ての人が、救われるということであります。続いて23~26節をご覧ください。
【2】. 神の国の統一と完成
“ただ、一人一人にそれぞれ順序があります。最初にキリスト、次いで、キリストが来られるときに、キリストに属している人たち、次いで、世の終わりが来ます。そのとき、キリストはすべての支配、すべての権威や勢力を滅ぼし、父である神に国を引き渡されます。キリストはすべての敵を御自分の足の下に置くまで、国を支配されることになっているからです。最後の敵として、死が滅ぼされます。”
ここでは、但し書きによって復活の順序と神の国の統一について語られています。神の国の統一と完成は、将来的な事柄であることに注意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23節の「最初に」という言葉は、先ほど出ました「初穂」という言葉が使用されています。英語や韓国語の聖書には、きちんと「初穂であるキリスト」と翻訳されています。初穂であるイエス様の復活の出来事の次には、キリストの再臨の時にキリストに属している人々が復活に与るということです。アダムから始まり、キリストの再臨に至るまで、歴史を通してすべてのキリスト者が復活に与るのです。想像してみてください。田畑は色づいています。再臨の時は、まさに天の大収穫の時が訪れるということです。大収穫が終わりその次にこの世の終わりが来て、イエス様はすべての「支配」とすべての「権威」と「勢力」を無効化にされることでしょう。この支配や権威や勢力というのは、神に逆らう諸々の悪の力のことを指しています。具体的に言えば、信者の復活の後に起こる、不信者に対する最後の審判のことを意味しているのでしょう。最後の審判において、すべての人間が、裁判官であるキリストの御前に立たされ、これまでの自分のしてきた行いと自分の口から発した言葉に応じて裁かれることになります。そして、最後の敵として、死が滅ぼされ、死も陰府も、永遠に燃える火の中に投げ込まれるのです(黙20:14)。私たちは死を最後の敵として考えたことがこれまでにあったでしょうか。恐らくなかったと思います。というのは、「死は、当然のこととして受け入れなくてはならない」、「人は誰でも死ぬのだから」と誰もが自然に考えていると思うからです。しかし、キリストが死者の中から復活させられたことによって、私たちは死を最後の敵として理解し、死に勝利する希望が与えられているのです。イエス様は最後の審判を通して、ご自身の最上の勝利をおさめ、ご自身の王国を完成されます。最後に27~28節をご覧ください。
“「神は、すべてをその足の下に服従させた」からです。すべてが服従させられたと言われるとき、すべてをキリストに服従させた方自身が、それに含まれていないことは、明らかです。すべてが御子に服従するとき、御子自身も、すべてを御自分に服従させてくださった方に服従されます。神がすべてにおいてすべてとなられるためです。”
御子がすべてを服従させた時、新天新地と呼ばれる完成された神の国が天から下ってきます。その時、すべての被造物が神様に仕えるという、創造された本来の姿が、そこに現れることでしょう。神様は花嫁の目の涙を、すなわち教会が受けた不当な扱いや、迫害を、ことごとくぬぐい取ってくださり、もはや死もなく、悲しみも、嘆きも、労苦もない、以前のものが過ぎ去った、新しい天と新しい地が臨むのであります。このようにして、キリストによって統一され、完成された神の国は、父なる神に引き渡されるのです。28節の「神がすべてにおいてすべてとなられるため」というのは、神の幕屋が人と共にあり、神が人と共に住み、人は神の民となることであり、神との交わりにおいて最も豊かな満たしを受けるという意味だと思います。その時、万物の創造の目的が完全に成就され、神に栄光が捧げられるのであります。
【結論】
本日の内容をまとめます。初穂であるキリストの復活は、やがて来る大収穫のような復活を期待させるものでありました。最後の審判は、すべての敵対勢力を無力化させ、死そのものも滅ぼされます。それまでは、私たちは、この世の様々な力に振り回され、とりわけ死の力に翻弄されながら人生を歩むことになるでしょう。それまでは忍耐と信仰が必要になってきます。しかし、私たちには、キリストが初穂として復活してくださったという希望が与えられています。日々の営みの中で、私たちを脅かす諸々の支配と、権威と、勢力が滅ぼされ、死の力すらも、最後の敵として必ず滅ぼされるという希望であります。イースターを記念する本日、そのことを心に刻みつつ、希望に堅く立って、日々の歩みを重ねて行く私たちとならせていただきま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