その日が来れば 그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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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イザヤ書 11章1節~10節
11:1エッサイの株からひとつの芽が萌えいで/その根からひとつの若枝が育ち
11:2その上に主の霊がとどまる。知恵と識別の霊/思慮と勇気の霊/主を知り、畏れ敬う霊。
11:3彼は主を畏れ敬う霊に満たされる。目に見えるところによって裁きを行わず/耳にするところによって弁護することはない。
11:4弱い人のために正当な裁きを行い/この地の貧しい人を公平に弁護する。その口の鞭をもって地を打ち/唇の勢いをもって逆らう者を死に至らせる。
11:5正義をその腰の帯とし/真実をその身に帯びる。
11:6狼は小羊と共に宿り/豹は子山羊と共に伏す。子牛は若獅子と共に育ち/小さい子供がそれらを導く。
11:7牛も熊も共に草をはみ/その子らは共に伏し/獅子も牛もひとしく干し草を食らう。
11:8乳飲み子は毒蛇の穴に戯れ/幼子は蝮の巣に手を入れる。
11:9わたしの聖なる山においては/何ものも害を加えず、滅ぼすこともない。水が海を覆っているように/大地は主を知る知識で満たされる。
11:10その日が来れば/エッサイの根は/すべての民の旗印として立てられ/国々はそれを求めて集う。そのとどまるところは栄光に輝く。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イザヤ書 11章1節~10節
그 날에
2024년 12월22일 센겐다이교회 주일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이사야 11장 1~10절
서론
이사야서에는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많으며, 그래서 신약성경에는 이사야서의 말씀이 많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주보 사이의 프린트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기원전 8세기,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시기에 살았던 인물로, 남유다 웃시야 왕의 통치 말기인 기원전 740년에 주님으로부터 선지자로서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의 통치기에 남유다에서 활약한 선지자입니다.
이사야는 아람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의 왕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연합해서 남 유다로 쳐들어왔을 때, 유다의 아하스 왕에게 여호와를 신뢰하면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때의 전쟁을 시리아・에브라임 전쟁(BC.733년)이라고 합니다. 이때 아하스 왕은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고 앗수르에 원군을 요청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다는 앗수르의 개입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그 대가로 앗수르에 공물을 바치도록 강요당했습니다. 앗수르가 드디어 세력을 확장해가는 가운데, 앗수르의 위험으로부터 남유다를 지켜줄「임마누엘」이라는 왕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사야서 7장 14~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구절은 이사야가 아하스 왕에게 한 예언이며, 오늘 초대 말씀으로도 읽은 구절입니다.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15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16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17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버지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이 오는 날이니라
아하스 왕이 두려워했던 두 왕은 아람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의 왕 베가였습니다. 지금 막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합군이 남유다의 아하스 왕을 공격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사야가 예언한 처녀에게서 태어날「임마누엘」은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앗수르 제국이 그야말로 날아오르는 새도 떨어뜨릴 기세인 가운데, 이 예언은 멋지게 성취되었습니다. 주전 701년, 히스기야 왕의 통치 기간에, 앗수르 군대 랍사게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하룻밤 사이에 무려 185,000명이 죽고, 예루살렘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성경을 찾아서 읽어볼까요? 열왕기하 19장 35절을 보시겠습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엄청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의 통치에도 완전한 평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여호와를 믿는 왕이었지만, 그가 정의를 허리띠로 삼고 진리를 몸에 두르고 있었는지를 묻는다면 물음표가 붙습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 왕은 바벨론과 친교를 맺으려고 바벨론에서 보낸 사절단을 기꺼이 예루살렘 왕궁 안으로 안내하고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열왕기하 20장 12~13절). 이 행위가 바벨론 포로의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싹」이라는 예언은 아무리 생각해도 히스기야 왕으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사야는 다윗의 혈통에서, 히스기야 왕이 아닌 다른 기름 부음을 받은 왕,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그 메시아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과연 이사야의 예언은 성취될 것일까요?
(1) 메시아 예언
신약시대부터 이사야서 11장을 읽을 때, 이사야가 예언한 「한 싹」은 바로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나사렛 예수를 가리킨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기독교 교회는 그렇게 해석해 왔습니다. 애초에 예언이란 무엇일까요? 무엇을 근거로 그것이 주님의 예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예언의 정의에 대해서는 신명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어 알아보고자 합니다. 신명기 18장 21~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1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22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선지자가 말한 말씀이 실제로 성취되었는지,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여호와의 선지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말씀은 확실히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예언은 후세에까지 남겨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말한 모든 예언이 다 성취된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는 당장 이루어지지 않고 판단이 미묘한 것도 있었습니다. 오늘 읽은 이사야서 11장이 바로 그 예입니다. 이사야 11장의 말씀은 말하자면 이사야 시대에서 칠백 수십 년이 지난 후 유구한 세월을 거쳐서야 성취된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후대의 사람들이 그 예언이 여호와께로부터 온 것임을 확인시켜 준 것입니다. 11장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사야는「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새」는 다윗 왕의 아버지입니다. 다시 다윗 왕의 혈통에서 다윗과 같은 왕이 태어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앗수르 포로, 바벨론 포로를 통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독립국가가 아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다윗 왕조는 끊어졌고, 다윗 왕의 혈통은 완전히 끊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당시, 유대의 헤롯 대왕은, 다윗의 자손이 아닌 에돔인이었습다. 이사야는 왜 「다윗의 줄기에서」라고 직접 말하지 않고 「이새의 줄기에서」라고 말했을까요? 아마도 태어날 아이가, 왕이면서도 매우 낮은 모습으로 태어날 것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유다 족속 요셉의 아들 예수가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 왕가가 왕위를 잃고, 비천한 상태로 몰락한 가운데, 모든 희망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다윗의 혈통에서 메시아가 탄생한 것입니다.
(2) 영광의 귀환
태어나실 왕의 가장 큰 특징은 성령이 강림하신다는 것입니다. 2~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성령 충만한 왕은, 무력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진리로 자기 백성을 구원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4절의 「입술의 기운으로」의 「기운」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루아후 רוּחַ」라는 단어가 쓰여졌고, 직역하면 「입술의 호흡으로」으로, 혹은 「입술의 영으로」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입술의 호흡」로 혹은 「입술의 영으로」라는 뜻입니다. 같은 4절에는 「악인」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왕은 「입술의 호흡으로, 입술의 영으로 악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멸시받는 약자를 구출하고 가난한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왕은 의와 평화의 나라를 세울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는데, 그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셨습니다. 성령에 의해 참된 기름부음을 받으신 왕은 예수님뿐입니다. 11장 6~9절에 묘사된 상황은, 예수님에 의해 초래될, 의와 평화의 나라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장차 하늘과 땅이 새롭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6~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나라는, 이렇게 의와 평화가 깃든 나라인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늑대가 어린 양과 함게 거한다는 것은 상상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는 것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이기적인 생각, 혹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려는 「적의」는 이사야서 11장에서 완전히 멸망당하고 있습니다. 「적의」는 「죽음의 세력」에서 나오는 것인데, 적의, 죽음의 세력, 이것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해 멸망당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아니, 그런 말을 해도 죽음의 세력은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언젠가는 죽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죄와 결함이 있고, 이를 통해 죽음의 세력에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병에 걸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와 평화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도래했고, 그것이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언젠가 그 날에, 우리는 이사야가 11장에서 예언한 상황을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11장의 상황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고, 온 땅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덮인 상태입니다. 이 영광을 단순히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 에덴동산의 회복된 상태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타락 이전의 아담과 하와의 상태는,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짓지 않을 수도 있는 중립적인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즉, 언제 죄로 인해 타락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타락 전 아담과 하와의 상태라는 것은, 확실히 죄가 아직 인류에게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지만, 동시에 온 땅이 주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 찬 영광의 상태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뱀의 존재를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것은, 그런 타락 이전의 아담과 하와의 상태가 아니라, 장차 그 날에, 구원이 완성되어 영광에 들어간 상태를 예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는, 온 피조물이 주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마지막 날에 다시 이 세상에 재림하셔서, 구원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 날에 우리는 죽음의 세력이 멸망한 세상, 적의가 멸망한 세상을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것입니다. 11장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이새의 뿌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1절에서는 「이새의 줄기」라고 표현됐습니다. 어떻게 한 왕이 이새에서 나오는 이새의 자손이면서 동시에 이새의 뿌리, 다윗의 혈통의 근원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이 왕이 인간인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아담을 창조하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왕은 자기 백성을, 포로로 잡혀간 상태에서 구속하여 자신의 나라로 귀환시키는 것을 주된 사역으로 삼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백성들이 왕에게로 모이고, 왕은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며, 왕이 함게 계시는 곳은 영광으로 빛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귀환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에스라서 강해설교에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귀환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그 귀환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특별한 조치를 취했기에 귀환의 길이 열렸다기보다는 주님의 눈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어져서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신기하게도 귀환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하나의 예표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영광스러운 의와 평화의 나라로의 귀환, 그 귀환에 비하면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지극히 부분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지난 12월 14일, 센겐다이교회의 객원회원인 시바타 야에코 자매가 소천하셨습니다. 그 전 주 12월 8일 예배가 자매님과의 마지막 교제가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슬픔에 잠겨 계신 분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매님의 영혼은 이미 예수・그리스도께로 이끌려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다가올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영원히 썩지 않는 영광의 몸을 입고 부활할 것입니다. 그 날에, 우리도 썩지 않는 몸을 입어, 미리 부르심을 받은 선조들과 함께 의와 평화의 나라로 영광의 귀환이 허락되어 그 나라를 이어받을 자로 삼겨질 것입니다. 그 날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시바타 야에코 자매와 다시 만날 수 있는 소망이 주어져 있습니다.
결론
오늘의 내용을 정리합니다. 이사야서 11장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이 분은 의와 평화의 왕이시며, 포로로 잡혀간 자기 백성을 구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세주 메시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역을 통해, 그야말로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의롭다 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영광스러운 귀환이 허락되어 영원한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구주 예수・그리스도야말로,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죄인들을 빛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깃발입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인생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참된 목자이십니다. 크리스마스는, 그 아들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동시에 독생자가 다시 오실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로서 믿음을 새롭게 하는 그런 때입니다.
【序】
イザヤ書には来るべきメシアに関する預言が数多くあり、そのため新約聖書ではイザヤ書の御言葉が数多く引用されています。預言者イザヤとは一体どのような人物だったのでしょうか。抜粋のプリントご覧ください。預言者イザヤは、紀元前8世紀、イスラエルが南北に分裂していた頃の人物で、南ユダのウジヤ王の治世の終わりである紀元前740年に主から預言者としての召命を受けました。ヨタム王、アハズ王、ヒゼキヤ王の治世に南ユダで活躍した預言者であります。
イザヤは、アラムの王のレツィンと北イスラエルの王レマルヤの子ペカが連合して南ユダに攻め上って来た時に、ユダのアハズ王に主に信頼するならきっと救われると預言しました。この時の戦争はシリア・エフライム戦争(BC.733年)と呼ばれています。この時、アハズ王は主に信頼することをせず、アッシリアに援軍を求めました。結果的にユダはアッシリアの介入によって救われたのですが、その見返りに貢物をアッシリアに納めるようにさせられました。アッシリアがいよいよ勢力を伸ばしていく中で、アッシリアの脅威から南ユダを守ってくれるのが、「インマヌエル」と呼ばれる王の誕生でありました。イザヤ書7:14~17をご覧ください。この箇所はアハズ王に語ったイザヤの預言であり、本日の招きの言葉でもお読みさせていただいた箇所です。
“それゆえ、わたしの主が御自ら/あなたたちにしるしを与えられる。見よ、おとめが身ごもって、男の子を産み/その名をインマヌエルと呼ぶ。災いを退け、幸いを選ぶことを知るようになるまで/彼は凝乳と蜂蜜を食べ物とする。その子が災いを退け、幸いを選ぶことを知る前に、あなたの恐れる二人の王の領土は必ず捨てられる。主は、あなたとあなたの民と父祖の家の上に、エフライムがユダから分かれて以来、臨んだことのないような日々を臨ませる。アッシリアの王がそれだ。」”
アハズ王が恐れていた二人の王とは、アラムの王のレツィンと北イスラエルのペカです。今まさにアラムと北イスラエルの連合が、南ユダのアハズ王に攻め入ろうとしていたのです。この時、イザヤが預言した乙女から生まれて来る「インマヌエル」とは、アハズの子、ヒゼキヤを指していると言われています。アッシリア帝国がまさに飛ぶ鳥を落とす勢いにある中、この預言は見事に成就しました。紀元前701年、ヒゼキヤ王の治世において、アッシリア軍のラブシャケ将軍の率いる軍隊が、なんと一夜にして18万5千人死亡し(Ⅱ列王19:35)、エルサレムから撤退することになったのです。聖書を調べてみましょう。Ⅱ列王19:35をご覧ください。
“その夜、主の御使いが現れ、アッシリアの陣営で十八万五千人を撃った。朝早く起きてみると、彼らは皆死体となっていた。”
ものすごい奇跡が起こりました。しかし、そのヒゼキヤ王の治世によっても、完全な平和は訪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ヒゼキヤ王は主を信じる王様でありましたが、彼が正義をその腰の帯とし、真実をその身に帯びていたのかと問えば、それについては疑問符がついてしまいます。と言いますのは、ヒゼキヤ王はバビロンと親睦を図ろうとし、バビロンから遣わされた使節団を喜んでエルサレム神殿の中へ案内し、神殿の宝物を見せびらかしたからです(列王下20:12~13)。この行いがバビロン捕囚のきっかけになったと見る人もいます。従いまして、本日の箇所のエッサイの株から生まれてくる「若枝」という預言は、どう考えてもヒゼキヤ王として解釈することは不可能なのであります。イザヤは、ダビデの血統から、ヒゼキヤ王ではなく、別の油注がれた王、メシアについて預言していると考えられるのです。では、そのメシアとは一体誰なのでしょうか。果たしてイザヤの預言は成就されるのでしょうか。
【1】. メシア預言
新約の時代からイザヤ書11章を読む時、イザヤの預言した「若枝」とは、まさに、今から2千年前にベツレヘムでお生まれになったナザレのイエスのことであると解釈することが出来ます。少なくともキリスト教会はそのように解釈してきました。そもそも預言とは何でしょうか。何をもって、それが主からの預言とされるのでしょうか。預言の定義については、申命記に次のように書かれていますので、調べてみたいと思います。申命記18:21~22をご覧ください。
“あなたは心の中で、「どうして我々は、その言葉が主の語られた言葉ではないということを知りうるだろうか」と言うであろう。その預言者が主の御名によって語っても、そのことが起こらず、実現しなければ、それは主が語られたものではない。預言者が勝手に語ったのであるから、恐れることはない。”
預言者の語った御言葉が実際に成就されたのかどうか、それを規準にして、主からの預言者であるのかどうか判断しなさいと書かれています。イザヤの預言した御言葉は確かに成就されました。だからこそその預言は後世にまで残されたのです。しかし、イザヤの語った全ての預言が成就された訳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その中には、すぐには成就されず、判断が微妙なものもありました。本日お読みしたイザヤ書11章が、まさにその一例です。イザヤ書11章の御言葉は、言ってみればイザヤの時代から七百数十年後に悠久の時を経て、成就されたのであります。当時の人々によってではなく、後の時代の人々によって、その預言が主からのものであるということを確認されたのであります。11:1をご覧ください。
“エッサイの株からひとつの芽が萌えいで/その根からひとつの若枝が育ち”
イザヤはエッサイの株からひとつの芽が萌え出で、ひとつの若枝が育つと言いました。「エッサイ」とはダビデ王の父親です。再びダビデ王の血統から、ダビデのような王様が生まれるということを意味しているのです。しかしアッシリア捕囚、バビロン捕囚を通して、イスラエルはもはや独立国ではなくなり、帝国によって支配されるようになっていました。ダビデ王朝は途絶え、ダビデ王の血統は完全に伐採されたかのように見えました。イエス様がお生まれになった当時、ユダヤのヘロデ大王とは、ダビデの子孫ではなく、エドム人でありました。イザヤはなぜ、直接「ダビデの株から」と言わずに、「エッサイの株から」と言ったのでしょうか。恐らく生まれて来る子が、王でありながら、大変低い姿で生まれて来ることを暗示しているのだと思います。聖書にはユダ族ヨセフの子イエスがベツレヘムの飼い葉桶でお生まれになったと書かれています。ダビデの王家がその王位を失い、卑しい状態に没落した中、全ての希望を失ったかのように見える状況において、ダビデの血統からメシアがお生まれになったのです。
【2】. 栄光の帰還
お生まれになるこの王の大きな特徴は、聖霊がとどまるということです。2~5節をご覧ください。
“その上に主の霊がとどまる。知恵と識別の霊/思慮と勇気の霊/主を知り、畏れ敬う霊。彼は主を畏れ敬う霊に満たされる。目に見えるところによって裁きを行わず/耳にするところによって弁護することはない。弱い人のために正当な裁きを行い/この地の貧しい人を公平に弁護する。その口の鞭をもって地を打ち/唇の勢いをもって逆らう者を死に至らせる。正義をその腰の帯とし/真実をその身に帯びる。”
聖霊で満たされた王は、武力で民を治めるのではなく、正義と真実によって、御自身の民を救いに導かれると預言されています。4節の「唇の勢い」の勢いという言葉は、ヘブライ語で「ルアフ רוּחַ」という言葉が用いられていて、直訳しますと「唇の息によって」、或いは「唇の霊によって」という意味になります。同じく4節の「逆らう者」とは、直訳すると「悪人」という意味になります。ですから王は、「唇の息によって、唇の聖霊によって、悪人を死に至らせる」。蔑まれている弱い者を助け出し、貧しい者に憐れみを注ぎ、彼らを救済すると預言されています。さらに、この王は義と平和の国を樹立するだろうとも預言されています。この王は、イエス・キリスト指し示しています。イエス様は公生涯を始める際、ヨルダン川で洗礼者ヨハネから洗礼を受けたのですが、その時、聖霊が鳩のように下ってきました。聖霊によって真の油注ぎを受けた王はイエス様お一人なのです。11:6~9節に描かれている状況は、イエス様によってもたらされる義と平和の国について描写されていますが、これは、やがての日に天と地が更新されるということを暗示していると考えられます。6~9節をご覧ください。
“狼は小羊と共に宿り/豹は子山羊と共に伏す。子牛は若獅子と共に育ち/小さい子供がそれらを導く。牛も熊も共に草をはみ/その子らは共に伏し/獅子も牛もひとしく干し草を食らう。乳飲み子は毒蛇の穴に戯れ/幼子は蝮の巣に手を入れる。わたしの聖なる山においては/何ものも害を加えず、滅ぼすこともない。水が海を覆っているように/大地は主を知る知識で満たされる。”
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もたらされる国とは、このように義と平和が宿る国でありますが、常識的に考えるなら、狼が子羊と共に宿るなんてことは考えられません。豹が子山羊と共に伏すなんていうことも考えられません。私たちが現在生きている弱肉強食の世界に見られる、利己的な考え、或いは他に危害を及ぼそうとする「敵意」は、このイザヤ書11章において、完全に滅ぼされています。「敵意」とは、「死の力」から出ているものでありますが、敵意、死の力、これらは、イエス様の十字架と復活によって滅ぼされてしまいました。このようなことを言うと、「いやそんなことを言っても、死の力は依然として、私たちに影響を及ぼしているじゃないですか。私たちだって、やがて死ぬではありませんか。」とおっしゃるかと思います。確かに私たちには罪や欠けがあり、それを通して死の力の影響を受けることはあります。病にかかり、様々な影響を受けることでしょう。しかし義と平和の国は、イエス・キリストにあって既に到来しており、それが霊的であるために、私たちの目には見えないということなのです。やがての日に、私たちはイザヤが11章で預言している状況をはっきりと見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イザヤ11章の状況は、主を知る知識で満たされていて、全地が神の栄光で覆われている状態であります。この栄光は、単にアダムとエバが罪を犯す以前のエデンの園の回復された状態であると、単純に言い切ることは出来ないと思います。なぜなら、堕落前のアダムとエバの状態は、罪を犯すことも、犯さないこともできるニュートラルな状態だったからです。つまり、いつ、罪によって堕落するかも分からない不安定な状態だったからです。堕落前のアダムとエバの状態とは、確かに罪が人類にまだ入っていませんでしたが、同時に全地が主の知識で満たされた栄光の状態には、まだ至ってはいませんでした。蛇の存在を通してそのことを知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従いまして、イザヤが預言しているのは、そのような堕落前のアダムとエバの状態ではなく、やがての日に、救いが完成し、栄光に入れられた状態について預言しているということが分かるのです。その時には、全被造物が主なる神を賛美いたします。イエス・キリストは、やがての日に、再びこの世に再臨され、救いを完成してくださることでしょう。その日、死の力が滅ぼされている世界を、敵意が滅ぼされている世界を、私たちはその目ではっきりと見ることになるのです。11:10節をご覧ください。
“その日が来れば/エッサイの根は/すべての民の旗印として立てられ/国々はそれを求めて集う。そのとどまるところは栄光に輝く。”
「エッサイの根」という表現が出てきます。1節では「エッサイの株から」と表現されていました。同じ一人の王様が、どのようにして、エッサイから出る子孫であり、同時にエッサイの根、ダビデの血統の源になることができるのでしょうか。それは、この王が、人間であると同時に、神の御子であられるからです。神の御子は全被造物を創造されたお方でもあられ、アダムを創造されたお方でもあるのです。王はご自身の民を、捕虜となった状態から贖い出し、御自身の国に帰還させることを、その主な働きとしています。具体的に言えば、王のもとに民が集められ、王はすべての民の旗印として立てられ、王が共におられる所は栄光に輝くだろうと書かれています。この帰還を想像してみてください。私たちは今、エズラ書の講解説教の中で、バビロン捕囚からの帰還について学んでいますね。その帰還とは、イスラエルの民が何か特別な策を講じたために帰還の道が開かれたというより、主の目がイスラエルの民に注がれていて、主の導きの中で不思議に帰還の道が開かれていったということを学びました。しかし、バビロンからの帰還とは一つの予表に過ぎません。私たちの栄光に満ちた義と平和の国への帰還、その帰還に比べるなら、バビロンからの帰還とは極めて部分的なものに過ぎないのであります。
先日12月14日に、せんげん台伝道所の客員である柴田八重子姉妹が天に召されました。前の週の12月8日の礼拝が姉妹との最後の交わりになるとは、まさか思いもよりませんでした。今、悲しみに沈んでおられる方もいらっしゃるかと思います。姉妹の霊魂はすでにイエス・キリストの御許に引き寄せられ、安息に入れられています。そしてやがて来るイエス・キリストの再臨の日に、永遠に朽ちない栄光のからだを着せられて、復活することでしょう。その日が来れば、私たちも朽ちない体を与えられ、召された先人たちとともに、義と平和の国への栄光の帰還が許され、御国を受け継ぐ者とさせられるのです。その日が来れば、イエス・キリストにあって、私たちは柴田八重子姉妹と再び会える希望が与えられているのであります。
【結論】
本日の内容をまとめます。イザヤ書11章の預言を成就させるため、父なる神は、御自身の独り子イエス・キリストをこの世に送ってくださいました。このお方は、義と平和の国の王であり、捕虜とされたご自身の民を贖うために来て下さった救い主メシアであられます。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と復活の御業を通して、まさに、罪の束縛から解放され、義とされ、神の子とされました。そして、やがての日には、栄光に満ちた帰還が許され、永遠の御国を相続する者としてくださるのです。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こそ、暗闇の中でさまよう罪びとを光に導いてくださる神様の愛の旗印です。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こそ、私たちの人生を守り導いてくださる真の羊飼いです。クリスマスとは、その御子の御降誕を心からお祝いし、同時に再び御子が来られる日を切に待ち望む者たちとして、信仰を新たにさせていただく、そのような時なのであり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