お前はほむべき方の子、メシアなのか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 日付
- 説教
-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マルコによる福音書 14章53節~65節
14:53人々は、イエスを大祭司のところへ連れて行った。祭司長、長老、律法学者たちが皆、集まって来た。
14:54ペトロは遠く離れてイエスに従い、大祭司の屋敷の中庭まで入って、下役たちと一緒に座って、火にあたっていた。
14:55祭司長たちと最高法院の全員は、死刑にするためイエスにとって不利な証言を求めたが、得られなかった。
14:56多くの者がイエスに不利な偽証をしたが、その証言は食い違っていたからである。
14:57すると、数人の者が立ち上がって、イエスに不利な偽証をした。
14:58「この男が、『わたしは人間の手で造ったこの神殿を打ち倒し、三日あれば、手で造らない別の神殿を建ててみせる』と言うのを、わたしたちは聞きました。」
14:59しかし、この場合も、彼らの証言は食い違った。
14:60そこで、大祭司は立ち上がり、真ん中に進み出て、イエスに尋ねた。「何も答えないのか、この者たちがお前に不利な証言をしているが、どうなのか。」
14:61しかし、イエスは黙り続け何もお答えにならなかった。そこで、重ねて大祭司は尋ね、「お前はほむべき方の子、メシアなのか」と言った。
14:62イエスは言われた。「そうです。あなたたちは、人の子が全能の神の右に座り、/天の雲に囲まれて来るのを見る。」
14:63大祭司は、衣を引き裂きながら言った。「これでもまだ証人が必要だろうか。
14:64諸君は冒瀆の言葉を聞いた。どう考えるか。」一同は、死刑にすべきだと決議した。
14:65それから、ある者はイエスに唾を吐きかけ、目隠しをしてこぶしで殴りつけ、「言い当ててみろ」と言い始めた。また、下役たちは、イエスを平手で打った。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マルコによる福音書 14章53節~65節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2024년 8월18일 센겐다이교회 주일설교 카와에 토모아키목사
마가복음 14장 53~65절
서론
지금 눈 앞에 사로잡힌 예수님이 있습니다. 이스카리옷 유다의 안내에 따라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로부터 보내진 자들이 예수님을 사로잡아, 대제사장의 집으로 데려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성전 당국자들은 이 밤중에, 종교 재판을 열려고 했습니다. 당시,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유대에게는, 정치적인 자치권이나 죄인을 처형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의 종교 재판 판결은, 이후의 로마의 정식 재판에 영향을 미쳐 압력을 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나사렛의 예수에 대한 살의를 실행에 옮길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상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3장 6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유대 당국자들은, 지금이야말로 공동모의를 꾀하여, 예수님을 율법에 비추어 죽을 죄에 해당함을 밝히고, 로마의 법에 비추어 반역죄에 해당함을 밝히려는 것입니다.
(1) 이례적인 재판
그렇다 치더라도, 이 한밤중의 재판은, 도저히 재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의 「공회」, 즉 산헤드린 의회는 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인, 71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의장이 되어, 3분의 1이 정족수로 되어 있고, 23명이 충족되면 의회는 개최되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이 한밤중에 급히 대제사장 가이바의 집에 모여든 의원들도 그만한 인원이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공회」에 관한 2세기 기록에 따르면 법정은 밤에 개최되어서는 안 되며, 하물며 대제사장의 집에서 개최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또 사형 판결은, 심문 당일에 선고되어서는 안 되며,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이후에 판결이 나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판은 이례적인 재판이었다는 것이 됩니다. 변호인도 없습니다. 그것은 재판과 같은 「회합」일 뿐, 「사기 재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14장 53~56절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53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55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56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여 이르되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갔다고 적혀 있는데, 66절 이후에 자세히 적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다음 번에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55절에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모여든 「정원 수를 채운 의원 전원」이라는 뜻입니다. 모두, 대제사장의 생존이 걸려 있어, 예수님을 사형시키기 위해 위증하려고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위증을 했지만,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해 결정적인 증거를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율법에는, 두 사람 또는 세 사람의 증언이 일치했을 때, 그때 비로소 그 증언은 진실이라고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일치하지 않는 엇갈린 증언은 무효인 것입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고 말했습니다. 확실히 예수님은 성전 붕괴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성전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라고 마가복음 13장 2절에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부순다는 등의 말씀은 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말이 현 질서를 파괴하는 듯한 언행으로 들려 성전의 기득권에 참여하고 있는 자들을 신경질적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장로들의 전통을 가볍게 여기고, 율법을 독특한 시각으로 해석하시는 예수님을, 그들이 극구 미워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고, 역시 결정적인 증거를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으로부터 결정적인 증거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것」, 이 점은 매우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인간은 율법에 비추어 예수님을 유죄로 정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0,61절a를 보시기 바랍니다.
60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1a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이 멋대로 왜곡되거나, 위증의 증언이 차례로 이뤄지는 가운데, 계속 입을 다물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자 마가는, 이 모습을 이사야서 53장의 「고난의 종」에 겹쳐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사야 53장 7절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자신을 변호하시기 위해, 일절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2) 예수님의 자기증언
그런데, 위증이 서로 엇갈리는 것을 본 대제사장 가야바는,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라고 예수님을 유죄로 만드는 질문을 직접 던졌습니다. 이 질문은, 매우 경멸을 담고 있는 질문입니다. 「네가!」라는 말이 강조되고 있고, 「너 같은 자가 메시아라고?」 「너 같은 자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이라고?」같은 뉘앙스입니다. 메시아는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구약성경에서는 제사장이나, 선지자나, 왕이 직무를 맡을 때 기름을 붓는 의식이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또, 「찬송 받을 이의 아들」이란 「하나님의 아들」의 다른 말인데 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어떤 의미에서 다윗의 자손에게만 그 사용이 허용되었습니다(사무엘하 7장 12, 14절, 역대상 17장 13절, 시편 2편 1,7절). 그래서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을 한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이라든가, 「기름 부음 받은 선지자」가 아니라, 너 같은 자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냐」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자신을 「기름 부음을 받은 왕」으로 인정한다면, 대제사장 가야바는, 이 축제 시기에, 위험한 메시아적 인물을 제거하고, 「로마로부터의 해방운동」의 기운이 고조되는 군중에게서, 그 기운이 물결치기 전에, 미리 문제의 불씨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로마로 끌어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만약, 겁에 질려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면, 그것을 공개적으로 공언하게 하고, 망신을 주고, 백성을 실망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 입을 여셨습니다.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셨던 만큼 이 말은 매우 무게감 있는 발언입니다. 62절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여기서,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라고 단적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에 매우 놀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시기는 하셨지만, 자신을 「메시아」라고 일절 공언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한결같이 감추셨습니다.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에, 몇 가지 구절을 살펴 보겠습니다. 최초로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있는 더러운 귀신들의 입을 막으셨던 구절입니다. 1장 24,25절을 보시겠습니다.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하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의 입을 막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1장 34절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있는 귀신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다음으로 3장 11,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이 구절에서도 역시 더러운 귀신들을 엄하게 꾸짖고 계십니다. 이번에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신앙 고백한 뒤에,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입을 막으십니다. 8장 3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베드로가 성령에 의해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신앙 고백을 했지만, 그 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높은 산에서 세 제자들이 예수님의 모습이 하얗게 빛나는 것을 보고 하늘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세 제자들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9장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이렇게 한결같이 숨기기만 해 오셨던 자신의 정체를, 왜 이런 자리에 이르러 감히 공언하셨을까요.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사형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는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으셨지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성취되기 위해서, 죄 없는 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죄의 심판을 받으려 하시기 위해서, 입을 여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죄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율법에 비춰 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 자신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아다」라고, 분명히 선언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 여기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자기 증언에 의해, 더욱 놀라운 것은, 62절에서 계속해서,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라고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대제사장의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대제사장은 그런 것까지 질문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110편과 다니엘서 7장의 예언을 결합시킨 것으로, 마가복음의 소묵시록이라 불리는 마가복음 13장의 「인자의 재림」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에게 자세히 가르치신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즉, 이것은 대제사장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믿는 제자들을 위해서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부활하여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실 것, 그리고 거기서, 하늘의 구름에 둘러싸여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다시 오실 때는, 종의 모습이 아니라 왕의 왕, 주의 주, 승리의 메시아로서 큰 권능과 영광을 띠고,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성도들에게 둘러싸여,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오신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예수님의 「찬송 받을 이의 아들」이라는 말은, 다윗의 자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기를 증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대제사장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요, 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로 믿고 사는 우리를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증언을 들은 대제사장은 있을 수 없는 신성 모독으로 받아들여, 자기 옷을 찢으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물론, 예수님이 정말로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이라면, 신성 모독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럴 리는 없다는 전제에 서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 이 말씀은 신성 모독적인 발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공회는 사형을 결의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학 학대가 시작됩니다. 6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우리는, 자신이 이런 취급을 받게 되면 어떻게 느낄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침 뱉음을 받거나, 눈이 가려진 채로, 주먹으로 맞거나 손바닥으로 맞는 행위는, 저항할 수 없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냥 당하는 상태입니다. 기것은 사적인 린치입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처사입니다. 공회의 의원들은, 이 예수가 하나님이라면, 설령 이런 일을 당하더라도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이유입니다. 「선지자 노릇을 하라」라는 말은, 직역을 하면 「예언 해 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예언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는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굴욕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는 대로 당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을 구하지 못한 것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구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자진해서 가신 것입니다.
결론
오늘의 내용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는, 일절 입을 열지 않으셨지만,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입을 열으셨습니다. 자신의 사형이 확정되기 위해 입을 여신 것입니다. 그 자기 증언은, 대제사장의 질문을 훨씬 뛰어넘는 내용이었지만, 우리들 믿는 자들은, 그 증언을 통해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란, 이 분이 죽음에서 승리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착석하시고, 이윽고 큰 권능과 영광을 띠고 승리의 메시아로 다시 오실 때, 우리를 자신에게 끌어 당기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심판하는 마지막 날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해, 흰 옷이 입혀지고, 영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일에 우리는 위안을 받는 것입니다.
【序】
今、目の前に捕らえられたイエス様がいます。イスカリオテ・ユダの手引きによって祭司長、律法学者、長老たちから遣わされた者たちがイエス様を捕らえ、大祭司の家に連れて来たのです。イエス様の弟子たちは皆、逃げ去って行きました。神殿当局者たちはこの夜中に、宗教裁判を開こうとしていました。当時、ローマの支配下にあったユダヤには、政治的な自治権や、罪びとを処刑にする権利は、与えられていませんでした。しかしユダヤの宗教裁判の判決は、その後のローマの正式な裁判に影響を及ぼし、圧力をかけることが出来たのです。彼らは、ついにナザレのイエスに対する殺意を実行に移す機会を得たのです。彼らはかなり以前から、イエス様を殺すために相談をしていました。マルコ3:6には次のように書かれています。
“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出て行き、早速、ヘロデ派の人々と一緒に、どのようにしてイエスを殺そうかと相談し始めた。”
ユダヤの当局者たちは、今、まさに共同謀議を図り、イエス様を律法に照らして死罪に相当することを明らかにし、ローマの法に照らしても反逆罪に相当することを明らかにしようとしているのです。
【1】. 異例ずくめの裁判
それにしても、この真夜中の裁判は、とても裁判と言えるようなものでありませんでした。ユダヤの最高法院、つまり、サンヘドリン議会は、祭司たちと長老たちと律法学者たち71名によって構成されています。大祭司が議長となり、三分の一が定足数となっていて、23名が満たされれば議会は開催されました。ですから、この真夜中に、急遽、大祭司カイアファの家に集まって来た議員たちも、それ位の人数ではなかったのかと推測されます。最高法院に関する二世紀の記録によりますと、法廷は夜、開催されてはならず、まして、大祭司の家で開催されることなどもってのほかでした。また死刑の判決は、審問の当日に宣告されてはならず、一夜過ごして、翌日以降に判決が出さ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ですから、イエス様の裁判は異例ずくめの裁判であった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弁護人もいません。それは裁判のような「会合」に過ぎず、「裁判もどき」と言っても言い過ぎではなかったでしょう。14:53-56節をご覧ください。
“人々は、イエスを大祭司のところへ連れて行った。祭司長、長老、律法学者たちが皆、集まって来た。ペトロは遠く離れてイエスに従い、大祭司の屋敷の中庭まで入って、下役たちと一緒に座って、火にあたっていた。祭司長たちと最高法院の全員は、死刑にするためイエスにとって不利な証言を求めたが、得られなかった。多くの者がイエスに不利な偽証をしたが、その証言は食い違っていたからである。”
ペトロが、大祭司の中庭まで入って行ったと記されていますが、66節以降に詳しく書かれていますので、次回学びたいと思います。55節に「最高法院の全員」とありますが、これは、集まってきた「定員数を満たした議員全員が」という意味です。皆、大祭司の息がかかっていて、イエス様を死刑にするため、偽証しようと集まってきました。ところが、多くの者たちが偽証をしましたが、証言が互いに食い違い、決定的な証拠を引き出すことは出来ませんでした。律法には、二人または三人の証言が一致したとき、その時初めてその証言は真実であると定められています。ですから、一致しない、食い違った証言は無効なのです。すると数人が立ち上がり、「この男が、『わたしは人間の手で造ったこの神殿を打ち倒し、三日あれば、手で造らない別の神殿を建ててみせる』と言うのを、わたしたちは聞きました。」と言いました。確かにイエス様は神殿崩壊について弟子たちに語ったことがあります。神殿の美しさに見とれている弟子たちに、イエス様は、「これらの大きな建物を見ているのか。一つの石もここで崩されずに他の石の上に残ることはない」と、マルコ13:2で語りました。しかし、ご自身が壊すなどとは言ってはいません。言ってはいませんが、このような言葉が、現状の秩序を破壊するような言動として聞こえ、神殿の既得権益に与っている者たちを神経質にさせたのかもしれません。先祖の言い伝えを軽んじ、律法を独特な視点で解釈されるイエス様のことを、彼らが激しく憎んでいたということも十分に理解できます。しかし、この証言も食い違い、やはり決定的な証拠を引き出すことは出来ませんでした。ここで「イエス様から決定的な証拠を引き出すことが出来なかった」ということ、この点は大変重要な点だと思います。と言いますのは、人間は律法に照らしてイエス様を有罪に定め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ということを意味しているからです。60~61節aをご覧ください。
“そこで、大祭司は立ち上がり、真ん中に進み出て、イエスに尋ねた。「何も答えないのか、この者たちがお前に不利な証言をしているが、どうなのか。」しかし、イエスは黙り続け何もお答えにならなかった。”
イエス様は、ご自分の言葉が勝手に歪められたり、偽証の証言が次々になされる中で、黙り続け、何もお答えになりませんでした。著者マルコは、この様子をイザヤ書53章の「苦難の僕」に重ねて見てい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イザヤ53:7には次のように書かれています。
“苦役を課せられて、かがみ込み/彼は口を開かなかった。屠り場に引かれる小羊のように/毛を刈る者の前に物を言わない羊のように/彼は口を開かなかった。”
イエス様はご自身を弁護するために、一切口を開くことはされなかったのです。
【2】. イエス様の自己証言
さて、偽証が互いに食い違うのを見た大祭司カイアファは、直接イエス様を有罪にする質問を投げかけました。「お前はほむべき方の子、メシアなのか」。この質問は、大変軽蔑を込めた質問です。「お前が!」という言葉が強調されており、「お前のような者がメシアだと?お前のような者がほむべき方の子だと?」といったニュアンスです。メシアとは油注がれた者という意味で、旧約聖書では、祭司や、預言者や、王様が職務に就くときに油注ぎの儀式が行われています。また、「ほむべき方の子」とは、「神の子」の言い換えですが、この「神の子」という称号は、ある意味で、ダビデの子孫にのみ、その使用が認められていました(サム下7:12, 14、歴代上17:13、詩2:2, 7)。ですから「ほむべき方の子、メシア」とは、「油注がれた王」を限定しているのだと思われます。「油注がれた祭司」とか、「油注がれた預言者」ではなく、お前のような者が「油注がれた王」なのかと言っているのです。もし、イエス様が、ご自分のことを「油注がれた王」と認めれば、大祭司カイアファは、この祭りの時期に、危険なメシア的な人物を取り除き、「ローマからの解放運動」の気運が高まる群衆において、それがうねりとなる前に、事前に問題の火種を除去するという建前でローマに引き出すことが出来たでしょう。反対にもし、怖気づいて自分はメシアではないと言えば、それを公に公言させ、恥をかかせ、民を失望させることが出来るのです。この質問に対して、イエス様は口を開きました。今まで沈黙を守っていた分、この言葉は大変重みのある発言です。62節をご覧ください。
“イエスは言われた。「そうです。あなたたちは、人の子が全能の神の右に座り、/天の雲に囲まれて来るのを見る。」”
ここで、イエス様は「私がそれである」と端的に答えられました。私たちはこのイエス様のお言葉に大変驚かされます。なぜなら、これまでイエス様は、ご自身のことを「人の子」と呼びはしたものの、ご自身をメシアであるとは一切、公言しなかったからです。むしろひたすら隠してきました。重要なポイントですので、いくつか例を挙げてみます。最初にイエス様の正体を知っている悪霊たちの口をふさいだ箇所です。1:24~25をご覧ください。
“「ナザレのイエス、かまわないでくれ。我々を滅ぼしに来たのか。正体は分かっている。神の聖者だ。」イエスが、「黙れ。この人から出て行け」”
悪霊の口をふさいでいることが分かります。次に1:34をご覧ください。
“イエスは、いろいろな病気にかかっている大勢の人たちをいやし、また、多くの悪霊を追い出して、悪霊にものを言うことをお許しにならなかった。悪霊はイエスを知っていたからである。”
イエス様の正体を知っている悪霊にものを言うことをお許しになりませんでした。次に3:11-12をご覧ください。
“汚れた霊どもは、イエスを見るとひれ伏して、「あなたは神の子だ」と叫んだ。イエスは、自分のことを言いふらさないようにと霊どもを厳しく戒められた。”
ここでもやはり霊どもを厳しく戒められています。今度は、ペトロがイエス様に対し、「あなたはメシアです」と信仰告白した後に、ペトロを始め弟子たちの口をふさぎます。8:30をご覧ください。
“するとイエスは、御自分のことをだれにも話さないようにと弟子たちを戒められた。”
ペトロが聖霊によってあなたはメシアですと信仰告白しましたが、その後、だれにも話さないようにと戒められています。最後に変貌の山で三人の弟子たちがイエス様のお姿が白く輝くのを見、天から御父の声を聴いた時、三人の弟子たちの口をふさぎました。9:9をご覧ください。
“一同が山を下りるとき、イエスは、「人の子が死者の中から復活するまでは、今見たことをだれにも話してはいけない」と弟子たちに命じられた。”
これほどひた隠しにしてきたご自分の正体を、なぜ、この場に及んであえて公言されたのでしょうか。一つ考えられるのは、それを語ることによってご自分の死刑が決定的になったからであります。イエス様はご自分を弁護するためには一言も口を開きませんでしたが、神の救いのご計画が成就するために、罪のないお方が、私たちの代わりに罪の裁きを受けようとするために、口を開かれたのです。イエス様が有罪となり、十字架につけられたのは、律法に照らして罪があったからではありません。主イエスご自身が「私は神の子であるメシアだ」と、はっきり宣言なさったからということが、ここに示されているのです。
イエス様の自己証言によって、さらに驚かされるのは、62節において続けて言われた内容です。「人の子が全能の神の右に座り、/天の雲に囲まれて来るのを見る。」この御言葉は、大祭司の問いに対する答えではありません。大祭司はそんなことまで質問してはいないのです。この御言葉は、詩編110編とダニエル書7章の預言を結合させたもので、マルコの小黙示録と呼ばれるマルコ13章の、「人の子の再臨」について語られた時、弟子たちに詳しく教えられた内容でもありました。つまり、これは大祭司の質問に答えるためではなく、信じる弟子たちのために語っておられるという事です。イエス様はご自分が復活して天に昇り、全能の神の右に座ること、そしてそこから、天の雲に囲まれて栄光の内にもう一度来られることを宣言なさいました。再び来られる時は、僕の形ではなく、王の王、主の主、勝利のメシアとして、大いなる力と栄光を帯びて、雲に乗って来られるということ、天使たちに囲まれ、聖徒たちに囲まれ、この世を審判するために来られるということを宣言されたのです。ということは、イエス様は「ほむべき方の子」という言葉を、ダビデの子を意味するのではなく、文字通り、「神の子」を意味するものとして自己証言しているのです。イエス様がこのことをお語りになったのは、大祭司の質問に答えるためではなく、私たちのためであり、主イエスを「神の子、救い主」として信じて生きる、私たちのために語られたのです。
この証言を聞いた大祭司は、信じられない冒涜として受け取り、衣を引き裂きながら言いました。「これでもまだ証人が必要だろうか。諸君は冒涜の言葉を聞いた。どう考えるか。」もちろん、イエス様が本当にご自身の言われる通り「神」であるなら、冒涜でありませんが、しかし、そんなはずはあり得ないという前提に立っている彼らにとって、この言葉は冒涜的な発言以外の何物でもありません。最高法院は、死刑を決議しました。そしてイエス様への虐待が始まります。65節をご覧ください。
“それから、ある者はイエスに唾を吐きかけ、目隠しをしてこぶしで殴りつけ、「言い当ててみろ」と言い始めた。また、下役たちは、イエスを平手で打った。”
私たちは、自分がこのようにされたらどのように感じるか考えてみるべきだと思います。唾を吐きかけられるとか、目隠しをし、こぶしで殴られたり、平手で打たれるという行為は、抵抗できない者にとって、されるままの状態です。これは私的なリンチであります。とても耐えられない仕打ちです。最高法院の議員たちは、このイエスが、神であるなら、たとえこのようなことをされても自分を救い出せるはずだと考えていました。それができないのは、そうでないことを証明しているのだという理屈です。「言い当ててみろ」とは、直訳すると「預言してみろ」となっています。お前が神の子なら、預言できるはずだ。それができないのは、そうでないことを証明しているのだとして、一方的に屈辱を与えているのです。しかし、イエス様はそのことができないので、なすがままにされ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神の子でないから自分を救えなかったのではありません。イエス様はご自分を救えなかったのではなく救わなかったのです。十字架の死を自ら進んで行かれたのです。
【結論】
本日の内容をまとめます。イエス様はご自身を弁護するためには、一切口を開く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が、私たちの救いのために口を開いてくださいました。ご自身の死刑が確定されるために、口を開かれたのです。その自己証言は、大祭司の質問をはるかに超える内容でしたが、私たち信じる者たちは、その証言を通して、慰めを受けるのです。私たちの救いとは、このお方が死に勝利され天の右の座に着在され、やがての日に、力と栄光を帯びて、勝利のメシアとして再び来られる時、私たちをご自身のもとへ引き寄せられるということです。この世を審判する最後の日に、私たちはキリストの贖いによって白い服を着せられ、栄光に入れられるという事です。そのことに私たちは慰めを受ける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