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の聖定としての贖罪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으로서의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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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説教
-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6章1節~5節
1イエスはこれらの言葉をすべて語り終えると、弟子たちに言われた。
2「あなたがたも知っているとおり、二日後は過越祭である。人の子は、十字架につけられるために引き渡される。」
3そのころ、祭司長たちや民の長老たちは、カイアファという大祭司の屋敷に集まり、
4計略を用いてイエスを捕らえ、殺そうと相談した。
5しかし彼らは、「民衆の中に騒ぎが起こるといけないから、祭りの間はやめておこう」と言っていた。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6章1節~5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으로서의 속죄
2019년 4월28일 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마태복음 26장 1절~5절
16장부터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기록이 시작됩니다. 16:1에서「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라고 기록된 대로, 예수님께서는 이틀이 지나면 벌어질, 자신의 십자가 수난에 대해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다」라는 말은 마침내 때가 차셨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잡으려 해도 실패하여 좀처럼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때가 차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자들에게 모든 말씀을 다 마치셨으니, 때가 차신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이틀이 지나면」유월절입니다. 이날, 이스라엘 온 나라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유월절 제물을 바치고 예배드리기 위해 모여듭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께서는 군중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계셨지만, 반면, 종교 지도자이자 정치 지도자이기도 한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다지 인기가 없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예수님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초조해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수로, 군중의 분노를 사서는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에도 명절에 비슷한 일이 일어나, 인파 속에서 소동이 벌어져 패닉 상태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밟혀 압사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명절이 다가오자 로마 병사들의 경비도 평소보다 한층 더 증강되고 강화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종교 지도자인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저택에 모여 비공개 회의를 가졌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3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4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5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다음 두 가지 사항에 대해 결의했습니다. 첫 번째 결의는, 흉계를 써서 예수를 붙잡아 죽이자는 것이었습니다. 흉계를 써야만, 공식적으로 예수를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산헤드린이 예수님과의 논쟁에서 패배하여, 예수님의 말씀에서 죄를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 결의는「명절에는 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본래 그들은 민중의 소동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명절이 지난 후에 예수를 잡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인간들의 그러한 계획을 초월하여, 배신자 유다를 통해 제사장들의 계획을 변경시키고, 하나님 자신의 영원한 계획을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게 하여, 자신의 백성으로 삼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면, 예수님께서 굳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보다, 당시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받아,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백성을 하나님 앞에 굴복시키는 편이 더 효율적이고 성공적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으로,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보다, 더 성공적이고 승리로 이끄는 편이, 하나님께도 우리에게도 오히려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머지않아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될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장차 주실 복을 오히려 빨리 주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는 「표적」을 믿는 자들에게 신속히 보여 주신다면, 그것이 하나님께도 우리에게도 윈윈(win-win) 관계가 되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권적으로, 자발적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셨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확인할수록, 과연 정말 그럴까, 사실은 그것이 차선책일 뿐이고, 본래의 최선은 예수님께서 왕으로 군림하시는 것이며, 더 나아가 로마 황제가 되시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버립니다.
독일의 신학자 슈바이처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역시 예수님께서 스스로 십자가의 죽음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예수님께서는 본래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셨으나, 그분의 가르침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충분히 이해되지 않아, 결국 체포되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합니다. 만약 유다의 배신이 없었다면, 유월절 날에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의 왕으로 환영받으셨을 것이며, 그를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상상해 본다면, 언젠가는 로마의 황제가 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회하는 길을 택하시고 십자가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단을 취하시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이유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은 하나님께 반역하고, 죄를 짓고, 타락해 버렸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은, 모두 버리고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시면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훨씬 더 이해하기 쉽고 간단하지 않겠는가 하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즉, 하나님의 영원성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실패하실 수 없습니다. 이전의 실패를 한 번 리셋하고 다시 창조하는 것은 능력과 방법 면에서 간단해 보이지만, 그렇게 해버리면 하나님께서 이전에 창조하신 세상이, 사탄의 유혹과 방해로 인해 실패했다는 것이 되어버리고,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상, 하고 싶으셔도 할 수 없으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다시 시작한다는 단순하고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주권적으로 죽으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시며, 우리를 위해 왜 이토록까지 하셔야만 하는가 하는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이해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2~23절을 보십시오.
사도행전 2장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니
베드로의 이 설교를 보면,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에 따라 정해진, 예수님의 죽음에 두 가지 손길이 작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손이고, 다른 하나는 법없는 자들의 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 법없는 자들의 손은 하나님의 세력을 거부하는 죄악적인 세력입니다. 도덕적으로 죄가 많다는 것보다는, 항상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는 반대 세력이라는 의미입니다. 이「하나님의 손」과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려는 손」이 서로 작용하여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려는 손」이 작용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보다, 아담이 하지 못했던 일을 다시 한다는 의미에서, 처음부터 사탄의 방해를 받지 않고 로마 황제가 되시는 편이 더 간단명료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셨더라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 믿고, 하나님께 항복하며, 하나님께 맡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신자인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당신 아래로 모으고자 하신다면, 우리에게 시련의 길을 걷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길을 걷게 하시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는 잘못된 생각을 여기서 바로잡는 것입니다.
시련이나 사탄에 의한 방해와 같은, 이른바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세력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손과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를 돕는 글들이, 성경 속에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자면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기독교 역사상 사도 바울만큼의 「하나님의 종」은 없습니다. 바울은 유대인 중의 유대인으로 태어나, 바리새파로서 가말리엘 밑에서 배웠으며, 로마 시민권을 가졌을 당시 정치적으로도, 교육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어느 면에서 보나 엘리트였습니다. 어느 각도에서 보나 모범적이고, 충실하며,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하나님의 위대한 인물이라면, 그의 경력도 처음부터 끝까지 흠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기 쉽지만, 사실 바울에게는 치명적인 경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스데반을 죽여버렸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엘리트를 준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12제자 중에는 포함시키지 않으시고, 오히려 반대 세력 속에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즉, 기독교인을 끝까지 박해하고,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인물이자, 가장 제거해야 할 적이었죠. 그런데 그런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게 됩니다.
만약 그의 경력에 실패가 없었고, 예를 들어 베드로보다 먼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베드로가 세 번 예수님을 부인했을 때에도 바울은, 골고다의 십자가까지 따라가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장례까지 지켜보았다면, 훨씬 더 멋지지 않았을까요? 그 후 바울의 세계 선교가 고생 없이 진행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사도 바울의 사역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도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계시를 받은 자이며, 그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큰 능력을 받은 자로서, 곳곳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운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항상 자신을「죄인 중에 괴수」라고 칭하며, 「모든 사도 중에서 가장 작은 자」라는 겸손한 말로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그 겸손은 과장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스데반을 죽였다는 경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결코 오해하지 않았습니다. 즉, 바울의 실패는, 위대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것입니다. 만약 그런 실패가 없었다면, 본래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되어, 로마의 황제가 되셨어야 했다고 주장하는 이단적인 가르침을 설파하는 학자가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 이러한 치명적인 과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몸에 사탄의 가시를 주셨다고 합니다. 바울은, 그 가시에 대해 하나님께 세 번이나 제거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바울이 여러 곳을 다니며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있어 큰 장애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가시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간질 환자였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 가시가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만약 그런 약점이 없었다면 바울의 전도가 더욱 훌륭한 전도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죽인 일을 결코 잊지 못하며,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인지 깨달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여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가시를 주심으로써, 바울을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조금 더 훌륭한 경력을 가지고, 가시도 없고, 건강하며, 잘생겼다면 사역도 더욱 효과적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되겠지만, 그것은 인간의 생각일 뿐, 하나님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손과 사탄의 손이 서로 협력하여, 신비롭게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어 가는 것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난 요셉이 등장하는데, 그는 아버지에게 편애를 받아 형들이 양을 돌보는 등 고된 노동을 하는 동안 요셉만은 항상 집에 틀어박혀 공부하거나 편히 지냈기 때문에 형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습니다. 형들은 기회를 엿보아 요셉을 죽이려 했으나, 직접 손을 대기는 어려웠기에, 지나가던 미디안 상인들에게 그를 팔아넘겼습니다. 요셉은 이집트 파라오의 근위대장의 집에 노예로 팔려갔으나, 그 집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이번에는 죄수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즉, 노예로 팔려간 뒤 죄수가 되어 그곳에서 10년 넘게 처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 후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마침 그때 전 세계에 대기근이 닥쳤고, 가나안에 살고 있던 자신의 가족이 이집트의 요셉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기 때문에, 이집트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주시키는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공헌을 이루었습니다.
형들은, 예전에 요셉을 죽이려고 미디안 상인에게 팔았지만, 설마 이런 형태로 다시 요셉과 재회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요셉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이 비참한 삶을 살아갈 때, 빨리 노예에서 해방되는 것, 빨리 감옥에서 나오는 것, 그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세상의 가난을 구제하고, 자신의 민족과 재회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형제들은 요셉이 여전히 원한을 품고 있을 것이며, 자신들은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50장 15-20절을 보면, 요셉에게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 함께 작용했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
습니다.
창세기 50장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우리를 곤란하게 하고, 그저 큰 짐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장애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육체적인 지병, 건강상의 약점 등 각자 다른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 세상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려고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어려움과 질병, 가난, 실패를 안고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무엇이 준비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우리를 낙담하게 하거나, 실망하게 하거나, 분노를 일으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것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가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경외해야 할 분이시며, 찬양을 받으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바울은 고백합니다(로마서 8:32). 그러므로 믿음으로, 순종과 간절함으로 우리가 미리 맛보았던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상속받고,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놀라운 결과를 맛볼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16章からイエス様の受難と復活の記事に入ります。16:1で「これらの言葉を全て語り終えると」、イエス様は、二日後のご自身の十字架による受難について語り始めました。「全て」という言葉は、いよいよ時が満ちたということです。今まで、ユダヤの宗教指導者たちがイエス様を捕えようとしても失敗し、なかなか捕え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それは、時が満ちていなかったからでした。しかし今や弟子たちに全て語り終え、時が満ちたのです。2節をご覧ください。
「あなたがたも知っているとおり、二日後は過越祭である。人の子は、十字架につけられるために引き渡される。」
「二日後」は、過ぎ越しの祭りの日です。この日、イスラエルの国中の人々が、こぞって、エルサレムの神殿を目指し、過ぎ越しの供え物を捧げ、礼拝するためにやってきます。ユダヤ人にとって最大の祭の日である過ぎ越しの祭の日に、イエス様は十字架にかかられると宣言なさっているのです。当時イエス様は群衆から大変人気があり、一方で宗教指導者でありながら、政治指導者でもある祭司たちと長老は、あまり人気がありませんでした。祭司たちはイエス様の人気が上がれば上がるほど、いらだちましたが、だからと言って、間違っても、下手をして群衆の怒りに触れてはなりませんでした。というのも、以前にも同じようなことが祭の日に起きて、人ごみの中で騒動となりパニック状態となって、何人もの人々が重なって、圧死したという前例があったからです。ですから祭が近づいてくると、ローマ兵による警備も、普段より一段と増強され強化されました。そのような中で、宗教指導者である祭司たちと長老たちは大祭司カイアファの屋敷に集まり、非公開の集まりを持ちました。3~5節をご覧ください。
そのころ、祭司長たちや民の長老たちは、カイアファという大祭司の屋敷に集まり、
計略を用いてイエスを捕らえ、殺そうと相談した。
しかし彼らは、「民衆の中に騒ぎが起こるといけないから、祭りの間はやめておこう」と言っていた。
祭司たちと長老たちは次の二つのことについて決議いたしました。第一の決議は、イエスを計略を用いて捕え、殺そういうことです。計略を用いてでしか公的にはイエスを捕えることができないのは、サンヘドリンがイエス様との論争に負けて、イエス様の言葉尻から罪を見出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ためと思われます。
第二の決議とは、「祭りの間はやめておこう」ということです。本来、彼らは民衆の騒ぎが起こることを恐れ、祭りの後にイエスを捕えようとしたのです。しかし、神の聖定によると、人間たちのそのような計画を超越し、裏切者のユダを通して祭司たちの計画を変更させて、神ご自身の永遠の計画を成就させるのです。
しかし、究極的な神の計画というのが、私たちにイエス様を信じさせて、ご自身の民にして、救いに入れさせるということであるなら、イエス様がわざわざ十字架に架けられて死なれるより、当時、イスラエルの王として認められて、神の国の到来を宣言し、民を、神の前に降伏させる方が、より効率的で成功的ではないのか、と思われるかもしれません。
つまり、神さまが私たちを導く方法として、試練と困難を通してより、成功的に勝利的に導く方が、神さまにとっても、私たちにとっても、むしろ、それがいいのではないかと思ってしまいます。どうせ、神さまを信じて神の民とならせていただき、やがて御国を相続させてくれるのであるなら、神さまは将来与えてくださるであろう幸いをむしろ早く与えてくださり、イエス様を信じるようにさせる「しるし」を速やかに信じる者に現してくだされば、それが、神さまにとっても私たちのとってもwin winの関係でいいのではないかと思ってしまいます。ですからイエス様が主権的に、自発的に十字架の死を選び取られたということを、聖書を通して確認すればするほど、果たして本当にそうだろうか、実はそれはセカンドベストであって、本来のベストはイエス様が王として君臨されることであり、さらに言えばローマ皇帝になることだったのでは、と考えてしまいます。
ドイツ人のシュバイツァーという神学者がいますが、彼も、イエス様が自ら十字架の死を、自発的に選ばれたということをどうしても受け入れられず、イエス様は、本来イスラエルの王として来られたのだが、彼の教えがイスラエルの人々に十分に理解されることがなく、最終的に捕えられて殺されざるを得なかったと解釈します。もし、ユダの裏切りがなければ、過ぎ越しの祭の日、人々からイスラエルの王として迎えられ、彼を信じる者が救いに入れられるはずであっただろうと考えるのです。さらに想像を膨らませるなら、やがてローマの皇帝にもなったかもしれません。
しかし、私たちが理解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は、神がこのように遠回りするように、十字架という分かりにくい手段を取られるのは、神が神であられる所以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神が創造した人間は神に反逆し、罪を犯し、堕落してしました。私たちの考えでは、それでは、このような人々は全て捨てて、また新しい人間を造ればいいのではないか、それがもっと分かりやすく、簡単ではないですかと思われます。しかし、神さまはそのようにできないお方です。つまり、神の永遠性によって、神において失敗はあり得ないのです。以前の失敗を一度リセットして、もう一度造るというのは、能力と方法において簡単なように見えますが、そうしてしまうと、神が前回、創造された世界がサタンの誘惑と妨害によって失敗してしまったということになってしまい、すべてを統治されている神さまの属性上、したくてもできないのであります。
もう一度やり直すという単純で簡単な道を選択せず、イエス様が十字架によって主権的に死なれたということは、神とは一体、どのような方であり、私たちのためになぜここまで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ということを考えさせられます。イエス様の受難の理解について、使徒言行録のペトロの説教に要約されています。使徒2:22~23節をご覧ください。
イスラエルの人たち、これから話すことを聞いてください。ナザレの人イエスこそ、神から遣わされた方です。神は、イエスを通してあなたがたの間で行われた奇跡と、不思議な業と、しるしとによって、そのことをあなたがたに証明なさいました。あなたがた自身が既に知っているとおりです。
このイエスを神は、お定めになった計画により、あらかじめご存じのうえで、あなたがたに引き渡されたのですが、あなたがたは律法を知らない者たちの手を借りて、十字架につけて殺してしまったのです。
このペトロの説教を見ると、神の永遠における聖定として定められたイエス様の死において、二つの手があったということが分かります。一つは神の手であり、もう一つは律法を知らない者たちの手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そして、面白いことに、この律法を知らない不法者の勢力は、神の勢力を拒絶する罪悪な勢力です。道徳的に罪深いと言うよりも、常に神の御心に反逆する反対勢力だという意味です。この「神の手」と、「神の御心に反逆しようとする手」が相働いて、神の御心が成就するのです。「神の御心に反逆しようとする手」が働くということが大変重要です。
なぜなら、イエス様が十字架によって死なれるよりも、アダムができなかったことをやり直す意味で、最初からサタンに妨害されずローマ皇帝になった方が、簡単明瞭ではないか、そのようにした方が、人々はよりイエス様を信じて、神に降伏し、神に委ねることができるのではないと思うのですが、つまり、神様が信者である私たちを愛されて、神の民をご自身の下に集めようと思われるのなら、私たちに試練の道を歩ませるのではなく、豊かな道を歩ませるのが、より良いのではないか、という間違った考え方をここにおいて訂正するのです。
試練やサタンによる妨げのような、いわゆる否定的と思われる勢力が、実は、神の手と相働いて神の御心を成し遂げるのです。このような理解のための記事が、聖書の中に多く見られます。例を挙げるなら、使徒パウロを見て下さい。キリスト教会史において使徒パウロほどの「神の僕」はいません。パウロはユダヤ人の中のユダヤ人として生まれ、ファリサイ派として、ガマリエルの下で学び、ローマ市民権を持った当時、政治的にも、教育的にも、宗教的にも、どの面からみてもエリートでした。どこから見ても模範的で、忠実で、偉大な神の働き人です。しかし彼がそのように神の偉大な人物であるなら、彼の経歴も最初から最後まで傷のないものと考えられがちですが、実際、パウロには致命的な経歴がありました。それはステファノを殺してしまったということです。さらに言えば、神さまはこのようなエリートを準備しながらも、イエス様の12弟子には入れないで、むしろ反対勢力の中に建てられたということです。つまりキリスト教徒をとことん迫害し、イエス様を信じる弟子たちにおいて最も恐ろしい人物であり、最も除かなければならない敵でした。ところが、そんなパウロがダマスコでイエス様に出会い回心することになります。
もし、彼の経歴において、失敗がなく、例えばペトロより先にイエス様から召しを受けて、ペトロが三回イエス様を否定しても、パウロはゴルゴタの十字架までついていき、マリアと一緒にイエス様の埋葬まで立ち会ったとすれば、もっとかっこよくないでしょうか。その後のパウロの世界宣教が苦労なしに進んだのではないのでしょうか。
しかし、神さまはそのようなことはお望みになられ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す。なぜでしょうか。使徒パウロの働きはものすごいものでした。彼は、使徒として神の御言葉を委ねられ、啓示を受けた者であり、そのために神さまから大きな能力を与えられた者であり、いたるところに神の教会を建てた人物です。それにも関わらず、パウロはいつも自分を「罪びとの頭」と言い、「全ての使徒の中で最も小さい者」という謙遜な言葉で自己を表現しました。その謙遜は無駄なものでしょうか。いいえ、パウロは自分がステファノを殺したという経歴を持っていたために、自分がどれほど愚かな人間だったのか、そのことについては確信を持ち、決して誤解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つまり、パウロの失敗は大きなことを成し遂げるために必ず必要であったということです。もし、そのような失敗がなければ、本来イエス様はイスラエルの王として迎え入れられ、そしてローマの皇帝になるべきでしたと、異端の教えを説く学者になる可能性も十分にあったということです。パウロにおいてこのような致命的な過去だけでは十分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神さまはパウロの身にサタンのとげを与えたと言います。パウロはそのとげについて、神に三度取り除いてほしいと懇願しました。パウロが様々な場所に行って、キリストを伝える上で、大きな障害だったからです。そのとげが一体何だったのか、はっきりとは分かりませんが、癲癇持ちだったのでは、と解釈する学者もいます。そのとげが何であったのかははっきりとは分かりませんが、もし、そのような弱点がなければパウロの伝道がさらに素晴らしい伝道になったのに違いないと思われるでしょう。
しかし神の答えは、こうです。「私の恵みはあなたに十分です。弱い時にこそ、神の力が十分に現れるからです。」と言われるのです。パウロはステファノを殺害し、なんと自分が愚かな人間なのか、決して忘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が、それだけでも足らず、神はサタンのとげを与えて、パウロを通して最後の最後まで神の恵みが進行するようにさせることが可能になったのです。私たちの考えでは、もう少し経歴がよくて、とげもなく、健康で、イケメンなら、働きもさらに効果的に進行したに違いないと思われますが、それは人間の考えであり、神のお考えとは異なるということです。神の計画は、神の手と、サタンの手が相働いて、不思議に神の御心が成就していくのです。
創世記を見ますとヤコブの11人目の子として生まれたヨセフが出て来ますが、彼は父親からひいきされ兄たちが羊の世話やら、重労働をしている中で、ヨセフだけはいつも、家に閉じこもって勉強をしたり楽をしていましたから兄たちから、反感を買うようになりました。兄たちは、機会を見つけてヨセフを殺そうとしましたが、直接手を染めることはできないので、通りすがりのミディアンの商人たちに売り飛ばしました。ヨセフはエジプトのファラオの侍従長の家に奴隷として売られましたが、その家で問題が起こると、今度は囚人として監獄につながれました。つまり奴隷として売られ、その後、囚人となってそこで10年以上も壮絶な人生を過ごしました。その後にヨセフはエジプトの首相になりました。ちょうどその時、世界に大飢饉が起こり、カナンに住んでいた自分の家族がエジプトのヨセフの下に助けを求めて来たので、エジプトにイスラエル民族を移住させるという歴史的にも重要な貢献を果たしました。
兄たちは昔、ヨセフを殺そうとしてミディアンの商人に売りましたが、まさかこのような形で再びヨセフに再開するとは夢にも思いませんでした。ヨセフにとっても同じです。自分の壮絶な人生を歩んでいるときに早く奴隷から解放されること、早く監獄から出ること、それ以外には考えられませんでした。しかしエジプトの首相となり、世の貧困を救済し、自分の民族に再開することができたのです。兄弟たちは、ヨセフがまだ恨みを持っているに違いない、自分たちは殺されるだろう、と思っていましたが、創世記50:15-20を見ると、ヨセフには神の永遠のご計画が相働いたという理解に立っているのが分かります。
ヨセフの兄弟たちは、父が死んでしまったので、ヨセフがことによると自分たちをまだ恨み、昔ヨセフにしたすべての悪に仕返しをするのではないかと思った。
そこで、人を介してヨセフに言った。「お父さんは亡くなる前に、こう言っていました。
『お前たちはヨセフにこう言いなさい。確かに、兄たちはお前に悪いことをしたが、どうか兄たちの咎と罪を赦してやってほしい。』お願いです。どうか、あなたの父の神に仕える僕たちの咎を赦してください。」これを聞いて、ヨセフは涙を流した。
やがて、兄たち自身もやって来て、ヨセフの前にひれ伏して、「このとおり、私どもはあなたの僕です」と言うと、
ヨセフは兄たちに言った。「恐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わたしが神に代わることができましょうか。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に悪をたくらみましたが、神はそれを善に変え、多くの民の命を救うために、今日のように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
私たちの信仰生活の上でも、私たちを困らせ、大きな荷物にしか考えられないような妨げがあるかもしれません。経済的な困難、肉体的な持病、健康面での弱さなどそれぞれあるかもしれません。それが何であれ、この世が私たちに有益をもたらそうと近づいてくるのではなく、常に私たちに困難と、病と、貧しさと、失敗を持って私たちに近づいてくることでしょう。しかし、そこに神さまの御心がございます。私たちは現在の状況の中で、神さまの摂理がどのように進行していて、何が準備されつつあるのか知ることはできません。それが何であれ、私たちは落胆させるものであったり、失望させるものであったり、怒りをもたらすもの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結局、それらのことが相働いて、神の御心が成就することを私たちは信じています。なぜ、神さまはこのようにされるのか、それは神のご計画が私たちの考えをはるかに超越されているからです。私たちの神さまは畏れるべきお方であり、讃美を受けるのにふさわしいお方です。神さまは私たちに御子を与えてくださいました。「御子と一緒にすべてのものをわたしたちに賜らないはずがありましょうか。」とパウロは告白しています(ローマ8:32)。ですから、信仰が従順と待望によって私たちが前味を享受した神の御国を完全に相続し、勝利できるようにお祈りいたしましょう。そして、神さまの導かれる奇異な結果を味わうことができる私たちとならせていただきましょう。お祈りいたし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