お前はいつもわたしと一緒にいる 너는 나와 항상 함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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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説教
- 辻幸宏 牧師
- 聖書 ルカによる福音書 15章25節~32節
15:25ところで、兄の方は畑にいたが、家の近くに来ると、音楽や踊りのざわめきが聞こえてきた。
15:26そこで、僕の一人を呼んで、これはいったい何事かと尋ねた。
15:27僕は言った。『弟さんが帰って来られました。無事な姿で迎えたというので、お父上が肥えた子牛を屠られたのです。』
15:28兄は怒って家に入ろうとはせず、父親が出て来てなだめた。
15:29しかし、兄は父親に言った。『このとおり、わたしは何年もお父さんに仕えています。言いつけに背いたことは一度もありません。それなのに、わたしが友達と宴会をするために、子山羊一匹すらくれなかったではありませんか。
15:30ところが、あなたのあの息子が、娼婦どもと一緒にあなたの身上を食いつぶして帰って来ると、肥えた子牛を屠っておやりになる。』
15:31すると、父親は言った。『子よ、お前はいつもわたしと一緒にいる。わたしのものは全部お前のものだ。
15:32だが、お前のあの弟は死んでいたのに生き返った。いなくなっていたのに見つかったのだ。祝宴を開いて楽しみ喜ぶのは当たり前ではないか。』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ルカによる福音書 15章25節~32節
너는 나와 항상 함께 있으므로
2023년 6월 25일 센겐다이교회 주일설교 카와에 토모아키목사
(오오미야 교회 쯔지 유키히로 목사님)
누가복음 15장 25~32절
서론
방탕한 아들인 동생이 돌아왔습니다. 방탕했던 자가 돌아온다는 것은 아버지로서는 무엇보다 기쁜 일이며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시작합니다. 주 하나님께 있어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하늘에서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Ⅰ 내면의 어두움
① 외면.. 충실한 훌륭한 형
오늘은 계속되는 이야기로 형의 이야기입니다. 형은 동생처럼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충실하게 아버지를 따라 농원에서 일했을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보면 「훌룡한, 좋은 아들」로 비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로 치자면 매주 충실히 예배에 참석하고 있고 부탁을 받으면 봉사도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② 내면의 어두움.. 동생에 대한 불만
하지만 이 형이야말로 문제의 뿌리는 깊습니다. 일상생활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형의 문제는 첫 번째로 동생도 불만스러워했지만 아버지에게는 재산이 있지만 자기들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는 불만입니다. 다르게 보면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구비되어 있는 혜택들을 확인하지 않고 아버지만이 차지하고 있다는 피해망상에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밑에서 누리고 있는 축복받은 주거환경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③ 아버지에 대한 불만
또 다른 것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동생은 아버지 재산의 절반을 받아 집을 나갔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고 동생은 죄를 짓고 모든 것을 잃고 돌아왔음에도 아버지는 동생의 귀환을 기뻐하며 성대한 연회석을 마련했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질투입니다. 그것은 29절의 형의 말,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에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서의 「섬기다」라고 하는 단어는 「노예」(도로스)의 동사형입니다. 남동생에 대한 질투뿐 아니라 자신은 아버지를 충실히 섬기고 있는데.. 라는 아버지에 대한 불신감입니다.
그리고 형에게 세 번째로 꼽히는 문제는 “동생은 죄인이지만 나는 청렴결백하다”라고 의식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Ⅱ 형이 가진 죄
① 자기중심의 죄
형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정리해야야만 합니다. 하나는 자기중심이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 있어서 자기변호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중심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주위와의 상대적인 비교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나쁘지 않아” “나는 뛰어나다”라고 하는 의식이 항상 있습니다. 율법주의자가 빠지는 죄입니다.
②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의 부재
또 하나는 자기중심으로 사는 것에 의한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의 부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주시는 은혜를 깨닫지 못합니다. 동생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아버지로부터 받은 은혜를 잃고 나서야 비로서 매일 당연하게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은혜를 깨달았지만 형은 아버지 곁에 계속 있었으면서도 이 은혜를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할 수 없는 무신론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대문에 절대적 기준인 아버지 하나님께 눈을 돌리지 않고 주위만 바라보고 자기정당화하며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훌륭하다는 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③ 절대적 기준으로서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아무래도 자기중심으로 사물을 생각하게 되는 나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탕한 아들의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것은 우리가 자기중심으로 사물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부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우리는 시선을 자신에서 주위로 돌려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주관하시고 그리고 우리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하는 하나님 중심으로 사물을 생각하는 삶의 방식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지도에서 조감도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새가 상공에서 아래를 보는 것처럼 그려져 있는 지도인데, 요즘은 드론으로 전체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때 기준은 자기자신이 아니고 하늘이요, 주 하나님이 됩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러한 시점에서 세상을 보려고 한다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의와 거룩과 진실이 모든 기준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이 됩니다. 나 자신의 모습 또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의 상대적인 생각에서 하나님 중심의 절대적인 생각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준으로 사물을 생각하면 동생이 스스로의 죄를 이해했듯이 자기 자신의 모습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로 얼룩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눈에 티를 빼려고 하기 전에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깨닫는 것이 요구됩니다. (참고 누가복음 6장 41,42절)
Ⅲ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① 동생을 반갑게 맞아 주시는 아버지
우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본 후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말씀을 통해 확인할 것이 요구됩니다. 아버지는 재산을 가지고 나간 동생이 빈털터리로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왔음에도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라고 말하며 기꺼이 잔치를 베풀어 주십니다.
② 형을 항상 기뻐하며 돌봐 주고 있는 아버지
그러면서 아버지는 형에게 “넌 매일 같이 있는데 내 은혜를 몰라?”라고 말하며 질책하지 않습니다. 그게 아니라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아버지가 항상 함께 있는 것에 대한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형에게 아버지는 항상 함께 있어 주십니다. 이때 아버지는 형을 언제든지 돌봐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형은 이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자녀와 부모의 교리(일본 그리스도 개혁파에서 발행한 교리문)를 고백했는데 , 그 첫 번째 문제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문1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우리가 잊고 있을 때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해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일상생활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임마누엘(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드릴 때만, 우리가 깨달았을 때만 함께 계신 것이 아닙니다. 임마누엘이란 주 하나님의 존재와 관련된 것으로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기 전부터 존재하셨고 지금도 존재하고 그리고 영원히 존재하시는 영원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 주님이 항상 함께해주시고 돌봐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주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은 모두 주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주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어 주십니다.
아버지는 항상 형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지켜본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할 때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이 지켜보는 것이지 고통스러울 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보고만 있을 뿐 지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③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헤아려보라
그러면서 우리와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께서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자기 중심으로 남과 비교할 때 자기 자신에게 없는 것만 신경 씁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항상 함께해 주시는 주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주시는 분임을 기억할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를 세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경제, 건강, 생활, 예배, 은사도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사도행전 5장 1~11절)처럼 한순간에 생명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빼앗을 수도 있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삶을 주시는 주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이 주 하나님께서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부족하다, 불평등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정말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하면 됩니다. 주 예수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태복음 7장 7,8절) 고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많은 은혜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 필요도 충족시켜 주십니다.
결론: 언제든지 하나님은 당신을 돌봐주고 계십니다.
여기서 아버지로서 말씀하시는 주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과 함께 계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하나님을 잊었을 때도 하나님앞에서 도망쳤을 때도 하나님은 당신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으로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은 없다라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돌봐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있음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녀와 부모의 두 번째 교리문(일본 그리스도 개혁파에서 발행한 교리문)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함께 걷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며 걷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序.
放蕩息子である弟が帰ってきました。放蕩していた者が帰って来ることは、父親としての何よりの喜びであり、父親は息子のために肥えた子牛を屠り、祝宴を始めます。主なる神にとって、私たち人間が、神の御許に戻ることが、天におけるどれだけの喜びであるかということが、語られています。▼
Ⅰ.内面の闇
①外面……忠実な立派な兄
今日はその続きで、兄の物語です。兄は、弟のように不満を漏らすこともなく、忠実に父に従い、農園において働いていたことでしょう。周囲の人たちから見れば、「立派な、良い息子」に映っていたことかと思います。
教会で言えば、毎週忠実に礼拝に出席している、そして頼まれれば、奉仕も行っているキリスト者ということができるかと思います。▼
②内面の闇……弟に対する不満
しかし、この兄こそ、問題の根は深いのです。普通の生活においては隠されている兄の問題は、第一に、弟も不満に思っていたことですが、父には財産があるが、自分たちは何も貰っていないという不満です。別の見方をすれば、毎日の生活において備えられている恵みの数々を確認することなく、父親だけが持っているという被害妄想に生きています。父親の下に与えられた恵まれた住環境に気が付いていません。▼
③父に対する不満
もう一つのことを語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弟は父親の財産の半分を貰って家を出て行ったが、自分は何も貰っていない。弟は罪を犯し、すべてを失って帰って来たにも関わらず、父は弟の帰還を喜び、盛大な宴席を設けたが、自分は何もしてもらっていない、と思っていることです。いわゆる嫉妬です。それは、29節に兄の言葉“わたしは何年もお父さんに仕えています”に表れています。ここにある「仕える」と言う言葉は、「奴隷」(ドロス)の動詞形です。弟に対する嫉妬ばかりか、自分は父に忠実に仕えているのに……といった父への不信感です。
そして兄に第三に挙げられる問題は、「弟は罪人であるが、自分は清廉潔白だ」と意識している点にあります。▼
Ⅱ.兄の持っている罪
①自己中心の罪
兄の持っている問題点を整理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一つは自己中心であり、他者との比較において、自己弁護を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これは自己中心の多くがそうであるように、周囲との相対的な比較を行います。ですから、「自分は悪くない」、「自分は立派だ」という意識が常にあります。律法主義者の陥る罪です。▼
②父なる神の不在
もう一つは、自己中心に生きることによる、父の不在・神の不在です。父なる神から与えられている恵みに気付くことができません。弟は、これらの父から与えられる恵みを失って、初めて、毎日当たり前のようにある父から与えられている恵みに気が付いたのですが、兄は、父の元に居続けており、この恵みに気が付くことができません。神のいない、神の恵みが理解できない無神論者となっています。
そのため、絶対的基準である父なる神に目を向けることなく、周囲ばかりを見て、自己正当化し、自分がキリスト者としての立派な姿を評価して欲しいのです。▼
③絶対的基準としての父なる神
私たちは、どうしても自分中心に物事を考えてしまう弱さを持っています。しかし、放蕩息子の話しから明らかになることは、私たちが自分中心に物事を考える時、私たちは、信じているはずの主なる神が不在となっているという事実です。
つまり私たちは、目線を自分から周囲を見渡し、神を求めるのではなく、主なる神が社会をどのように捉え、そして私たち自身をどのように思っておられるのか、という神中心に物事を考える生き方へと変化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地図で鳥瞰図というものをご存じでしょうか? 鳥が上空から下を見るように描かれている地図ですが、現在であればドローンにおいて全体像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ます。この時、規準は自分自身ではなくなり、天であり、主なる神となります。別の言い方をすれば、そういう視点で社会を見ようとするならば、神の持っておられる義・聖・真実がすべての規準となるのであり、神には罪がないために、絶対的な規準となります。自分自身の姿もまた、客観的に見ることができます。
自己中心の相対的な考えから、神中心の絶対的な考えに変化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して神を規準に物事を考えれば、弟が自らの罪を理解したように、自分自身の姿も神の御前には罪に汚れていることが示されます。
そして他人のおが屑を取ろうとする前に、自らの目にある丸太に気が付くことが求められています(参照:ルカ6:41,42)。▼
Ⅲ.父なる神の愛
①弟を喜んで迎え入れて下さる父
私たちは、自らの姿を顧みた上で、父である神がどういうお方であるかを、御言葉から確認することが求められます。父は、財産をもって出て行った弟が無一文で見窄らしい姿で帰って来たにも関わらず、“この息子は、死んでいたのに生き返り、いなくなっていたのに見つかったからだ"と語り、喜んで祝宴を催してくださいます。▼
②兄をいつも喜んで見守っていている父
その上で、父は兄に「あなたは毎日一緒にいるのに、私の恵みに気が付かないのか?」と語り叱責することはしません。そうではなく、“子よ、お前はいつもわたしと一緒にいる。わたしのものは全部お前のものだ”とお語りになります。
第一に、父が、いつも一緒にいることの恵みに気が付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兄にとって、父はいつも一緒にいてくださいます。この時、父は兄をいつでも見守っていてくださいます。兄は、この父の愛に気が付く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
今日は子どもと親のカテキズムを告白しましたが、その第1問で、告白しています。
問1 私たちにとって一番大切なことは何ですか。
答 神の子どもとして、神と共に歩むことです。
私たちが忘れている時も、主なる神は私たちと一緒にいてくださいます。そうであるならば、私たちはそのことを知り、神の恵みに感謝して、日々の生活を守ることが求められています。▼
インマヌエル(神は我々と共におられる)である神とは、私たちが礼拝する時だけ、私たちが気が付いた時だけ、共におられるのではありません。インマヌエルとは、主なる神の存在に関わることであり、神は天地万物を創造する前から存在され、今も存在し、そして永遠に存在される永久の存在です。そして、この主なる神が、いつも一緒にいてくださり、見守っていてくださっています。
そしてこの主なる神が、天地万物を創造されました。私たちの生活に必要なものは、すべて主なる神がお造りくださいました。だからこそ、私たちが生きていく上にあっても、主なる神は、いつも私たちに必要なものを、すべて備えてくださいます。
父親は常に兄を見守っていてくださいました。見守るとは、何もしな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必要な時に、必要な手助けをすることが見守りであって、苦しんでいる時に何も行わなければ、それは見ているだけで、見守っていることにはなりません。▼
③神がお与えくださる恵みを数えあげよう
その上で、私たちと共にいてくださる神が、「わたしのものは、全部お前のものだ」とお語りくださいます。私たちは、自己中心で他人と比較する時、自分自身にないものばかりを気にします。しかし私たちには、いつも一緒にいてくださる主なる神がおられ、神が、日々私たちに必要な恵みをお与えくださる方であることを覚える時、私たちに与えられている恵みを数えあげることができ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経済、健康、生活、礼拝、賜物も、すべて神が私たちに備えてくださった恵みです。神は、アナニアとサフィラ(使徒5:1~11)の如く、一瞬にして、生命や生活に必要なすべてを奪うことも可能なお方です。
それでもなお、今、私たちに生命を与え、生活をお与えくださる主なる神がおられます。そしてこの主なる神が、“全部お前のものだ”と語りくださいます。
足りない、不平等だと思うのであれば、私たちは本当に必要なことを、主に祈り求めれば良いのです。主イエスは“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与えられる。探しなさい。そうすれば、見つかる。門をたたきなさい。そうすれば開かれる。だれでも求める者は受け、探す者は見つけ、門をたたく者には開かれる”(マタイ7:7~8)とお語りくださいます。何ももらっていないのではなく、多くの恵みに満たされています。そして、まだ足らないものがあるならば、その必要をも満たしてくださいます。▼
結.いつでも神はあなたを見守っていてくださいます!
ここで父として語られている主なる神は、いつも私たちと共にいてくださいます。私たちが神から離れ忘れている時も、神の御前から逃げ去った時も、神は、あなたを忘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だからこそ、自分の判断で、神がおられる、神はいない、と判断するのではなく、今でも神があなたを見守っていてくださり、神の愛に満たされていることに気が付いていただきたいと思います。そして主の恵みにあることを、感謝して、喜んで生きて頂きたい、と思います。
主は私たちに対して、子どもと親のカテキズム問2が語るように、私たちが神を知り、神と共に歩み、神の栄光をあらわし、神を喜びとして、神と人に仕えて歩むことを、願っています。
問2 神と共に歩むとは、どのようなことですか。
答 まことの神を知り、神の栄光をあらわし、神を喜び、神と人に仕えて歩むこと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