ネヘミヤの祈り 느헤미야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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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ネヘミヤ記 1章1節~11節
1:1ハカルヤの子、ネヘミヤの記録。第二十年のキスレウの月、わたしが首都スサにいたときのことである。
1:2兄弟の一人ハナニが幾人かの人と連れ立ってユダから来たので、わたしは捕囚を免れて残っているユダの人々について、またエルサレムについて彼らに尋ねた。
1:3彼らはこう答えた。「捕囚の生き残りで、この州に残っている人々は、大きな不幸の中にあって、恥辱を受けています。エルサレムの城壁は打ち破られ、城門は焼け落ちたままです。」
1:4これを聞いて、わたしは座り込んで泣き、幾日も嘆き、食を断ち、天にいます神に祈りをささげた。
1:5わたしはこう祈った。「おお、天にいます神、主よ、偉大にして畏るべき神よ、主を愛し、主の戒めを守る者に対しては、契約を守り、慈しみを注いでくださる神よ。
1:6耳を傾け、目を開き、あなたの僕の祈りをお聞きください。あなたの僕であるイスラエルの人々のために、今わたしは昼も夜も祈り、イスラエルの人々の罪を告白します。わたしたちはあなたに罪を犯しました。わたしも、わたしの父の家も罪を犯しました。
1:7あなたに反抗し、あなたの僕モーセにお与えになった戒めと掟と法を守りませんでした。
1:8どうか、あなたの僕モーセにこう戒められたことを思い起こしてください。『もしも背くならば、お前たちを諸国の民の中に散らす。
1:9もしもわたしに立ち帰り、わたしの戒めを守り、それを行うならば、天の果てまで追いやられている者があろうとも、わたしは彼らを集め、わたしの名を住まわせるために選んだ場所に連れて来る。』
1:10彼らはあなたの僕、あなたの民です。あなたが大いなる力と強い御手をもって贖われた者です。
1:11おお、わが主よ、あなたの僕の祈りとあなたの僕たちの祈りに、どうか耳を傾けてください。わたしたちは心からあなたの御名を畏れ敬っています。どうか今日、わたしの願いをかなえ、この人の憐れみを受け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してください。」この時、わたしは献酌官として王に仕えていた。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ネヘミヤ記 1章1節~11節
느헤미야의 기도
2025년 1월12일 센겐다이교회 주일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느헤미야 1장 1~11절
서론
에스라서를 마치고 오늘부터 느헤미야서 강해설교에 들어갑니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고대 히브리어 사본에서는 하나였기 때문에 원래는 하나의 책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전 주의 설교의 계속으로서 이 느헤미야서를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스라서에는 스룹바벨의 1차 귀환과 에스라의 2차 귀환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서에는 느헤미야의 3차 귀환, 그리고 성벽 재건에 대한 내용이 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느헤미야서를 통해 말씀의 은혜를 함께 누리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
1:1의 서두에「히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란, 「여호와께서 위로하신다」는 뜻으로 포로 후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시기는 아닥사스다 왕 통치 20년, 기슬르월, 즉 아홉번 째 달로 현대의 11~12월에 해당합니다. 장소는 1절에 기록된 대로 수산 궁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왕들은 수산과 악메다에도 궁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름에는 기후가 서늘한 악메다에서, 겨울에는 따뜻한 수산에서 지냈던 것 같습니다. 이 시기는 겨울이었기 때문에 수산 궁에서 지냈던 것 같습니다. 이때 느헤미야는 술 관원으로 왕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술 관원은 술의 독을 감별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항상 왕의 곁에 있었던 셈입니다. 당시 술 맡은 관원이란 마치 왕의 비서 같은 역할을 하며 왕을 수행하면서 왕의 중요한 자문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높은 지위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쇄물을 참고하시면 아시겠지만,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것이 아닥사스다 왕의 통치 7년이었으니 벌써 13년이나 지났습니다. 더 나아가 바벨론 포로 생활로부터 무려 14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연히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난 인물입니다. 그러던 중 유다에서 돌아온 형제 중 한 사람인 하나니와 몇몇 사람들을 통해 고향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2~4절을 보시겠습니다.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지난 주 에스라 10장 내용에서 백성 전체가 에스라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회개하는 감동적인 피날레를 맞이했습니다. 왜 또다시 문제가 발생했을까요? 그때 말씀으로 돌아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이었을까? 라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의 삶은 천국에 갈 때까지 문제가 따라다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 때문일 수도 있고, 방해하는 자의 소행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교회의 지상에서의 사역은「전투하는 교회」로 부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받았어도 항상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3절에「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그 지방이란 유다 지방을 가리킵니다. 느헤미야는 2절에서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걱정하며 묻고 있는데, 이에 대한 형제 하나니의 대답 중에도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남아 있다」는 동사는 히브리어 「샤아르 שְׁאָ֖ר」라는 단어인데, 이것이 명사형이 되면 히브리어로 「스알 שְׁאָ֖ר」이 되어 이사야서에 자주 나오는 「남은 자」라는 뜻이 됩니다.「남겨진 사람들」,「나머지 사람들」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말들은 포로 이후에 하나의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바벨론 포로에서 벗어나 귀환이 허락된 사람들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점에서 아직 귀환이 허락되지 않았던 느헤미야도 스스로 「남은 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벨론 포로 때 바벨론으로 끌려가지 않고 간신히 재앙을 피할 수 있었던 유다 땅에 남겨진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포로 후에 「남겨진 사람들」, 「나머지 사람들」이 갖게 된 의미는 도채체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진정한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회복이란 하나님의 심판인 포로의 땅에서 귀환함으로써 시작되는데, 그 귀환의 백성들에게 「남겨진 사람들」, 「나머지 사람들」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포로라는 쓰라림을 통해, 포로라는 시련을 통해 믿음이 정련된 백성, 거룩한 공동체로 여겨진 백성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귀환의 백성이 비록 이스라엘 열두 부족 가운데 유다와 베냐민 두 부족에 불과할지라도 그들은 자신들을 온 이스라엘의 태표로 여겼습니다(에스라6:17). 그러므로 느헤미야의 걱정이라는 것은 자신이 과거에 살았던 그리운 고향과 옛날에 신세를 진 사람들을 생각하는 걱정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걱정이란 「남은 자들」 진정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그 때까지 받아온 수치로 부터 벗어났는지, 그때까지 받아온 고난과 환란으로부터 해방되었는지, 믿음의 형제자매에 관한 염려였습니다. 「남은 자, 진정한 이스라엘은, 복 받을 것이 틀림이 없다」라고 느헤미야는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주저앉아 울고, 며칠을 슬퍼하며 금식 기도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70년간의 포로 생활을 지낸 백성에게, 이제는 충분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수치와 굴욕과 고난을 겪어온 백성에게, 이 이상 추격전이 펼쳐는 것 같은 시련이 이어져도 되는 걸까요? 하나님의 계획은 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일까요?
(2) 느헤미야의 기도
하나니의 보고 배경에는, 에스라 4장에 적혀 있는 집요한 방해가 관련된 것으로 보입니다. 나중에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리는 예루살렘 주변 거주민들에 의한 방해입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완성되고 다음으로 마을 성벽과 도읍의 기초 공사에 착수하고 있었는데, 사마리아인이, 공사를 멈추게 하려고 아닥사스다 왕에게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서한의 내용은 비방중상을 하는 듯한 내용이었습니다. 유대인이 왕에게「반역」, 「손해」를 가져다 주는 부정적 존재라는 것이 반복적으로 호소되고 있었고, 그들의 도읍지 건설에 담긴 생각을 왜곡하는 듯한 서한이었습니다. 그 서신을 받은 왕은 즉시 공사의 일시 중단을 명령햇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들은 공사를 중단시키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고, 이미 완성된 문과 성벽을 파괴하고 방화를 벌여 사회질서의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의 처음에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왕들은 조로아스터교를 믿고 있어 「하늘에 계신 신이시여」라는 호소문을 자주 사용했는데, 느헤미야도 마찬가지로「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기도 대상은 아후라・마즈다(조로아스터교의 신)가 아니라「하나님, 여호와」이심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느헤미야는 계속해서「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라고 주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크고 두려운, 경외해야 할 분이시지만,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자비(헤세드)를 베푸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바르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죄에 대한 고백이 이어졌습니다. 6~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어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예배 가운데 우리도 목회 기도 전에 죄의 고백이 이루어집니다. 첫째, 죄의 고백을 통해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예배에서 뿐만 아니라 성령에 의해 나타난 죄가 있으면 그때마다 죄의 고백을 드리는 자들이 됩시다. 더욱이 느헤미야의 기도를 살펴보면 2주전의 에스라 9장에서 배운 「에스라의 기도」와 비슷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조상의 죄에 대해 「우리」라는 주어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문제인 것처럼 고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회는 머리인 그리스도에게 유기체로 묶여 있기 때문에 결코 교회의 죄나 교회의 허물을 남의 일처럼 말할 수 없습니다. 결코 교회의 험담을 남의 일처럼 말할 수 없습니다. 공동의 교회, 즉 지리적・역사적으로 보편적인 교회는 주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죄 고백에 이어 이번에는 소원을 빌었습니다. 8~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이 9절의 첫머리에 「내게로 돌아와」라고 되어 있는데, 「돌아오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슈브」라는 단어가 사용되어 「회개하다」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또한 9절 말미에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이라고 되어 있는데 「내 이름」은 「주님 자신」과 같은 의미이므로 「주님 자신이 거하시는 곳으로 데려온다」라는 뜻이 됩니다. 즉,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8~9절은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여겨지므로 신명기 4:25~31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신명기 4장
25 네가 그 땅에서 아들을 낳고 손자를 얻으며 오래 살 때에 만일 스스로 부패하여 무슨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그의 노를 일으키며
26 내가 오늘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하고 전멸될 것이니라
27 여호와께서 너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으실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쫓아 보내실 그 여러 민족 중에 너희의 남은 수가 많지 못할 것이며
28 너희는 거기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리라
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30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의 말씀을 청종하리니
31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이방으로 끌려가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을 섬기도록 강요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백성들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예언이 정확하게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말씀을 읽었을 때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랐을지도 모릅니다. 느헤미야는 제사장이나 서기관은 아니었지만, 율법의 중요성을 깨닫고 모세의 율법책을 늘 곁에 두고 되새기며 읽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예언에는 약속도 담겨 있었는데, 29절부터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30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의 말씀을 청종하리니
31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느헤미야는 이 약속을 붙잡으면서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땅, 바벨론에서 전심으로 주 여호아를 찾고 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확하게 말씀을 성취하시는 분이신 주께서, 지금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손을 펼쳐주셔서 저의 기도와 당신의 종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주시옵소서! 지금 회복의 약속을 성취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1:11절에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고 되어 있는데, 이 사람은 아닥사스다 왕을 가리킵니다. 한 번 공사 중단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왕이 그 중단 명령을 해제하고 공사 재개를 허락해 주어야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니의 방문 이후 4개월 동안 기도를 계속합니다. 그리고 다음 2장에서 보게 되겠지만, 4개월 후 니산월이 되어 그 기도의 응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결론
오늘의 내용을 정리합니다. 느헤미야는 그리운 고향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생각하며 걱정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남은 자들이 불행과 수치를 당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느헤미야는 앉아서 울며 며칠 동안 슬퍼하며 금식 기도를 드렸습니다. 느헤미야는 모세의 예언이 미래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떠나 말씀에서 멀어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리고 주님께로 돌아와 묻고 구하면 언약을 기억하시고 주의 거처인 예루살렘으로 다시 모아주시고 긍휼을 베푸시겠다는 약속을 믿었습니다. 지금도 그 말씀을 붙들고 약속을 성취해 달라고 계속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라도 그렇고, 이런 말씀을 붙들고 말씀 앞에 서는 믿음은 포로기 이전의 이스라엘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의 의로운 손으로 백성을 선으로 인도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이런 하나님에 의해 보호받고 인도받고 있음을 기억하고,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序】
エズラ記が終わり、本日からネヘミヤ記の講解説教に入ります。エズラ記とネヘミヤ記は、古代ヘブライ語の写本では一つであったために、元々は一つの書物であったと考えられています。ですから、私たちも前回からの続きとして、この書を読み進め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エズラ記には、ゼルバベルによる第一次帰還と、エズラによる第二次帰還について書かれていました。ネヘミヤ記にはネヘミヤよる第三次帰還、そして城壁の再建について主に書かれています。本日もネヘミヤ記を通して共に御言葉の恵みに与りたいと願います。
【1】. 捕囚を免れて残っているユダの人々
1:1の冒頭に、ハカルヤの子、ネヘミヤの記録とあります。ネヘミヤとは、「ヤハウェは慰める」という意味で、捕囚後によく見かける名前でありました。時はアルタクセルクセス王の統治第20年、キスレウの月、すなわち第9の月であり、現代の11月~12月に当たります。場所は1節に書かれているように、スサの宮殿での出来事でありました。ペルシアの王たちは、スサとエクバタナにも宮殿を持っており、夏は気候の涼しいエクバタナで、冬は温暖なスサで過ごしたようです。この時期は冬でしたので、スサで過ごしていました。この時、ネヘミヤは献酌官として王に仕えていました。献酌官とは、お酒の毒見をする役割ですから、常に王の身近にいたことになります。当時、献酌官とは、まるで王の秘書のような役割を果たし、王に帯同しながら、王から重要な相談を受けていたようです。そのような高い地位の仕事についていました。プリントを参照して下さればと思いますが、エズラがエルサレムに帰還したのが、アルタクセルクセス王の統治第7年でしたので、あれから既に13年も経ったことになります。もっと言えばバビロン捕囚から、実に141年という歳月が流れました。当然ですが、ネヘミヤはペルシアで生まれた人物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そこへ、ユダから戻ってきた兄弟の一人ハナニと、幾人かの人々を通して故郷エルサレムの知らせを聞くことになりました。2~4節をご覧ください。
“兄弟の一人ハナニが幾人かの人と連れ立ってユダから来たので、わたしは捕囚を免れて残っているユダの人々について、またエルサレムについて彼らに尋ねた。彼らはこう答えた。「捕囚の生き残りで、この州に残っている人々は、大きな不幸の中にあって、恥辱を受けています。エルサレムの城壁は打ち破られ、城門は焼け落ちたままです。」これを聞いて、わたしは座り込んで泣き、幾日も嘆き、食を断ち、天にいます神に祈りをささげた。”
先週エズラ記の10章の内容で、民全体がエズラの心と一つになり悔い改めに導かれて感動的なフィナーレを迎えました。なんでまた問題が起こるのか!あの時、御言葉に立ち返ったイスラエルの民はなんだったのか!とあきれる人もいる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信仰者の営みは、天国に行くまで、問題が付きまとってまいります。それは私たちの罪が原因なのかもしれませんし、また、妨害する者による仕業なのかもしれません。いずれにしても主が再び来られる日まで、教会の地上の営みは、「戦う教会」として召されていますので、私たちは救われていても常に問題は発生するのであります。
3節に、「この州に残っている人々」とありますが、この州とはユダ州を指しています。ネヘミヤは、2節において「捕囚を免れて残っている人々」のことを心配し尋ねていますが、それを受けて、兄弟ハナニの返答の中でも「捕囚の生き残りで」という言葉が出てきます。「残っている」という動詞は、ヘブライ語のシャアルשׁאַרという言葉ですが、これが名詞形になると、ヘブライ語で「シェアルשְׁאָ֖ר 」となり、イザヤ書に頻繁に出て来る「残りの者」という意味になります。「残された人々」、「残りの者」、これは一体何を意味するのでしょうか。これらの言葉は、捕囚後に一つの意味を持つようになりました。それは単にバビロン捕囚から、免れ帰還が許された人々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というのは、この時点で、まだ帰還が許されていなかったネヘミヤも自ら「残りの者」として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持っているからです。かと言って、バビロン捕囚の時、バビロンへ連行されず、辛うじて災いを避けることができたユダの地に残された人々を指す言葉でもありません。それでは、捕囚後に「残された人々」、「残りの者」が持つようになった意味とは、一体何なのかと申しますと、それは「真のイスラエル」ということであります。神様の回復とは、神の裁きである捕囚の地から帰還することによって始められるのですが、その帰還の民に、「残された人々」、「残りの者」という言葉が使用されています。つまり捕囚という憂き目を通して、捕囚という試練を通して、信仰が精錬された民、聖なる共同体とされた民を指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帰還の民がたとえ、イスラエル12部族の内、ユダとベニヤミンの二部族に過ぎなかったとしても、彼らは、自分たちのことを全イスラエルの代表として見なしました(エズ6:17)。ですから、ネヘミヤの心配というのは、自分が過去に暮らした懐かしい故郷と、昔お世話になった人々を思っての心配事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ネヘミヤの心配とは、「残りの者」、真のイスラエルが、神の約束に従って、それまで受けてきた恥が払しょくされたのか、それまで受けてきた苦難と困難から解放されたのか、信仰の兄弟姉妹に関わる心配事なのです。「残りの者、真のイスラエルは、祝福されるに違いない」と、ネヘミヤは信じていたのです。ところが、エルサレムから戻ってきた人々の知らせを聞いて、大変な衝撃を受けました。ネヘミヤは座り込んで泣き、幾日も嘆き、断食の祈りを捧げずにはいられませんでした。70年の捕囚を経験した民に、もう十分と言っていいほど恥と屈辱と苦難を経験してきた民に、これ以上追い打ちをかけるように、試練が下されてよいものでしょうか。神様のご計画は一体どうなっているのでしょうか。
【2】. ネヘミヤの祈り
ハナニの報告の背景には、エズラ記4章に書かれている執拗な妨害が関連していると思われます。後にサマリア人と呼ばれるエルサレム周辺の居住民による妨害です。エルサレムに神殿が完成し、次に町の城壁と都の基礎の工事に着手していましたが、サマリア人が工事を止めさせようと、アルタクセルクセス王に書簡を送りました。しかしその書簡の中身は、印象操作をするかのような内容でした。ユダヤ人が王に「反逆」「損害」をもたらす否定的存在であるということが繰り返し訴えられていて、彼らの都の建設に込められた思いを、歪曲するような書簡だったのです。その書簡を受け取った王は、直ちに工事の一時中断を命じました。ところがサマリア人は、工事を中断させるだけでは飽き足らず、既に完成した門や城壁を破壊し、焼き討ちを行い、社会秩序の混乱を引き起こしていたのです。
ネヘミヤは祈り始めました。祈りの最初に「おお、天にいます神、主よ」と呼びかけています。ペルシアの王たちは、ゾロアスター教を信じており「天にいます神よ」という呼びかけをよく使用しましたが、ネヘミヤも同じように「天にいます神よ」と呼びかけています。しかし、ネヘミヤの祈りの対象はアフラ・マズダではなく、「主、ヤハウェ」であることを見落としてはなりません。ネヘミヤは続けて主なる神に呼びかけました。「偉大にして畏るべき神よ。主を愛し、主の戒めを守る者に対しては、契約を守り、慈しみを注いでくださる神よ。」
ここでは、神様が大いなる畏るべきお方である一方で、主の戒めを守る者に対しては、慈しみ(ヘセッド)を注いでくださる、信実な神であることが正しく告白されています。続いて罪の告白が捧げられました。6~7節をご覧ください。
“耳を傾け、目を開き、あなたの僕の祈りをお聞きください。あなたの僕であるイスラエルの人々のために、今わたしは昼も夜も祈り、イスラエルの人々の罪を告白します。わたしたちはあなたに罪を犯しました。わたしも、わたしの父の家も罪を犯しました。あなたに反抗し、あなたの僕モーセにお与えになった戒めと掟と法を守りませんでした。”
礼拝の中で私たちも、牧会祈祷の前に罪の告白がなされますね。一番最初に、罪の告白を通して赦しを頂き、神様との関係を回復することは大変重要なことです。私たちは、礼拝においてだけでなく、聖霊によって示された罪があれば、その都度、罪の告白の捧げる者たちとなりましょう。さらにネヘミヤの祈りを見て行きますと、前々回、エズラ記9章で学んだ「エズラの祈り」と同じような共通点を持っていることが分かります。それは、イスラエルの先祖の罪に対し「私たち」という主語を使いながら、自分の問題であるかのように告白している点です。教会は頭であるキリストに有機体として結ばれていますから、決して教会の罪や、教会の欠けを他人事のように語ることはできません。決して教会の悪口を他人事のようには語れないのです。公同の教会、即ち地理的・歴史的に普遍的な教会は、主にあって一つであるからです。罪の告白に続いて、今度は願いを捧げました。8~10節をご覧ください。
“どうか、あなたの僕モーセにこう戒められたことを思い起こしてください。『もしも背くならば、お前たちを諸国の民の中に散らす。もしもわたしに立ち帰り、わたしの戒めを守り、それを行うならば、天の果てまで追いやられている者があろうとも、わたしは彼らを集め、わたしの名を住まわせるために選んだ場所に連れて来る。』彼らはあなたの僕、あなたの民です。あなたが大いなる力と強い御手をもって贖われた者です。”
この箇所の9節初めに「わたしに立ち帰り」とありますが「立ち返る」いう言葉はヘブライ語の「シューブ」という言葉が使われており、「悔い改める」と訳される場合もあります。また、9節終わりの「わたしの名を住まわせるために選んだ場所」とありますが、「わたしの名」とは「主ご自身」と同じ意味ですから、「主ご自身が住まわれる場所に連れてくる」という意味になります。つまり、エルサレムへの帰還のことを言っている訳です。そしてこの8~9節において鍵かっこで括られた箇所は、申命記に書かれている御言葉からの引用だと考えられていますので、申命記4:25~31を調べてみましょう。
“あなたが子や孫をもうけ、その土地に慣れて堕落し、さまざまの形の像を造り、あなたの神、主が悪と見なされることを行い、御怒りを招くならば、わたしは今日、あなたたちに対して天と地を呼び出して証言させる。あなたたちは、ヨルダン川を渡って得るその土地から離されて速やかに滅び去り、そこに長く住むことは決してできない。必ず滅ぼされる。主はあなたたちを諸国の民の間に散らされ、主に追いやられて、国々で生き残る者はわずかにすぎないであろう。あなたたちはそこで、人間の手の業である、見ることも、聞くことも、食べることも、嗅ぐこともできない木や石の神々に仕えるであろう。しかしあなたたちは、その所からあなたの神、主を尋ね求めねばならない。心を尽くし、魂を尽くして求めるならば、あなたは神に出会うであろう。これらすべてのことがあなたに臨む終わりの日、苦しみの時に、あなたはあなたの神、主のもとに立ち帰り、その声に聞き従う。あなたの神、主は憐れみ深い神であり、あなたを見捨てることも滅ぼすことも、あなたの先祖に誓われた契約を忘れられることもないからである。”
バビロン捕囚によって異国に連行され、木や石の神々に仕えるよう強要させられて、初めて民は、モーセの律法に書かれていた預言が、正確に未来のことを見通していたことに気づかされたのだと思います。もしかしたら、この御言葉を読んだ時、鳥肌が立つほど驚いたかもしれません。ネヘミヤは祭司や書記官ではありませんが、律法の重要さに気づき、モーセの律法の書を、常に自分の傍らに置いて読み返していたのでしょう。モーセの預言には、約束も書かれていました。29節からもう一度お読みします。
“しかしあなたたちは、その所からあなたの神、主を尋ね求めねばならない。心を尽くし、魂を尽くして求めるならば、あなたは神に出会うであろう。これらすべてのことがあなたに臨む終わりの日、苦しみの時に、あなたはあなたの神、主のもとに立ち帰り、その声に聞き従う。あなたの神、主は憐れみ深い神であり、あなたを見捨てることも滅ぼすことも、あなたの先祖に誓われた契約を忘れられることもないからである。”
ネヘミヤはこの約束を握りながら、「ご覧ください!イスラエルの民は、異国の地、バビロンにおいて真剣に主ヤハウェを尋ね求め始めています。このように正確に御言葉を成就されるお方であられる主が、今 契約の民イスラエルに、御手を伸ばしてくださり、僕の祈りと、あなたの僕たちの祈りに、耳を傾けて下さい!今 回復の約束を、成就してください」と懇願しているのであります。1:11で「この人の憐れみを受け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とありますが、この人とは、アルタクセルクセス王のことです。一度工事の中断が命じられていますので、その中断命令を解除し、工事の再開を許可していただく必要がありました。ネヘミヤはハナニの訪問から、四か月間祈り続けます。そして次回2章で見ることになりますが、四か月後、ニサンの月になり、その祈りの答えを神様から頂くことになるのです。
【結論】
本日の内容をまとめます。ネヘミヤは懐かしい故郷のことを心配していたのではなく、信仰の兄弟姉妹たちのことを思い心配していました。エルサレムにおいて、残りの者たちが、不幸の中にあり、恥を受けているという報告を受け、ネヘミヤは座り込んで泣き、幾日も嘆き、断食の祈りを捧げました。ネヘミヤはモーセの預言が正確に未来を見通していることを知っていました。主から離れ、御言葉から離れる時にどのようになるのか、そして主に立ち返り、主を尋ね求めるならば、契約を覚え、主の住まわれる都エルサレムに再び集めてくださり、慈しみを注いでくださるという約束を信じていました。今、その御言葉を握りしめ、約束を成就してくださいと祈り続けているのです。エズラもそうですが、このような御言葉に立つ信仰は捕囚前のイスラエルには中々見られなかったと思います。神様はご自身の民を、必ず御手を持って導いてくださり、慈しみを注いでくださるお方です。今日、私たち教会もこのような神様によって守り導かれていることを覚え、感謝をささげたいと思います。共に祈りま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