帰還した人々 귀환 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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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説教
-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エズラ記 2章1節~70節
1捕らえ移された先から上って来たこの州の人々は次のとおりである。彼らはバビロンの王ネブカドネツァルによってバビロンに連行されたが、それぞれエルサレムとユダにある自分の町に帰った者たちである。
2彼らはゼルバベル、イエシュア、ネヘムヤ、セラヤ、レエラヤ、モルドカイ、ビルシャン、ミスパル、ビグワイ、レフム、バアナと共に帰って来た。イスラエルの民の男子の数。
3パルオシュの一族二千百七十二人、
4シェファトヤの一族三百七十二人、
5アラの一族七百七十五人、
6パハト・モアブの一族、すなわちイエシュアとヨアブの一族二千八百十二人、
7エラムの一族千二百五十四人、
8ザトの一族九百四十五人、
9ザカイの一族七百六十人、
10バニの一族六百四十二人、
11ベバイの一族六百二十三人、
12アズガドの一族千二百二十二人、
13アドニカムの一族六百六十六人、
14ビグワイの一族二千五十六人、
15アディンの一族四百五十四人、
16アテル、すなわちヒズキヤの一族九十八人、
17ベツァイの一族三百二十三人、
18ヨラの一族百十二人、
19ハシュムの一族二百二十三人、
20ギバルの一族九十五人、
21ベツレヘムの男子百二十三人、
22ネトファの男子五十六人、
23アナトトの男子百二十八人、
24アズマベトの男子四十二人、
25キルヤト・アリムとケフィラとベエロトの男子七百四十三人、
26ラマとゲバの男子六百二十一人、
27ミクマスの男子百二十二人、
28ベテルとアイの男子二百二十三人、
29ネボの男子五十二人、
30マグビシュの一族百五十六人、
31もう一人のエラムの一族千二百五十四人、
32ハリムの一族三百二十人、
33ロド、ハディド、オノの男子七百二十五人、
34エリコの男子三百四十五人、
35セナアの一族三千六百三十人。
36祭司。エダヤの一族、すなわちイエシュアの家族九百七十三人、
37イメルの一族千五十二人、
38パシュフルの一族千二百四十七人、
39ハリムの一族千十七人。
40レビ人。イエシュアとカドミエル、ビヌイ、ホダウヤの一族七十四人。
41詠唱者。アサフの一族百二十八人。
42門衛。シャルムの一族、アテルの一族、タルモンの一族、アクブの一族、ハティタの一族、ショバイの一族、合計百三十九人。
43神殿の使用人。ツィハの一族、ハスファの一族、タバオトの一族、
44ケロスの一族、シアハの一族、パドンの一族、
45レバナの一族、ハガバの一族、アクブの一族、
46ハガブの一族、シャムライの一族、ハナンの一族、
47ギデルの一族、ガハルの一族、レアヤの一族、
48レツィンの一族、ネコダの一族、ガザムの一族、
49ウザの一族、パセアの一族、ベサイの一族、
50アスナの一族、メウニムの一族、ネフシムの一族、
51バクブクの一族、ハクファの一族、ハルフルの一族、
52バツルトの一族、メヒダの一族、ハルシャの一族、
53バルコスの一族、シセラの一族、テマの一族、
54ネツィアの一族、ハティファの一族。
55ソロモンの使用人の一族。ソタイの一族、ソフェレトの一族、ペルダの一族、
56ヤラの一族、ダルコンの一族、ギデルの一族、
57シェファトヤの一族、ハティルの一族、ポケレト・ハツェバイムの一族、アミの一族。
58神殿の使用人およびソロモンの使用人の一族、合計三百九十二人。
59テル・メラ、テル・ハルシャ、ケルブ、アダン、イメルから上って来たが、自分の家族と血筋が、イスラエルに属するかどうか示せなかった者は次のとおりである。
60デラヤの一族、トビヤの一族、ネコダの一族、六百五十二人。
61また祭司の一族のうち、ホバヤの一族、ハコツの一族、ギレアド人バルジライの娘の一人をめとったので、その名が由来するバルジライの一族は、
62自分たちの家系の記録を捜したが発見できず、祭司職に就くことを禁じられた。
63総督は、ウリムとトンミムをつけた祭司が立つまで彼らが聖なる食べ物にあずかることを禁じた。
64会衆の総数は、四万二千三百六十人であった。
65ほかに男女の使用人がいて、それが七千三百三十七人いた。また、男女の詠唱者が二百人いた。
66彼らの馬は七百三十六頭、らばは二百四十五頭、
67らくだは四百三十五頭、ろばは六千七百二十頭であった。
68エルサレムの主の神殿に着くと、家長の幾人かは、神殿をその場所に再建するために随意の献げ物をささげた。
69彼らはそれぞれ力に応じて工事の会計に金六万一千ドラクメ、銀五千マネ、祭服百着を差し出した。
70祭司、レビ人、民の一部、詠唱者、門衛、神殿の使用人はそれぞれ自分たちの町に住んだ。イスラエル人は皆それぞれ、自分たちの町に住んだ。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エズラ記 2章1節~70節
귀환 한 사람들
2024년 11월3일 센겐다이교회 주일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에스라서 2장 1~70절
서론
하나님에 의해 마음이 감동 된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을 재건하기로 결심합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마음은 일시적인 징계, 그 자체가 아니라 완고한 백성이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어 다시금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페르시아로부터의 귀환은 그 광경이 출애굽을 연상케 하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귀환이었기 때문에, 귀환하는 백성들은 자신들이 마치 애굽으로부터 구속 받은, 옛 이스라엘 백성인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애초에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이 어떤 존재였는지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에 의해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백성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벨론 포로에서 오랜 세월을 거쳐 제 1차로 귀환한 약 42,000 명의 사람들의 명단이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우리가 그들의 계보와 명단을 읽는 것은 힘들고 조금도 흥미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당시 유대인들에게 이 명단은 기쁨과 감격의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도 에스라 2장의 말씀을 통해 은혜 얻기를 소망합니다. 2장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계보의 기록이 남아있는 자들
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2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1차부터 3차까지 약 100년에 걸쳐 이루어졌지만, 여기에 열거된 명단은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에게 보고된 명단(5장 4절)으로 비교적 초기의 명단이라고 여겨집니다. 즉 1차 귀환 당시의 명단이라고 생각됩니다.
1절 끝에는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70절에서도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각자의 성읍」이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이며 쉽게 버릴 수 없는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땅이기 때문에 그곳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폐허가 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보다는 그대로 바벨론에 남아 계속 정착하는 편이 훨씬 더 생활이 안정적이고, 훨씬 더 땅도 비옥하며 훨씬 더 쾌적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소명을 가지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업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명단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2절에 귀환한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리스트업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느헤미야」, 「모르드개」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이는 시대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잘 알고 잇는 성벽을 재건한 느헤미야나 왕후 에스더의 삼촌인 모르드개와는 관계없는 인물이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에 나오는 지도자들 중 특히 중요한 인물은 스룹바벨과 예수아 두 사람입니다. 스룹바벨은 남유다 여호야긴 왕의 손자이며 다윗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예수아는 아론의 가문으로 훗날 대제사장이 되는 인물입니다. 이 두 사람의 사역에 대해서는 스가랴서에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제 1차 귀환 백성을 이끈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어서 3절부터는 일반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 수가 기술되고 그 다음에 제사장, 레위인, 노래하는 자, 문지기, 성전을 섬기는 자들이라는 순서로 기술되어 갑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절의 마지막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따라서 2장 3~35절까지는 이스라엘 일반 백성 남자의 수가 적혀 있습니다. 여기서는 3~20절까지는 가계에 따라 인원수가 기록되어 있는데, 중간에 형식이 바뀌어 21~35절까지는 토지에 따라 인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21절 이후를 보면 「베들레헴, 느도바, 아나돗, 아스마웻, 기랴다림, 그비라, 브에롯, 라마, 믹마스, 벧엘, 아이..」등은 모두 땅 이름들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스라엘의 토지 소유제는 부족별로, 더 말하면 가족별로 그 토지의 배분이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3절에서 가족의 이름 「바로스」가 있는데, “「바로스」일족에게 할당된 땅이 바로 여기다! 그리고 「스바댜」일족의 할당지는 여기다!”라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자명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보의 기록이라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에서 중요했습니다. 첫째, 바벨론에서 귀환해 회복된 공동체가 옛 이스라엘에 기원을 둔 「언약 백성」임을 주장한다는 것이고, 그리고 둘째, 지금 설명한 대로 계보를 통해 소지 소유권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 주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선조에게 할당하신 기업의 땅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계보는 그 사실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36절 첫머리를 보겠습니다. 「제사장들」이라는 표제가 있습니다. 계속 읽어 보면 알겠지만,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귀환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목수나 장식을 위한 기술자나 대장장이의 명단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명단이 작성되지 않고, 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백성이라는 관점에서 명단이 작성되어 있습니다. 이 점은 매우 흥미로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를 드리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습니다. 36~39절까지 네 가정의 제사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 시대에는 24가정이 제사장의 가문으로 규정되어 있었지만, 이 시대에는 4가정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인원은 4개의 가문을 합해 약 4,289명입니다. 이는 전체 42,000명의 10%에 해당합니다. 즉, 공동체의 실제 1할의 사람이 제사장이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됩니다. 이를 통해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단순히 성전을 재건하는 것만이 아니라 예배를 회복하는 것, 그리고 이스라엘의 과거와의 연속성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은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이란 어떤 존재였는지 그 일을 탐구하면서 주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 것을 무엇보다 우선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40절 첫머리를 보시겠습니다. 「레위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사장의 가문도 레위인이지만, 특히 아론의 가문은 대제사장으로 인정받았고, 그 이외의 가문은 레위인이었습니다. 이번에 레위인의 귀환자는 극소수였습니다. 성전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점, 그리고 레위인들에게는 할당된 땅이 없었던 점 등이 귀환에 대한 동기부여가 약했던 이유로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1절 첫머리의 「노래하는 자들」은 레위인들과는 다릅니다. 예배에서 찬양을 이끈 사람이라기보다는 일반 찬창을 담당한 노래하는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42절의 첫머리의 「문지기의 자손들」도 역시 레위인과는 다르지만, 성전의 문을 지키는 일이 일족에게 맡겨져 있었습니다.
43절에는 「느디님 사람들」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느디님 נְּנְּתִינִ֑ים」은 「성전을 섬기는 자들」이라고 의역할 수 있습니다. 느디님이 무엇이냐면 이방인이면서 성전을 섬기는 사람으로 개종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일은 성전의 장작을 준비하거나 물을 준비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여호수아서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할 때 원주민인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죽임을 당할 것을 두려워해 개종한 기사가 적혀 있습니다. 여오수아 9장 22~2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2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어찌하여 심히 먼 곳에서 왔다고 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23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어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 하니
24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25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26 여호수아가 곧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여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서 건져서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27 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여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이처럼 가나안 원주민이었던 기브온 사람들은 먼 곳에서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노예가 됨으로써 자신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면했다는 것입니다. 성전을 섬기는 「느디님」사람들은 본래 이방인이었지만, 그들도 느디님으로서의 계보를 제대로 가지고 있었고, 이제는 그들도 이스라엘의 일부로 간주되고 있는 것입니다.
55절에는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의 신하」는 솔로몬 시대에 이방인이 성전을 섬기는 자로 개종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그들도 이스라엘의 일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2) 계보를 발견하지 못한 자들
그런데 59절 이후부터는 이상한 문장이 나옵니다. 59~63절까지 보시면 계보 기록을 발견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59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들의 조상의 가문과 선조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밝힐 수 없었더라
60 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모두 육백오십이 명이요
61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의 한 사람을 아내로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을 따른 자라
62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하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63 방백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 652 명은 자신의 계보 기록을 별견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계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유대인으로서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마도 원래는 이방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그들조차도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부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또한 제사장 일족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의 자손도 자신들의 가계애 대한 계보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제사장직을 맡는 것이 금지되었고, 우림과 둠림을 쓴 제사장이 세워지기 전에는 즉, 「대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제사장으로서 지성물을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 난제를 보류한 것입니다. 나중에 학고스 자손만이 제사장직에 복귀할 수 있었지만, 율법에 따르면 제사장직은 왕직과 마찬가지로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표하기 위해 혈통이 제대로 된 사람이어야만 그 직분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에서 태어나는 분이고, 그리고 메시아는 진정한 대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계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부로 간주되었습니다. 그 전체 총수는 64절에 기록된 대로 42,360 명, 이 외에도 남녀 노예, 남녀 노래하는 자, 그리고 많은 가족과 함께 귀환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예루살렘 도착
드디어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성경에는 어떤 경로를 따라 갔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거리는 직선거리로 약 800km, 실제 이동 거리로는 1,000km를 훌쩍 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800k는 자동차로 이동했을 때 토쿄에서 히로시마까지의 거리입니다. 엄청난 거리입니다. 귀향민들이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68,69절을 보기시 바랍니다.
68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 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기쁘게 드리되
69 힘 자라는 대로 공사하는 금고에 들이니 금이 육만 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백벌이었더라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자신들의 집을 짓기 위해 행동한 것도 아니고,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행동한 것도 아닙니다. 성전 재건을 위해 자발적으로 예물을 바쳤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들의 열정과 결의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고 예배를 회복하는 것,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언약의 백성으로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을 비전으로 삼았습니다. 이를 위한 헌신이었으며, 이를 위한 예물이었습니다. 그것은 강요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드려진 것이었습니다.
적용
오늘의 내용을 정리하겠습니다.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고레스 왕의 칙령을 받고,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귀환했습니다. 귀환한 백성들 중에는 계보 기록을 찾지 못해 자신의 뿌리를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원래 유대인도 아니고, 아브라함의 자손도 아니었지만, 스스로 주의 백성이라고 믿고 하나님이 주신 기업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고 옛 언약의 백성이 하나님과 교제하던 그 교제를 회복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이스라엘 공동체에 합류하게 됩니다. 귀환한 백성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자발적인 예물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배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을 해보면, 첫째, 우리가 부모가 기독교인이고,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는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혹은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는지, 그런 것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있는지, 지금 말씀에 따라 걷고 있는지 그 점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둘째, 우리도 예배를 회복하는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기업의 땅은 어디일까요?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부르심을 받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것입니다. 귀환한 백성이 예배자였던 것처럼, 우리도 하늘의 기업인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는 예배자로 살아가도록 합시다.
【序】
神様によって心動かされた人びとは、エルサレムに上り、神殿を立て直すことを決意いたしました。神様のイスラエルに対する御心は、一時的な懲らしめそれ自体ではなく、頑なな民が新しい人へと変えられ、再びご自身との愛の交わりを回復させることであります。ペルシアからの帰還は、その光景が出エジプトを想起させるような一方的な神の恵みによる帰還であったため、帰還の民は自分たちがまるでエジプトから贖われた、いにしえのイスラエルの民であるようなそんな感覚を覚えたことでしょう。そして、そもそも契約の民イスラエルとは、どのような存在だったのか、もう一度思い起こす契機となったに違いありません。このようにして神様によって心動かされた人びとは、神の愛に、信仰によって応答していく民へと変えられつつありました。本日の箇所では、バビロン捕囚から長い年月を経て、第一次帰還した約4万2千人の人々の名簿が詳しく書かれています。ユダヤ人ではない私たちが、彼らの系図や名簿を読むのは大変で、少しも面白くありません。しかし、恐らく当時のユダヤ人にとっては、この名簿は喜びと感動の涙なくしては、読み進めることのできない箇所であったと思われます。本日もエズラ記2章の御言葉を通して恵みに与りたいと願います。2:1~2節の途中までご覧ください。
【1】. 家系の記録が残っている者たち
“捕らえ移された先から上って来たこの州の人々は次のとおりである。彼らはバビロンの王ネブカドネツァルによってバビロンに連行されたが、それぞれエルサレムとユダにある自分の町に帰った者たちである。彼らはゼルバベル、イエシュア、ネヘムヤ、セラヤ、レエラヤ、モルドカイ、ビルシャン、ミスパル、ビグワイ、レフム、バアナと共に帰って来た。”
バビロンからの帰還は、第一次から第三次まで、約100年に渡ってなされましたが、ここでリストアップされている名簿は、ユーフラテス西方の総督タテナイに報告された名簿として(5:4)、比較的初期の頃の名簿だと考えられています。即ち第一次帰還の頃の名簿だと考えてられています。
1節の最後には「自分の町に帰った」とあります。この言葉は、70節においても繰り返し、強調されています。「自分の町」とは何か、それは、イスラエルの人々にとって神によって与えられた「約束の地」を意味します。神様から嗣業として与えられた土地であり、簡単に捨てることの出来ない土地です。イスラエルの民は神様から嗣業として与えられたがゆえに、そこに帰ろうとしているのです。しかし廃墟となったエルサレムに戻るよりは、そのままバビロンに定住し続ける方が、はるかに生活が安定し、はるかに土地も肥沃であり、はるかに快適であったに違いありません。それにも拘わらず、彼らは召命感を持ち、自分たちに与えられた嗣業の地に戻って、神殿を再建しようとしているのです。
名簿を概観いたしますと、最初に、2節において帰還した人々の指導者たちがリストアップされています。因みに「ネヘムヤ」、「モルドカイ」という人物が出てきますが、これは、時代的に合致しないために、私たちがよく知っている城壁を再建したネヘミヤや、王妃エステルの叔父であるモルデカイとは関係のない人物だと思われます。ここに出て来る指導者たちの中で特に重要な人物は、ベルゼブルとイエシュアの二人です。ゼルバベルは南ユダのエホヤキン王の孫であり、ダビデの子孫にあたりました。そして、イエシュアはアロンの家系で後に大祭司となる人物です。この二人の働きについては、ゼカリヤ書に詳しく書かれています。とにかく彼らは第一次帰還民を導いたリーダーたちでありました。
続いて、3節からは一般のイスラエルの民の男子の数が記述され、その次に、祭司、レビ人、詠唱者、門衛、神殿に仕える者たちという順番で記述されて行きます。早速、具体的に見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2節の最後をご覧ください。「イスラエルの民の男子の数」という見出しがありますね。従いまして2:3~35節までは、イスラエルの一般の民の男子の数が書かれています。ここでは、3~20節までは家系に従って人数が記述されていますが、途中で書式が変わり21~35節までは土地に従って人数が記述されています。これは一体どういう事でしょうか。21節以降を見て見ますと、ベツレヘム、ネトファ、アナトト、アズマベト、キルヤト・アリム、ラマ、ミクマス、ベテル、アイ…など、これら全て土地の名前です。このことが意味しているのは、イスラエルの土地所有制は、民族ごとに、さらに言えば家族ごとにその土地の割り当てが決められていたということだと思います。ですから、3節で家族の名前「パルオシュ」がありますが、「パルオシュ」の一族の割り当て地とはここだよ!そして「シェファトヤ」の一族の割り当て地とはここだよ!という事が、イスラエルの人々にとって自明のことであったという事です。イスラエルの民にとって家系の記録というのは、二重の意味で重要でありました。第一に、バビロンから帰還し回復された共同体が、いにしえのイスラエルに起源を持つ、「契約の民」である、そのことを主張するということ、そして第二に、今、説明したように家系が、そのまま土地の所有を証明するということです。イスラエルの民がカナンの地に入植して以来、主なる神から自分たちの先祖に割り当てられた嗣業の地は決められていました。家系はそのことを主張するのであります。
続いて36節の冒頭をご覧ください。「祭司」という見出しがあります。このまま読み進めて行けば気づくことですが、彼らは神殿を再建するために帰還したはずでした。ですから、大工や、装飾のための技工士や、鍛冶職人の名簿が出て来るのかなと思いきや、そのような観点からは名簿は作成されておらず、主なる神に礼拝を捧げる民という観点から名簿が作成されています。このことは大変興味深い点だと思います。祭司は、イスラエルの民が礼拝を献げるのに、欠かせない存在でありました。36~39節まで4家族の祭司が記述されています。ダビデの時代には、24家族が、祭司の家系として規定されていましたが、この時代には4つの家族のみでした。しかし、その人数は4つの家族合わせて約4,289名です。これは、全体の4万2千人の10%に当たります。つまり、共同体の実に一割の人間が祭司であり、神に礼拝を献げるための人々であった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このことから、バビロンからの帰還は、単に神殿を再建することだけではなく、礼拝を回復すること、そしてイスラエルの過去との連続性の中で、神様との関係を回復することを意味していたということが良く分かるのです。神様によって心動かされた人びとは、契約の民イスラエルとは、どのような存在だったのか、そのことを探求しながら、主なる神との交わりを回復することを何よりも優先にしていたということです。
続いて40節の冒頭をご覧ください。「レビ人」という見出しがあります。祭司の家系もレビ人ですが、特にアロンの家系が祭司と認められ、それ以外の家系はレビ人でした。今回、レビ人の帰還者は大変少数でした。神殿がまだ完成されていないこと、そしてレビ人には割り当ての土地が無かったことなどが、帰還に対する動機付けが弱かった理由として挙げられると思います。
41節の冒頭の「詠唱者」とは、レビ人とは異なります。礼拝において讃美を導いた者というより、一般の歌唱を担当した歌い手だと考えられています。
42節の冒頭の「門衛の一族」も、やはりレビ人とは異なりますが、神殿の門を守る仕事が、一族に任せられていました。
43節には、「神殿に仕える者たち」とあります。「神殿に仕える者たち」とは、意訳でありヘブライ語を見ると、一言で「ネティニム נְּתִינִ֑ים」と書かれています。ネティニムとは何かと言うと、異邦人でありながら神殿に仕える者として改宗させられた人々を指していると思われます。彼らの仕事は神殿の薪を準備したり、水を準備したりする仕事を任されました。ヨシュア記にはイスラエルがカナンの地に入植する際、原住民であるギブオン人が、イスラエルに殺されるのを恐れて、改宗した記事が書かれています。ヨシュア9:22~27をご覧ください。
“ヨシュアはギブオンの住民を呼び集めて、彼らに言った。「お前たちはなぜ、我々を欺いて、はるかな遠い国から来たと言ったのか。お前たちは我々のうちに住んでいるではないか。お前たちは今、呪われて、奴隷となり、お前たちの間からわが神の宮の柴刈り、水くみが断えることはないだろう。」彼らはヨシュアに答えた。「あなたの神、主がその僕モーセに、『この地方はすべてあなたたちに与える。土地の住民をすべて滅ぼせ』とお命じになったことが僕どもにはっきり伝わって来たので、あなたたちのゆえに命を失うのを非常に恐れ、このことをいたしました。御覧ください。わたしたちは今はあなたの手の中にあります。あなたが良いと見なし、正しいと見なされることをなさってください。」ヨシュアは彼らにそのようにし、イスラエルの人々の手から彼らを助け、殺すことを許さなかった。ヨシュアは、その日、彼らを共同体および主の祭壇のため、主の選ばれた所で柴刈りまた水くみとした。それは今日まで続いている。”
このようにカナンの原住民であったギブオン人は、遠いところから来ましたと嘘をつき、奴隷になることで自分たちが殺されることから免れたという事です。神殿に仕える者「ネティニム」たちは、本来異邦人でありましたが、彼らもネティニムとしての系図をきちんと持っていて、今では彼らもイスラエルの一部として数えられているのです。
55節には、「ソロモンの僕の一族」とあります。「ソロモンの僕」とは、ソロモンの時代に異邦人が神殿に仕える者として改宗させられた人びとを指していると思われます。同じように、今では彼らもイスラエルの一部と考えられています。
【2】. 家系の記録を発見できなかった者たち
さて、59節以降には、奇妙な文章が出てきます。家系の記録を発見できなかった者たちです。59~63節までご覧ください。
“テル・メラ、テル・ハルシャ、ケルブ、アダン、イメルから上って来たが、自分の家族と血筋が、イスラエルに属するかどうか示せなかった者は次のとおりである。デラヤの一族、トビヤの一族、ネコダの一族、六百五十二人。また祭司の一族のうち、ホバヤの一族、ハコツの一族、ギレアド人バルジライの娘の一人をめとったので、その名が由来するバルジライの一族は、自分たちの家系の記録を捜したが発見できず、祭司職に就くことを禁じられた。総督は、ウリムとトンミムをつけた祭司が立つまで彼らが聖なる食べ物にあずかることを禁じた。”
デラヤの一族、トビヤの一族、ネコダの一族の652人は、自分たちの家系の記録を発見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自分たちの家系を発見できなかったというのは、ユダヤ人として考えられないことですが、恐らくもともとは異邦人であったのでしょう。しかし、ここではそんな彼らでさえ、イスラエルの共同体の一部として数えられているという事に注目してください。また、祭司の一族のうち、ホバヤの一族、ハコツの一族、バルジライの一族も、自分たちの家系の記録を発見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彼らについては、祭司職に就くことが禁じられ、ウリムとトンミムをつけた祭司が立つまで、つまり「大祭司」が立つまで、祭司として与ることのできる聖なる食べ物を与ることが禁じられました。大祭司が立つまで、この難問を保留したという訳ですね。後に、ハコツの一族だけは祭司職に復帰することが許されますが、律法によりますと、祭司職というのは、王職と同じようにやがて来るメシアを予表するために、きちんとした血統を持っている人でなければその職に就くことはできませんでした。メシアとはダビデの子孫から、アブラハムの子孫から生まれて来るお方であり、そしてメシアとは真の大祭司なるお方だからです。だからと言って、彼らが家系の記録を発見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という理由で、イスラエルの民から除外される訳ではありません。彼らもイスラエルの共同体の一部として数えられました。その全体の総数は、64節に書かれているように、42,360名、この他にも、男女の奴隷、男女の詠唱者と一緒に帰還し、そして多くの家畜と一緒に帰還したということが書かれています。
【3】. エルサレム到着
いよいよ、民はエルサレムに到着しました。聖書にはどのようなルートをたどったのか書かれていないため、はっきりとしたことは言えませんが、その距離は直線距離で約800キロ、実際の道のりで千キロを優に超えていただろうと考えられています。800キロと言えば自動車で移動した場合の東京から広島までの距離になります。大変な距離です。帰還の民が到着してまず最初にしたことは何だったでしょうか。68~69節をご覧ください。
“エルサレムの主の神殿に着くと、家長の幾人かは、神殿をその場所に再建するために随意の献げ物をささげた。彼らはそれぞれ力に応じて工事の会計に金六万一千ドラクメ、銀五千マネ、祭服百着を差し出した。”
彼らは、エルサレムに到着して自分たちの家を建てるために行動したのではなく、或いは食料を確保するために行動したのでもありませんでした。神殿の再建のために随意の献げ物を献げたとあります。ここに彼らの意気込みと、決意を見て取ることが出来ます。彼らは、エルサレムに神殿を再建し、礼拝を回復すること、神様との関係を回復し、契約の民としてふさわしく歩んでいくことをビジョンとして持っていました。そのための献身であり、そのための献げ物でありました。それは強制されてではなく、自発的に献げられたものでありました。
【適用】
本日の内容をまとめます。「主の民に属する者はだれでも、エルサレムにいますイスラエルの神、主の神殿を建てるために、ユダのエルサレムに上って行くがよい」というキュロスの勅令を受けて、神様によって心動かされた人びとは、帰還しました。その帰還の民の中には、家系の記録を発見できず、自分たちのルーツが分からない人々もいました。彼らはもともとユダヤ人ではなく、アブラハムの子孫でもありませんが、自ら主の民と信じ、神によって与えられた嗣業の地に戻り、神殿を再建すること、そしてかつて契約の民が主との交わりの中を歩んだその交わりを回復するという使命を持って、イスラエルの共同体に加えられていきました。帰還した民が、まず最初にしたことは自発的な献げ物を捧げたということです。彼らが礼拝者であったということが分かります。このことを私たちに適用しようとするなら、第一に、私たちが、両親がクリスチャンであり、クリスチャンホームで育ったかどうか、そんなことは重要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或いは私がどれだけ長く信仰生活をしたのか、そのことも全く重要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重要なことは、今、神の召しに従順しているのか、今、御言葉に従って歩んでいるのかそのことではないでしょうか。第二に、私たちも礼拝を回復していく民として、召されています。私たちにとって、嗣業の地とはどこでしょうか。私たちはこの世に永遠に住むわけではありません。やがて天のエルサレムに召されることでしょう。そこで、私たちは神の栄光を讃美するのです。帰還の民が礼拝者であったように、私たちも天の嗣業であるエルサレムを仰ぎつつ、日々神様と交わり、神様を愛し、神様を心から讃美する礼拝者として歩ませていただきま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