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の日を待ち望む 주의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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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ペトロの手紙二 3章8節~13節
3:8愛する人たち、このことだけは忘れないでほしい。主のもとでは、一日は千年のようで、千年は一日のようです。
3:9ある人たちは、遅いと考えているようですが、主は約束の実現を遅らせておられるのではありません。そうではなく、一人も滅びないで皆が悔い改めるようにと、あなたがたのために忍耐しておられるのです。
3:10主の日は盗人のようにやって来ます。その日、天は激しい音をたてながら消えうせ、自然界の諸要素は熱に熔け尽くし、地とそこで造り出されたものは暴かれてしまいます。
3:11このように、すべてのものは滅び去るのですから、あなたがたは聖なる信心深い生活を送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3:12神の日の来るのを待ち望み、また、それが来るのを早めるようにすべきです。その日、天は焼け崩れ、自然界の諸要素は燃え尽き、熔け去ることでしょう。
3:13しかしわたしたちは、義の宿る新しい天と新しい地とを、神の約束に従って待ち望んでいるのです。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ペトロの手紙二 3章8節~13節
주의 날을 기다리며
2023년 6월 18일 센겐다이교회 주일설교 카와에 토모아키목사
베드로후서 3장 8~13절
서론
우리들은 베드로후서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드디어 이 서한도 오늘과 다음 번 한번을 남겨두고 끝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는 종말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 것인지 질문 받아 왔습니다. 종말에는 반드시 현혹시키는 자들, 재림을 부정하는 자들, 불품행을 행하는 자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깨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곧 이 종말을 끝내기 위해 주 예수께서 재림하시고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윽고 종말의 긴장은 끝나고 이 세상은 지나가고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종말에 앞서 새로운 세계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과 사람의 시간척도
베드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다시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르는 것은 베드로전서에도 2번 나왔고 베드로후서 3장에서는 4번이나 나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베드로가 부를 때“정말로 중요한 것을 너희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지연되고 있다고 여겨지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반드시 온다”라는 것입니다. 재림이 있을 것을 다짐하고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편지는 사도 베드로에 의해서 AD. 60년대 후반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이미 “주님의 재림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은 어떨까요? 이미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간 지 약 2000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예수님은 재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심해야만 할 조건이 당시보다 오늘날 더 갖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믿음을 갖고 있는 우리도 주님의 재림을 그다지 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언젠가 그날이 오리라는 것은 알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요. 베드로의 말은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도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8,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은 하루 같다고 합니다. 우리의 시간 척도와 하나님의 시간 척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그날 그때에 대해서는 자신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주님의 날이란 우리의 감각대로 오지 않고 우리가 가정하는 범위 내에서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요. 10절에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찾아온다고 적혀 있습니다. 도둑이 자기 집에 들이 닥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도둑이 들이닥치면 엄청난 충격과 손해를 입습니다. 믿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주님의 날은 바로 그런 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우리들 쪽에서 우리의 시간의 척도로 재림이 지연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은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가 회개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인내의 표현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의 인내가 우리들이 주의 재림이 늦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의 재림까지 남아있는 이 시간, 한 사람이라도 많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한 사람이라도 많은 영혼이 구세주를 믿고 구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래 인내하시지만 재림이 무한히 연기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림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온 우주가 전례없이 파괴되는 날로 찾아올 것입니다. 10,11절을 보세요.
(2) 불에 의한 정화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이 부분은 조금 꼼꼼하게 살펴보고 싶습니다. 먼저 10절의 마지막 단어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10절에서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라고 하는 부분인데 이 「큰 소리」란 무슨 소리일까요? 그리스어로 「로이제돈」이라는 단어입니다.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데 그것은 예를 들어 ①공중에서 새가 푸드득 나는 소리이거나 ②창이 공중으로 휙 던져지는 소리이거나 ③불이 탁탁 소리를 내며 불타는 소리에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큰 소리」란 세 번째 하늘이 탁탁 소리를 내며 타면서 사라질 수 있는 소리라고 할까요? 다음으로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이 「물질」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스토이케이아」라는 말입니다. 이 요소들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어떤 학자는 그리스 철학에서 기본 요소로 여겨졌던 「흙」「물」「공기」「불」이 네가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어떤 학자들은 여러 요소가 「별」「행성」「은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라는 부분을 물질 원소가 새로운 성질을 띠기 위한 변화이며, 그것은 곧 탄소가 진흙으로도 다이아몬드로도 되듯이 탄소라는 성질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진흙이 다이아몬드로 변화하듯이 이전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변화가 초래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쨌든 무서운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주님의 날에 대해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복음서의 말씀을 찾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 29절을 참조해 주십시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계속해서 누가복음 21장 25,26을 보시기 바랍니다.
25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26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따라서 주의 날에 일어나는 일이란 말하자면 무서운 「우주적 파국」이라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구의 자연 파괴나 핵전쟁의 위혐등 그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그런 문제조차 작은 사안으로 여겨질 정도로 우주적 규모의 대변혁, 우주적 파국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주의 날의 우주적 파국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 목적은 불에 의한 정화이며, 만물을 화로에서 반죽하고 새롭게 단장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65장 17절을 참조하십시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또한 「우주적 파국」의 목적은 불로 정화함으로써 만물을 부패하는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를 얻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0,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으니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일어나는 우주적 파국으로 인해서 피조물이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날은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에베소서1장 10절) 날이며 만물을 회복하실(사도행전3장 21절) 때이며 재창조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세상도 세상 욕심도 지나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할 것 (요한일서 2장 17절)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 재창조에 의해 창세기 에덴동산이 그대로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상입니다. 진흙에서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는 재창조입니다. 대변혁을 수반하는 재창조입니다. 3장 12,13절을 참조하세요.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2절에「사모하라」13절에 「바라보다」그리고 다음 번에 보게 될 14절에 「바라보다」라고 하는 말은 「사모하라, 바라보다」로 다르게 번역되었으나 그리스어의 어원은 같은 의미의 말이 세 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주님의 날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희망의 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음생활을 통해 우러러보았던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의 역사가 그날 실제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죄도 얼룩도 상처도 전혀 없는 의로운 세계가 오고 죽음도 없고 슬픔도 탄식도 아픔도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와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날은 재림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멸망의 날이지만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에게는 궁극적인 희망의 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얼마나 거룩하고 믿음 깊은 삶을 살면서 그날을 대비해야 할까요? 깨어나 우리의 연약함에서 오는 죄에서 벗어나 경건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종말의 기간은 하나님의 아들의 초림과 재림에 의해 정의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인간의 육체를 입으시고 세상에 초림하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할의 사역을 이루신 후 재림의 약속을 남기시고 하늘로 올라가시고 또 이때 예수님의 초림으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영적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초림 하셨을 때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 하나님 나라가 말씀에 의해 뿌려졌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같고, 그것이 밭에 뿌려져도 사람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빵의 효모와도 같아서 빵 반죽에 투입되면 잘 눈치채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작고 잘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히 찾아왔고 믿는 사람들을 거듭나게 했고 주안에서 자녀로서의 신분, 평안과 의와 영원한 생명이라는 축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축복들은 「주님 안에서」주어지는 영적 축복으로서 신약성경 속에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축복들이 단순히 영적 축복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졌듯이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도 영적인 부분과 눈에 보이는 외면적인 부분, 육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부분은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지어졌지만, 눈에 보이는 외면적인 부분을 완성하기 위해, 외면적인 부분을 부여하기 위해 예수님은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그날 찾아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은 현재 지상에 있는 그 어떤 아름다운 자연보다도, 어떤 인류의 건축물보다도 더 영광스럽게 빛날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보다도 더 영광스럽게 빛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 재창조되어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광과 빛 가운데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그날 새롭고 완전한 유월절 만찬을 하고 새 포도열매의 포도주를 주 예수님과 함께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허무하기 그지없으며 자연재해의 위기에 처해, 전쟁의 위기에 처해 더 이상 누구도 적절하게 이 상황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은 분명합니다. 누가 핵전쟁의 위기를 막아줄까요? 누가 바이러스나 전염병의 만연으로부터 지켜줄까요? 누가 사회적 혼란으로부터, 정신적인 억압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까요? 유일한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맡기시고 어느 날 그 통치가 가시적인 형태로 밝혀질 것입니다. 주의 날,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날 우주적 파국이 찾아오고 불에 의한 정화와 대변혁이 일어납니다. 천국과 양립할 수 없는 세상과 세상의 욕심은 모두 불타 없어지고 화로 안에서 정련되듯이 녹아버립니다. 이것은 심판의 시작이자 의로운 새 하늘과 새 땅의 재창조이기도 합니다. 그때 완고하게 믿지 않았던 자들은 왜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자신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집에 갑자기 도둑이 든 것처럼 허둥대며 충격받는 자가 아니라 기꺼이 주님을 모시고 의로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되는 자로서 거룩하고 경건한 삶과 기도를 드리는 자로서 하루 하루를 살아갑시다.
【序】
私たちはペトロの手紙二に記されている神の御言葉に、耳を傾けてまいりました。いよいよこの書簡も今日と、あと一回を残して終えることになります。ペトロの手紙二は、終末にあって、キリスト者がどのように生きるのか問われてきました。終末には必ず、惑わす者たち、主の再臨を否定する者たち、不品行に走る者たちが現れます。しかし、キリスト者は目を覚ま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なぜなら、やがて、この終末を終わらせるために主イエスが再臨し、この世を審判されるからです。やがて、終末の緊張は終わり、この世は過ぎ去り、先にあったことは思い出されなくなるからです。終末の先に、新しい世界が準備されているからです。
【1】. 神と人の時間の尺度
ペトロは、「愛する人たち」ということばを再び使っています。この呼びかけは、ペトロの手紙一にも二回出てきましたが、ペトロの手紙二の3章の中には、4回も出てきます。「愛する人たち」とペトロが呼びかける時、本当に重要なことをあなた方に伝えたいと言っているのだと思います。その重要なこととは、遅延していると考えられているキリストの再臨が、「必ず来るんだ」ということです。再臨があることを念押ししているのです。この手紙は、使徒ペトロによってAD.60年代の後半に書かれたものと思われますが、当時、すでに「主の再臨などない」と主張する人々が現れていました。今日、私たちの置かれている状況はどうでしょうか。すでにイエス様が天に昇られてから約二千年の時が流れていますが、未だイエス・キリストは再臨していません。キリストの再臨を疑う条件が、当時よりも今日の方が、もっと揃っていると言えるでしょう。もしかすると信仰を持っている私たちも、主の再臨のメッセージを、あまり現実的なものとしては考えず、いつかその日が来るであろうことは知っているけれど、まだまだ先のことであり、自分とは全く関係のないことだと考えてしまうことはないでしょうか。ペトロの言葉は現代に生きる私たちにも語り掛けてくれるでしょう。8、9節をご覧ください。
“愛する人たち、このことだけは忘れないでほしい。主のもとでは、一日は千年のようで、千年は一日のようです。ある人たちは、遅いと考えているようですが、主は約束の実現を遅らせておられるのではありません。そうではなく、一人も滅びないで皆が悔い改めるようにと、あなたがたのために忍耐しておられるのです。”
主のもとでは、一日は千年のようで、千年は一日のようだと言っています。私たちの時間の尺度と、神の時間の尺度が異なるということですね。神の御子であられるイエス様も、その日、その時については、ご自身も知らない、ただ父なる神だけがご存じであると言われました。ですから、ここで教えられていることは、主の日とは、私たちの感覚の通りには来ない、私たちの想定の範囲内では来ないということではないでしょうか。10節で、主の日は、盗人のようにやって来ると書かれています。強盗に入られることを好む人はいません。強盗に入られると大変な損害とショックを受けます。信じなかった者にとって、主の日とは、まさにそのような日になるということです。ペトロは、私たちの側で勝手に遅延と感じているのは、実は、一人も滅びずに皆が悔い改めるため、神の忍耐の現れであるということを指摘しているのです。怒るのに遅い神様の忍耐が私たちが主の再臨が遅れているのではと感じる原因なのです。そうであるなら、主の再臨まで残された時間、一人でも多くの人々に神の福音を宣べ伝えるべきであります。福音を宣べ伝え、一人でも多くの魂が救い主を信じ、救いに入れられるように祈るべきであります。神は長く忍耐されますが、無限に延期されたわけではないからです。再臨の約束は必ず成就されるからです。その日は、全宇宙が前例のないほど破壊される日として訪れることでしょう。10~11節をご覧ください。
【2】. 火による浄化
“主の日は盗人のようにやって来ます。その日、天は激しい音をたてながら消えうせ、自然界の諸要素は熱に熔け尽くし、地とそこで造り出されたものは暴かれてしまいます。このように、すべてのものは滅び去るのですから、あなたがたは聖なる信心深い生活を送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この箇所は少し丁寧に読んでいきたいと思います。まず、10節の最後の言葉、「地とそこで造り出されたものは暴かれてしまいます」という箇所ですが、新改訳聖書では、「地と地のいろいろなわざは焼き尽くされます」となっていて、「暴かれる」という言葉が「焼き尽くされる」と翻訳されています。この違いは写本の違いから生じているようです。どちらの写本を取るのかによって、意味が変わってきますが、私は新共同訳が支持している写本の方が、信頼できるものと考えています。ですから、この聖書のように「暴かれてしまいます」という翻訳がいいのではと考えています。次に10節で「その日、天は激しい音をたてながら消え失せる」という箇所ですが、この「激しい音」とはどんな音なのでしょうか。ギリシア語で「ロイジェドン」という単語です。聖書にここにしか出てきませんが、それは例えば、①空中で鳥がバザバサと羽ばたく音であり、或いは、②槍が空中にビュンと投げられる音であり、或いは、③炎がぱちぱちと音を出して燃える音に使用されるようです。ですから、「激しい音」とは、三番目の天がぱちぱちと音を立てて燃えながら消え失せる音ということになるでしょうか。次に「自然界の諸要素は熱に溶ける」とありますが、諸要素という言葉は、ギリシア語で「ストイケイア」という言葉です。この諸要素とは一体何を指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ある学者は、ギリシャ哲学において基本要素として考えられていた「土」、「水」、「空気」、「火」の四つを指しているのではと考えます。また、ある学者は諸要素とは「星」、「惑星」、「銀河」を指しているのではと考えます。宗教改革者カルヴァンは「自然界の諸要素が熱に溶ける」という箇所を、物質の元素が新しい性質を帯びるための変化であって、それはすなわち、炭素が泥にもダイヤモンドにもなるように、炭素という実質そのものは変わらないけれども、泥がダイヤに変化するように以前のものとは比べ物にならない大きな変化がもたらされることだと言います。とにかく恐ろしい状況が目の前に広がる、ということなのでしょう。イエス様も主の日について、同様なことを言われました。福音書の御言葉を調べてみましょう。マタイ24:29をご覧ください。
“その苦難の日々の後、たちまち/太陽は暗くなり、/月は光を放たず、/星は空から落ち、/天体は揺り動かされる。”
続いてルカ21:25-26をご覧ください。
“それから、太陽と月と星に徴が現れる。地上では海がどよめき荒れ狂うので、諸国の民は、なすすべを知らず、不安に陥る。人々は、この世界に何が起こるのかとおびえ、恐ろしさのあまり気を失うだろう。天体が揺り動かされるからである。”
したがって、主の日に起こる事とは、言ってみれば恐ろしい「宇宙の破局」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私の考えでは、おそらく、現在進行している地球規模の自然破壊や、核戦争の脅威など、それ自体大変深刻な問題ではありますが、そのような問題さえ小さな事柄に思えるほどの、宇宙規模の大変革、「宇宙の破局」が起こるのではないかと思っています。それでは、主の日の「宇宙の破局」の目的とは一体何でしょうか。その目的は、火による浄化であり、万物を炉で練り清め、リニューアルすることです。旧約イザヤ65:17をご覧ください。
“見よ、私は新しい天と新しい地を創造する。/先にあったことが思い出されることはなく/心に上ることもない。”
また、「宇宙の破局」の目的とは、火で浄化することによって、万物を腐敗する奴隷状態から解放し、神の子どもたちが享受する栄光の自由を得させることです。ローマ8:20~21をご覧ください。
“被造物は虚無に服していますが、それは、自分の意志によるものではなく、服従させた方の意志によるものであり、同時に希望も持っています。つまり、被造物も、いつか滅びへの隷属から解放されて、神の子供たちの栄光に輝く自由にあずかれるからです。”
主の日、宇宙の破局が訪れ、被造物が完全に消滅す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その日は、万物の回復(エフェ1:10)であり、万物が新しくされる時(使徒3:21)であり、再創造される日でもあります。「世も、世の欲も、過ぎ去ります。神の御心を行う者は、永遠にとどまります。(1ヨハ2:17)」と書いてある通りです。しかし、この再創造によって、創世記のエデンの園がそのまま回復されるのではありません。それ以上であります。泥からダイヤが生み出されるような再創造であります。大変革を伴う再創造であります。3:12、13をご覧ください。
【3】. 主の日を待ち望む
“神の日の来るのを待ち望み、また、それが来るのを早めるようにすべきです。その日、天は焼け崩れ、自然界の諸要素は燃え尽き、熔け去ることでしょう。しかしわたしたちは、義の宿る新しい天と新しい地とを、神の約束に従って待ち望んでいるのです。”
12節と13節と、そして、次回見ることになる14節に、「待ち望む」という言葉が三回使用されています。つまり、主の日は、キリスト者にとって希望の日であるということがわかります。なぜなら、私たちが信仰生活を通して仰ぎ見た神の国が、天の嗣業が、その日、実際に顕わにされるからです。その日、罪も、しみも、傷も全くない、義の宿る世界が来る。死もなく、悲しみも、嘆きも、痛みもない新しい天と新しい地が、神のもとから下って来て、そこで主と共に永遠に生きるようにされるのです。その日は、再臨を信じない者たちにとっては、永遠の滅びに入れられる、恐ろしい審判の日でありますが、再臨を待ち望む者たちとっては、究極の希望の日であるのです。そうであるなら、私たち聖徒は、どれほど聖なる信心深い生活を送りながら、その日に備えるべきでしょうか。目を覚まし、私たちの弱さから来る罪から離れ、敬虔な生活を送るように努力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終末の期間は、神の子の初臨と再臨によって定義づけられました。御子イエス様は、2,000年前に肉の体を取られ、この世に初臨されました。十字架と復活の御業を成し遂げられた後、再臨の約束を残して、天に昇られまた。この時、イエス様の初臨によって神の国は、既に霊的に訪れたのであります。言い換えれば、イエス様の初臨の時、キリスト者の心の中に神の国が御言葉によって撒かれたと言う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神の国は、からし種のようであって、それが畑にまかれても、人の目には確認できないほど、小さなものであります。神の国は、パン種のようであって、パン生地に投入されると誰も気づかないほどであります。しかし、それがあまりにも小さく、目に見えないものだからと言って、存在しない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神の国は、確かに訪れ、信じる者たちに、新しく生まれることを体験させ、主にあって、子としての身分、平安と、義と、永遠の命という祝福をもたらしました。これらの祝福は、「主にあって、主の中で」与えられる霊的な祝福として、新約聖書の中に強調されています。しかし聖書は、これらの祝福が、単に霊的な祝福でのみ、終わるものではないと言います。人間が、魂と肉体からなるように、同じように、神の国も霊的な部分と、目に見える外面的な部分、肉的な部分があるということです。神の国の霊的な部分は、イエス様の初臨によって既に建て上げられましたが、目に見える外面的な部分を完成させるために、外面的な部分を付与させるために、イエス様は再び来られるのです。その日、訪れる新しい天と新しい地の栄光は、現在地上にある、いかなる美しい自然よりも、いかなる人類の建造物よりも、栄光に輝くことでしょう。創世記に出てきたエデンの園よりも、さらに栄光に輝くことでしょう。神の被造物が再創造され、神の御前で永遠に衰えることのない栄光と輝きの中で照らされるからです。その日、新しくて完全な過ぎ越し祭の晩餐を食し、新しいぶどうの実から、ぶどう酒を主イエスと共に飲むことになるのです。
【結論】
現在、私たちの住んでいる世界は虚無に服しており、自然災害の危機にさらされ、戦争の危機にさらされ、もはや誰も適切に制御できない状況にあることは明らかです。誰が核兵器の危機を防いでくれるでしょうか。誰がウィルスや伝染病の蔓延から守ってくれるでしょうか。誰が社会的な混乱から、精神的な抑圧から、私たちを守ってくれるでしょうか。唯一の解決策は、イエス・キリストです。神はこの世界をイエス・キリストの手に渡され、かの日にその支配が目に見える形によって明らかにされることでしょう。主の日、キリストが再臨される日に、宇宙の破局が訪れ、火による浄化と大変革が起こります。天国に相容れない世と、世の欲は全て焼き崩れ、炉の中で精錬されるように熔け去ります。これは審判の始まりであると同時に、義の宿る新しい天と新しい地の再創造でもあるのです。その時、かたくなに信じなかった者たちは、なぜ、真実のキリスト者が自分たちとは違う生活を送っていたのか、初めて理解す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やがての日に、盗人に入られたかのように慌てふためき、ショックを受ける者ではなく、喜んで主をお迎えし、義の宿る新しい天と新しい地へと導き入れられる者として、聖なる敬虔な営みと、祈りを捧げていく私たちとして、日々を過ごしてまいりま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