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年07月28日「あなたがたは皆つまずく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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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なたがたは皆つまずく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日付
説教
川栄智章 牧師
聖書
マルコによる福音書 14章26節~31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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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句のアイコン聖書の言葉

14:26一同は賛美の歌をうたってから、オリーブ山へ出かけた。
14:27イエスは弟子たちに言われた。「あなたがたは皆わたしにつまずく。『わたしは羊飼いを打つ。すると、羊は散ってしまう』/と書いてあるからだ。
14:28しかし、わたしは復活した後、あなたがたより先にガリラヤへ行く。」
14:29するとペトロが、「たとえ、みんながつまずいても、わたしはつまずきません」と言った。
14:30イエスは言われた。「はっきり言っておくが、あなたは、今日、今夜、鶏が二度鳴く前に、三度わたしのことを知らないと言うだろう。」
14:31ペトロは力を込めて言い張った。「たとえ、御一緒に死なねばならなくなっても、あなたのことを知らないなどとは決して申しません。」皆の者も同じように言った。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マルコによる福音書 14章26節~31節

原稿のアイコン日本語メッセージ

【序】

過ぎ越しの食事をする日、その日イスラエルの人々は普段より遅くまで夜更かししていました。この特別な夜は、歌にあふれ、喜びと希望にあふれ、約束された解放と救いへの渇望にあふれ、それぞれの家において大変にぎやかな時間が過ごされました。イエス様一行もエルサレムの、とある二階広間でゆっくりと食事を取り、おそらくハレルヤ詩編と呼ばれる詩編113~118編の賛美の歌を歌ってから、オリーブ山に出かけました。オリーブ山はエルサレムの城外へ出て、キドロンの谷の向こう側にありました。エルサレムの旧市街から徒歩で20~30分ほどの距離です。イエス様は、以前にも、このオリーブ山で終末に起こることをペトロとヤコブとヨハネとアンデレの四人に話されたことがありました。「ゲツセマネの園」という油の搾り場は、このオリーブ山の一画にありました。オリーブ山はイエス様のお気に入りの場所であり、祈りの場所であったのでしょう(ルカ22:40)。今、そのオリーブ山において弟子たちに「あなたがたは皆つまずく」と言われました。これは一体どういうことでしょうか。本日はマルコによる福音書14章から、共に恵みに与りたいと願います。

【1】. ペトロの自負心

イエス様の突然のお言葉に弟子たちは当惑したと思います。「つまずく」という言葉は、ギリシャ語で「スカンダリゾー」と言いまして、英語のスキャンダルの原語です。その意味は「信仰から離れる」という意味で深刻な意味合いが含まれています。弟子たちは皆つまずき、イエス様との人格的な関係が絶たれてしまう。赤の他人となってしまうというのです。なぜ、弟子たちはつまずいてしまうのでしょうか。27~28節をご覧ください。

“イエスは弟子たちに言われた。「あなたがたは皆わたしにつまずく。『わたしは羊飼いを打つ。すると、羊は散ってしまう』/と書いてあるからだ。しかし、わたしは復活した後、あなたがたより先にガリラヤへ行く。」”

弟子たちのつまずいてしまう理由とは、彼らが信仰においてまだ成熟していなかったからでしょうか。彼らの信心の力が弱かったからでしょうか。そのことも理由として考えられるかもしれませんが、イエス様は、その点を指摘しながら「つまずかないように注意しなさい」とおっしゃっ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つまり「もっと頑張らないとだめだ」「もっとしっかりしなければだめだ」と、言ってはおられないのです。イエス様は、27節の『』で引用した旧約聖書にある通り、「あなたがたは皆つまずくだろう」と、予告しておられるのです。引用元の旧約の預言を調べてみましょう。ゼカリヤ書13:7-9をご覧ください。

“剣よ、起きよ、わたしの羊飼いに立ち向かえ/わたしの同僚であった男に立ち向かえと/万軍の主は言われる。羊飼いを撃て、羊の群れは散らされるがよい。わたしは、また手を返して小さいものを撃つ。この地のどこでもこうなる、と主は言われる。三分の二は死に絶え、三分の一が残る。この三分の一をわたしは火に入れ/銀を精錬するように精錬し/金を試すように試す。彼がわが名を呼べば、わたしは彼に答え/「彼こそわたしの民」と言い/彼は、「主こそわたしの神」と答えるであろう。”

この御言葉は、イエス様の時代から何世紀も遡って預言された神のご計画でありました。ここで、「羊飼い」とはイエス様を指しています。「羊の群れ」とは弟子たちで、「わたし」とは、父なる神様です。「撃つ」とは、イエス様の十字架を指しています。つまり、羊飼いであるメシアが、神によって撃たれ、それだけではなく、羊の群れの三分の二が死に絶え、残りの三分の一も裁きによって精錬され、きよめられ、最終的に残りの民が、主の名を呼ぶ「ご自身の民」として取り分けられると語られています。ですから、羊の群れが散らされる目的は、ゼカリヤの預言によると、残りの民を精錬し、きよめるためだと言うのです。弟子たちがこのつまずきを契機に精錬され、きよめられ、真の意味で信仰に立たせるために、そのために散らされるというのです。

さて、イエス様の予告を、一番弟子のペトロはそのまま穏やかに聞き入れることは出来ませんでした。彼は、29節で次のように言っています。「たとえ、みんながつまずいても、わたしはつまずきません」。恐らく、ペトロは、他の弟子たちならまだしも、この俺様がつまずくこと等、決してあり得ないと思っていたのでしょう。ペトロの自信は、自分が12弟子の中で一番弟子であるということに裏付けされたものでありました。するとイエス様は、ペトロにさらに付け加えて言われました。14:30です。

“イエスは言われた。「はっきり言っておくが、あなたは、今日、今夜、鶏が二度鳴く前に、三度わたしのことを知らないと言うだろう。」”

「はっきり言っておく」と訳されている言葉は、直訳すると「アーメン、わたしはあなたに言う」となります。ペトロ個人に対して大変厳格なお言葉が語られました。既に、日が沈んでからかなり時間が経っていましたが、今夜、早朝の鶏が鳴くまでに、つまり、あと数時間の内に、ペトロはイエス様のことを知らないと言うだろうと断言されたのです。「知らないと言う」とは、イエス様と自分とは何の関係もないと告白するという事です。しかも、三度も、徹底的に、念を押すかのように繰り返すと言うのです。ペトロはイエス様のお言葉を、とても信じられませんでした。「この私のことを見くびらないで下さい!」「こともあろうに、この私のことをそれほど薄情な弟子だと思わないでください!」と、内心思ったのでしょう。次のように言い返しています。31節です。

“ペトロは力を込めて言い張った。「たとえ、御一緒に死なねばならなくなっても、あなたのことを知らないなどとは決して申しません。」皆の者も同じように言った。”

この時のペトロと、他の弟子たちの言葉には嘘はなかったと思います。彼らの決意は本当に死に至るまでイエス様に従っていくつもりだったのでしょう。しかし、実際は、イエス様が捕らえられた後、彼らは皆、逃げてしまいました。ペトロは大祭司の屋敷の中庭に入り、しばらく様子を伺っていましたが、イエス様がこぶしで殴られたり、なぶりものされるのを見て怖くなり、思わず自己保身のために「そんな人は知らない」と言ってしまいました。ここにまさに人間の弱さが表れています。ここから分かることは、ペトロの本当の姿とは、ペトロが自分で考えているような人間では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す。この後ペトロは三度、主イエスを知らないと言った後、二回目の鶏の鳴き声を聞きました。その時、イエス様が自分に言われたことを思い出して泣き崩れました。ペトロは初めて自分の本当の姿に向き合ったのです。その姿とは、高慢で、自己保身のためなら何でもし、簡単に主を裏切る、薄情な罪人の姿です。それこそ、ペトロの本当の姿でした。ペトロの自分を過信する思いは、私たち自身にも当てはめ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実際、私は、本当の自分のことを分かってないのかもしれない。私は自分が思っているより、はるかに弱い、罪人に過ぎないのかもしれない。自分より人々の方が優れているのかもしれない。そのことをまず疑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しかし、私たち自身よりも、もっと私たちのことをよくご存じの方がおられます。イエス様です。私たちの羊飼いであり、私たちを幸いな道に導いてくださる救い主です。私たちは日々の信仰生活の営みの中で、このお方を信じ、このお方にあって希望を持ち、このお方に全てを委ねていく時に、安心して歩んで行くことができるのです。

【2】. あなたがたより先にガリラヤに行く

やがて、ペトロは自分の本当の姿を知って愕然とし、立ち上がれないほどの状態になってしまいます。しかしその上で、イエス様はご自分が復活した後、ガリラヤで彼らをもう一度迎え入れると言われたのです。イエス様はもう間もなく、ユダヤ当局者たちの手に渡されます。そして恐ろしい十字架に死に向かって残虐な時間が始まろうとしています。そのような場面に置かれていながら、ご自分のことで頭が一杯だったのではなく、弟子たちのことを心にかけておられたのです。彼らがこの後まもなく、経験するであろう試練を思い、彼らに準備させているのです。たとえ、今は理解することが出来なくても、突然そのことが起こり、パニックに陥ることのないように、こうして事前に警告を与え、後できっと思い起こすことができるように備えさせているのです。

ガリラヤとは、弟子たちの故郷でありました。弟子たちがエルサレムで信仰においてつまずいた後、挫折し帰っていく場所であります。そして、そのガリラヤは、彼らがイエス様に初めて出会い、召され、弟子とされ、信仰の歩みを始めた場所でもありました。すべてのことをご存じのイエス様は、そこでもう一度彼らを迎え入れ、主の弟子として新たな歩みへと立ち直らせてくださると約束してくださっていたのです。「あなたがたより先にガリラヤに行く」。このお言葉を、その時はただ聞き流していたかも知れませんが、後になって、この言葉の中にイエス様の自分たちに対する深い配慮、深い関心を改めて感じ取ることが出来たのだと思います。そして、この言葉を思い起こす度に、罪人である私がそのままで受け入れられていることを確信し、そのことに大きな慰めを得たに違いありません。

【3】. 信仰の大小

本日の箇所でイエス様は信仰の小さい弟子たちに対し、「つまずかないように注意しなさい」とか、「信仰の成熟を目指して、もっと頑張りなさい」とは言われなかったことに私たちは注目したいと思います。確かに信仰には大小があり、聖書はその点についてはっきり指摘しています。例えば、マタイによる福音書14:29~31をご覧ください。ガリラヤ湖の上を歩いたペトロが、強い風に気づいて、沈みかけた場面です。

“イエスが「来なさい」と言われたので、ペトロは舟から降りて水の上を歩き、イエスの方へ進んだ。しかし、強い風に気がついて怖くなり、沈みかけたので、「主よ、助けてください」と叫んだ。イエスはすぐに手を伸ばして捕まえ、「信仰の薄い者よ、なぜ疑ったのか」と言われた。”

「信仰の薄い者よ」という言葉は、ギリシア語の直訳では「信仰の小さい者よ」となっています。ペトロの信仰の小ささをイエス様は、たしなめているのです。続いてマタイによる福音書15:26~28をご覧ください。カナン人の女の信仰について書かれています。

“イエスが、「子供たちのパンを取って小犬にやってはいけない」とお答えになると、女は言った。「主よ、ごもっともです。しかし、小犬も主人の食卓から落ちるパン屑はいただくのです。」そこで、イエスはお答えになった。「婦人よ、あなたの信仰は立派だ。あなたの願いどおりになるように。」そのとき、娘の病気はいやされた。”

「あなたの信仰は立派だ」という言葉は、ギリシア語の直訳では「あなたの信仰は大きい」となっています。これらのイエス様のお言葉から、信仰には大小があることが分かります。それでは、信仰の大小とは、私たちの信心の力にかかっているのでしょうか。信仰の大小とは、私たち自身がどれだけ努力して、どれだけ成熟したかにかかっているのでしょうか。そうではないと思います。聖書には、信仰とは神の賜物だとはっきり書かれているからです。また、からし種の信仰さえあれば、つまり真の信仰さえあれば、神がそれを大きな木に成長してくださると書かれているからです。信仰の大小というのは確かにあり、大いなる信仰は、神様に賞賛される信仰でありますけれども、信仰とはイエス様と共にする営みの中で、練り清められるものであり、神の恵みによって、試練の中で純金のように精錬されるものであります。ですから信仰を大きくしてくださるのは、専ら神の恵みであると言うことが出来るのです。イエス様が撃たれることにより、弟子たちが散らされた目的は、まさにこの試練を通して、弟子たちの信仰が、キリストの恵みの中で堅く強固にされるためでありました。彼らは、イスカリオテのユダの裏切りと比べても、肩を並べるほどの逃亡と、イエス様との関係を否定するという大罪を犯しましたが、それにも拘わらず、主の全き赦しと、恵みの中で、悔い改めと再出発をすることが許されているのです。

【結論】

信仰の成熟、信仰の大きさとは自分で獲得す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他の人に優越感を持ったり、誇ることができないためです。「立っていると思う者は、倒れないように気をつ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信仰の大きさは自分の信心にかかっているのでもなく、自分の能力にかかっているのでもなく、神様から受動的に受け取るものだからです。信仰とは、試練の中で、神の恵みによって成長させられます。そして、神様は、今日においても私たちの信仰のつまずきを受け入れてくださり、再びガリラヤに帰ってくるのを待っておられます。そして、帰ってきた一人一人に赦しと、癒しを与えてくださり、再び立ち直らせてくださるのです。私たちの中の、からし種ほどの信仰は、やがて、大きな木に成長させられ、神様から委ねられた働きを担う者へと変えられるのです。

原稿のアイコンハングル語メッセージ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2024년 7월28일 센겐다이교회 주일설교 카와에 토모아키목사

마가복음 14장 26~31절

서론

유월절 식사를 하는 날, 그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평소보다 늦게까지 깨어 있었습니다. 이 특별한 밤은 노래가 넘치고, 기쁨과 희망이 넘치며, 약속된 해방과 구원에 대한 갈망이 넘쳐, 각 집에서 매우 떠들썩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예수님 일행도 예루살렘의 어느 이층의 큰 다락방에서 천천히 식사를 하고, 아마도 할렐루야 시편이라고 부리는 시편 113~118편의 찬송가를 부른 뒤 감람 산으로 떠났습니다. 감람 산은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와, 기드론 계곡 건너편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도보로 20~30분 정도의 거리입니다. 예수님은, 이전에도 이 감람 산에서 종말에 일어나는 일을 베드로와 야곱과 요한과 안드레 네 사람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기름짜는 틀이란 뜻의「겟세마네 동산」은, 이 감람 산 서쪽의 하단부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감람 산은 예수님이 좋아하는 곳이요, 자주 기도하셨던 장소이기도 한 곳이었습니다(누가복음 22장 39절). 지금 그 감람 산에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한국어 성경은 번역이 잘 못 되어 있고 원어는 너희가 실족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오늘은 마가복음 14장으로부터 함께 은혜를 얻고자 합니다.

(1) 베드로의 자부심

예수님의 갑작스러운 말씀에 제자들은 당혹스러웠을 것입니다. 「실족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칸달리조」라고 해서 영어의 「스캔들」의 원어입니다. 그 뜻은 「믿음에서 벗어나다」라는 뜻으로 심각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제자들은 실족하여,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끊어지고 맙니다. 남남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왜, 제자들은 실족하는 걸까요? 27,2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원어에는 나를 이라는 단어도 없으며 버리리라 보다는 실족하리라가 원어의 뜻임)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제자들이 실족하는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그들의 믿음의 힘이 약했기 때문일까요? 그것도 이유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예수님은, 그 점을 지적하시면서 “실족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즉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더 정신 차려야 한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라고 27절에서 인용한 구약성서에 나와 있는 대로 「너희가 실족하리라」고 예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출처의 구약의 예언을 알아보겠습니다. 스가랴서 13장 7~9절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8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9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시대에서 몇 세기나 거슬러 올라가 예언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여기서 「목자」란 예수님을 말합니다. 「양」은 제자들이고, 「나」는 아버지이신 하나님입니다. 「치다」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말합니다. 즉, 목자인 메시아가 하나님의 치심을 맞고, 뿐만 아니라 양떼의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심판에 의해 연단되고, 시험을 받아 최종적으로 남은 백성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내 백성」으로 나뉘어 진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떼가 흩어지는 목적은, 스가랴의 예언에 따르면, 남은 백성들을 연단하고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이 실족함을 계기로 연단받고, 시험받아 진정한 의미의 믿음위에 세워지기 위해, 그 때문에 흩어진다는 것입니다.

자, 예수님의 예고를, 수제자 베드로는 그대로 차분히 듣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는 29절에서「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이라면 몰라도, 나는 실족하는 것 같은 일이 절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자신감은, 자신이 열두 제자 중에서 수제자라는 것에 뒷받침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더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3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라고 번역되어 있는 단어는, 직역하면 「아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가 됩니다. 베드로 개인에 대해 매우 엄격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미 해가 진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오늘 이 밤, 이른 아침에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즉, 이후 몇 시간 안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단언하신 것입니다. 「부인한다」라는 것은, 예수님과 자신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게다가, 세 번이나 철저하게 다짐하듯 반복 한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저를 얕보지 말아 주세요!” “하필이면, 저를 그정도로 박정한 제자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내심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다음과 같이 대꾸하고 있습니다. 31절을 보시죠.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이때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결의는 정말 죽음에 이를 때까지 예수님을 따라갈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수님이 사로잡힌 후 그들은 모두, 도망쳐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 안뜰에 들어가, 한참 동안 눈치를 보다가, 예수님이 주먹으로 맞거나 조롱을 당하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자기 보신을 위해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바로 인간의 나약함이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베드로의 진짜 모습이란, 베드로가 스스로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베드로는 세 번, 주 예수를 모른다고 말한 뒤, 두 번째 닭의 울음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자신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나 밖으로 나가서 심히 통곡했습니다. 베드로는 처음으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 것입니다. 그 모습이란 교만하고 자기 보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며 쉽게 주님을 배신하는 박정한 죄인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이야말로 베드로의 진짜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자신을 과신하는 그런 생각은 우리 자신에게도 볼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우리는 진짜 자신에 대해 모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약한, 죄인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나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먼저 의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보다도 더 우리를 잘 아시는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입니다. 우리들의 목자요, 우리들을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시는 구원자입니다. 우리들은 매일 매일의 신앙생활의 영위 가운데, 이 분을 믿고, 이 분을 만나 희망을 갖고, 이 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며 나갈 때, 안심하고 걸어갈 수 있습니다.

(2)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이윽고, 베드로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깨닫고 깜짝 놀라, 일어설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한 후, 갈릴리에서 그들을 다시 맞이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곧, 유대 당국자들의 손에 넘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무서운 십자가의 죽음을 향한 잔학한 시간이 시작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 자신의 일로 머리가 벅찬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마음에 두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후 곧, 겪게 될 시련을 생각하시며, 그들에게 준비를 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갑자기 그 일이 일어나 패닉에 빠지지 않도록, 이렇게 사전에 경고를 주고, 나중에 분명히 상기할 수 있도록 대비를 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갈릴리는 제자들의 고향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믿음에서 벗어나 실족했다가 좌절하고 돌아가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갈릴리는, 그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나고 부르심을 받고, 제자로 삼아지며, 믿음의 발걸음을 시작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다시 한번 그들을 맞이 해, 주님의 제자로서 새로운 걸음으로 다시 일어서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던 것입니다.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는 이 말씀을 그때는 그냥 흘려 들었을지 모르지만, 나중에 이 말씀 속에 예수님의 자신들에 대한 깊은 배려, 깊은 관심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죄인인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확신하고, 그 일에 큰 위로를 얻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3) 믿음의 크고 작음

오늘의 구절에서 예수님은 믿음이 작은 제자들에 대해서, “실족하지 않도록 주의해라”라든가, “믿음의 성숙을 목표로 해서 좀더 분발해라”라고는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믿음에는 크고 작은 것이 있고, 성경은 그점에 대해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14장 29~31절을 보겠습니다. 갈릴리 호수 위를 걸었던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가기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헬라어 직역 그대로「믿음이 작은 자여」라는 단어는, 예수님이 베드로의 믿음의 작음을 나무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어서 마태복음 15장 26~28절을 보시겠습니다. 가나안 여자의 믿음에 대해 쓰여져 있습니다.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헬라어 직역 그대로「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에서, 믿음의 크고 작음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크고 작음이란, 우리의 믿음의 힘에 달려 있는 것일까요? 믿음의 크고 작음이란, 우리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고, 얼마나 성숙해졌는지에 달려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분명히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겨자씨와 같은 믿음만 있으면, 즉 참된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큰 나무로 성장시켜 주신다고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크고 작음은 분명히 있고, 큰 믿음은 하나님께 칭찬 받는 믿음이지만, 믿음이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영위 속에서, 연단 받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시련 속에서 순금처럼 연단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크게 키워주시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치심을 받는 것으로 인해, 제자들이 흩어지는 목적은, 그야말로 이 시련을 통해서, 제자들의 믿음이,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서 단단하게 굳어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카리옷 유다의 배신과 비교해도 어깨를 나란히 할수 있을 정도의 도망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하는 큰 죄를 지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완전한 용서와 은혜 속에서, 회개와 재출발을 하는 것이 허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믿음의 성숙, 믿음의 크기란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우월감을 갖거나 자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믿음의 크기는 자신의 믿음에 달린 것도 아니고, 자신의 능력에 달린 것도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수동적으로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믿음의 실족을 받아주시고, 다시 갈릴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돌아온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용서와 치유를 베풀어 주시고, 다시 일어서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의 겨자씨 정도의 믿음은 곧, 큰 나무로 성장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는 자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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