闇と高ぶり 어둠과 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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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聖書 ヨハネによる福音書 9章35節~41節
9:35イエスは彼が外に追い出されたことをお聞きになった。そして彼に出会うと、「あなたは人の子を信じるか」と言われた。
9:36彼は答えて言った。「主よ、その方はどんな人ですか。その方を信じたいのですが。」
9:37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は、もうその人を見ている。あなたと話しているのが、その人だ。」
9:38彼が、「主よ、信じます」と言って、ひざまずくと、
9:39イエスは言われた。「わたしがこの世に来たのは、裁くためである。こうして、見えない者は見えるようになり、見える者は見えないようになる。」
9:40イエスと一緒に居合わせた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これらのことを聞いて、「我々も見えないということか」と言った。
9:41イエスは言われた。「見えなかったのであれば、罪はなかったであろう。しかし、今、『見える』とあなたたちは言っている。だから、あなたたちの罪は残る。」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ヨハネによる福音書 9章35節~41節
어둠과 교만
2026년 3월 29일 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요한복음 9장 35~41절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라는 말과 함께,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던 그 남자는, 성전에서 쫓겨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다만 「예수라는 분 덕분에, 눈이 보이지 않던 내가 지금은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 간증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유대인들의 분노를 자극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전에서 쫓겨났다」는 사실, 원래부터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 불구를 가졌기 때문에, 어쩌면 처음부터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릴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뒤에 이어지는 문맥에서 말하는 「쫓아냈다」는, 단순히 제사 예배에 참가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공동체로부터 파문당하는 것, 곧 유대인 사회에서 추방·제명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시나고그」라고 불리는 회당에 들어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게 되고, 물품 거래는 물론 사람관계에서도 배제당하는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그 남자는, 종교 지도자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곧바로 몸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쫓겨났다는 소문이 예수님의 귀에까지 미치자, 예수님은 외롭고 고독한 상황에 놓인 이 남자를 다시 찾아주셨습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은 그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장막, 즉 마지막 겉옷을 벗기시려 하십니다. 오늘도 요한복음 말씀을 통해 함께 성령의 은혜에 참여하기를 갈망합니다.
(1) 그가 절하는지라
남자는 모처럼 눈이 보이게 되어서, 이제부터는 남들과 같이 온갖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던 그 순간에, 오히려 성전에서 쫓겨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꿈이 크게 부풀어 오르고 앞날이 시원하게 펼쳐질 것 같았던 그 참에, 그 꿈이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 보면, 이 남자는 오히려 성전 밖으로 쫓겨났기 때문에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던 셈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때 그는 「예수」라는 분의 얼굴을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실로암 못에서 눈을 씻었을 때 이미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떠나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면 꼭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겠지만, 아마도 바쁜 일상의 흐름 속에서 그 생각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어느새 그분을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도 희미해져 버렸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축복은 노력해서 이겨내야 손에 들어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비록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내 인생의 보조 역할을 맡는 조력자이고, 골은 내가 직접 넣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방식으로 우리를 축복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이루어지는 방식은, 우리가 인생의 주도권과 주도적 initiative를 완전히 포기하고, 주님의 앞에 항복할 때, 비로소 주님이 은혜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 깊이 회개하고, 자기 자신에게 죽어,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권 자리에 모셔 들일 때, 그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축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되돌아보면,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하셨을 때도, 역시 자신의 initiative를 내려놓고, 주님 앞에 백기를 들고 항복하신 그때가 아니었습니까? 인생에서 실패와 절망을 경험하던 그 시점에, 오히려 인생의 전환점, 즉 타이닝 포인트를 맞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남자도, 꿈이 무너지고 고독 속에 놓여 있던 바로 그 순간에,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내 주셨고, 또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물어 보셨던 것입니다.
「인자」란,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가리키실 때 즐겨 사용하시던 호칭인데, 이는 곧 다니엘7장에 나오는 그 「인자」, 곧 「메시아」를 의미합니다. 이제 다니엘7:13~14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다니엘 7장
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을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다니엘서의 부분은 종말의 사건으로 믿겨 왔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물으신다는 것은, 곧 「너는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믿느냐」라는 결정적인 질문을 던지고 계신 것입니다. 이 남자도 유대인이었으므로, 「인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세상 끝에 나타나 구원을 가져오실 메시아를 떠올렸음에 틀림없습니다. 이제 9:36~37절을 보시겠습니다.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여기서 그의 대답은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라고 되어 있지만, 즉, 그는 「인자」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품을 지닌 분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과연 누구신지, 어떤 분이신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전에 내 눈을 고쳐 주신 분이 누구신지, 그분을 알고 싶다고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약간 오해하기 쉬우니, 잘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예전에 자신의 눈을 고쳐 주셨던 분이, 바로 지금 자기 앞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와, 지금 서로 마주 보고 말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순간, 그는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고 말하며 절을 했습니다. 여기서 「절하는지라」는 말은, 곧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worship」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때 이 남자는 유대교적 신앙을 넘어, 그리스도교적 신앙으로 나아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만 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구약의 신앙 체계에서, 영과 진리로 어디에서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신약의 신앙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이전에는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의 지도를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전통적인 구조 속에 있었는데, 이제는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새로운 구조에 들어선 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예배를 기쁘게 받아 주셨습니다.
(2)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이제 다시 바리새인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게 된 이 남자가, 바로 그 바리새인들 앞에서 예수님을 예배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아마 39절부터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장면이 바뀌어,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말씀하신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39절을 보시겠습니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처음 들으면 요한 3:17절과 모순되는 것처럼 들립니다. 3:17절을 보시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구원의 말씀이 오히려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빛의 오심에 비유됩니다. 빛은 어둠을 비춥니다. 어둠 속에 있던 사람이 그 빛을 받아들여 해방되고, 빛 안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그 빛을 거부하는 사람은 오히려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우리도 맹인인가」라고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는 맹인이 아니다」, 「우리는 랍비에게서 특별한 교육을 받았다」, 「우리는 일반 대중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다음처럼 말씀하십니다. 41절입니다.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맹인」이라는 말씀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눈이 어두운 상태가 아니라, 어둠 속에 있는 상태, 곧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적 눈먼 상태를 가리킵니다. 원래 아담이 죄를 범하기 전에는, 인간은 이런 어둠 속이나 영적 시각장애 상태에 놓여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인간은 어둠과 영적 맹목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인간은 그 죄로 인해 오류와 거짓, 공포와 수치, 질투와 인생의 비참함을 스스로 안으로 끌어들이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이 타락한 결과로 죄의 종, 죄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타락한 상태를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로마서 1장 21절입니다.
로마서 1장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라고 말씀하신 뜻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너희가 스스로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당연히 의사를 찾아가 치료를 받으려 했을 것이다.」 「만약 너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스스로 죄인이며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인정했다면,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즉, 예수님은 그들이 영적으로 맹인인 상태를 스스로 무시하고, 오히려 「우리는 맹인이 아니다」라고 자처하는 것이 문제라고 보시는 것입니다. 이제 영혼의 의사되신 예수님께서 죄를 없애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처럼 우월감에 빠져 「우리는 맹인이 아니다」라고 외치면, 그 말은 곧 자신의 죄 안에 머물러 어둠 속에, 영적 맹목 상태에 계속 머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자가 눈이 보이게 되려면, 영혼의 의사이신 메시아, 주 예수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의 용서를 받고, 아버지 하나님과 화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인간이 이 의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모든 사람들이 그 길을 걸어오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디모데전서 2:4절을 보십시오.
디모데전서 2장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 말씀은, 영혼의 어둠과 죄의 구속에서 빠져나오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주 예수님을 믿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완고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러한 사람들이 머물러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조금 전의 39절에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이 말씀은 심판하는 것 자체가 주목적이 아니라, 빛으로 말미암아 가져오는 구원과 죄 사함을 완고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신 것이며,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내릴 것임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믿는 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태도는 「겸손」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의 판단이 옳다고 여겼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맹인인가」 하고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 이는 겸손과 정반대의 태도입니다. 교만한 태도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도자라는 위치에 있더라도, 예수님의 외모가 젊고 미숙해 보여,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렵더라도, 지식 면에서 자신이 우월하다고 느꼈더라도, 예수님 말씀의 뒤에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인정하고 겸손해져서 「아~ 나는 영적으로 맹인이었구나」「나에게도 부족한 것이 있었구나」 하고, 주 예수의 말씀에 마음을 열어 회개하는 것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적용
여러분의 일상의 신앙 생활을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일상의 신앙 생활 속에서 겸손의 열매가 결실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교만한 태도나 교만한 생각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습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노력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보다 지식이 많았기 때문도,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것을 이루었기 때문도, 다른 사람보다 나이를 먹고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연약했기 때문이며, 우리가 외로웠고, 타고난 눈먼 자로서 주님 앞에 완전히 백기를 들고 항복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보게 되었고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그 사실을 항상 잊지 말고,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든지 양보하여 낮아지고 상대를 자기보다 나은 자로 여기도록 합시다. 일상의 신앙 생활 속에서, 내 마음의 왕좌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 과거의 나는 이미 죽고 주 예수께서 우리 마음 안에 살아계심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함께 세우고 함께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도록 합시다.
【序】
「お前は全く罪の中に生まれたのに、我々に教えようというのか!」。この言葉と共に、生まれつき目が見えなかった男は神殿から追い出されてしまいました。彼は、ただ「イエスというお方によって目が見えなかった自分が、今は見えるようになった」ということを証ししただけでありました。しかしそれが、ユダヤ人たちの逆鱗に触れてしまったのです。「神殿から追い出される」ということでありますが、そもそも生まれつき目が見えないという障碍を持っていたため、最初から神殿への立ち入りを禁じられていたはずだと指摘する人もいますが、ここで語られている「追放」とは、共同体から破門されるということ、ユダヤ人社会から除名されるということを意味しました。つまり、神殿で犠牲を捧げることができないだけではなく、シナゴーグと呼ばれた会堂に入ることも許されず、物品の取引や、人間関係からも排除されてしまうということです。生まれつき目が見えなかった男は、宗教指導者の権威に逆らうということが、どれほど恐ろしいことなのか、身を持って知らされました。この追放のうわさがイエス様の耳にも入ると、イエス様は、寂しく孤独な状況に置かれたこの男を、再び見つけ出してくださいました。今や、この男を覆っている最後のベールをはがそうとされているのです。本日もヨハネによる福音書を通して共に御言葉の恵みに与りたいと願います。
【1】. ひざまずき礼拝する
男はせっかく目が見えるようになり、これからは人並みにいろんな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と思っていたその矢先に、神殿から追い出されるという仕打ちを受けてしまいました。夢が大きく膨らみ、前途洋々としていたところで、その夢が潰えてしまったのです。しかし、考え方によれば、実際、この男はむしろ外に追い出されたために、キリスト者になったと言えるのかもしれません。この時点で、彼はイエスというお方の顔を知りませんでした。なぜならシロアムの池で目を洗った時には、もう既にイエス様は立ち去っておられたからです。もし、そのお方の身元が分かればお礼を言わなくちゃっと思いながらも、おそらく目まぐるしい毎日の歩みの中で、そのことは後回しになり、そのうちにその方とお会いしたいという気持ちも消えてしまったことでしょう。
もしかしたら、私たちは、誰であれ「祝福は努力して勝ち取るもの」という考えを心のどこかで持っているのだと思います。たとえイエス様を信じている人であっても、神様が自分の人生のアシスト役だと考えていて、シュートは俺が打つというふうに考えている節があ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しかし神様はそのような仕方で、私たちを祝福されるのではありません。神様の祝福の仕方とは、私たちが人生の主導権、イニシアティブを完全に放棄し、主の御前に降参する時に、初めて主が恵みによって私たちを導いてくださいます。私たちが心から悔い改め、自分自身に死んで、イエス様を心の王座に迎え入れる時に、初めて神様の真の祝福は始まるのです。振り返ってみれば、皆様がイエス様を受け入れた時も、やはり自分のイニシアティブを放棄し、主の御前に白旗を挙げて、降参した時ではなかったでしょうか。人生において挫折や絶望を経験していた時、まさにそのような時に人生のターニングポイントを迎えたのだと思います。この男も、夢が破れ孤独の中に置かれていたまさにそんな時に、人生のターニングポイントが訪れました。イエス様が彼を見つけ出してくださり、そして「あなたは人の子を信じるか」と問いかけてくださったのです。
「人の子」とは、イエス様が御自身を指して言う時に好んで用いた呼称でありますが、「人の子」とは、ダニエル書7章に出てくる、あの「人の子」すなわちメシアを意味していました。ダニエル書7:13~14節をご覧ください。
“夜の幻をなお見ていると、/見よ、「人の子」のような者が天の雲に乗り/「日の老いたる者」の前に来て、そのもとに進み 権威、威光、王権を受けた。諸国、諸族、諸言語の民は皆、彼に仕え/彼の支配はとこしえに続き/その統治は滅びることがない。”
ダニエル書のこの個所は終末の出来事として信じられていました。従って、イエス様が「あなたは人の子を信じるか」と問いかけた時、「あなたはメシア・キリストを信じるか」という決定的な問いが投げかけられているのです。彼も、ユダヤ人ですから「人の子」と聞いた時、世の終わりに現れて救いをもたらしてくださるメシアを思い浮かべたに違いないのであります。9:36~37節をご覧ください。
“彼は答えて言った。「主よ、その方はどんな人ですか。その方を信じたいのですが。」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は、もうその人を見ている。あなたと話しているのが、その人だ。」”
ここで彼の答えは「主よ、その方はどんな人ですか」と言っていますが、新改訳聖書や、新しく出た聖書協会共同訳では、「主よ、それはどなたですか」となっています。つまり、彼は人の子についてどんな人なのかと聞いているのではなく、誰であるのかを聞いているのです。自分の目を癒してくださった方が誰なのか、その方を知りたいと、切に願っているのです。ここの箇所は少し誤解しやすいので、ご注意ください。
するとイエス様は「今あなたと話しているのが、その人だ」と言われました。彼はかつて自分の目を癒してくださった方が、今、目の前におられるということを知ったのです。そして、肉をお取りになった神の御子メシアと、自分が今対面しているということを悟りました。その瞬間、彼は「主よ、信じます」と言ってひざまずいたのであります。「ひざまずく」とは、礼拝するという意味です。英語の聖書ではworship と翻訳されています。この時、彼はユダヤ的信仰から脱却し、キリスト教的信仰へと進んで行ったと言う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言い換えれば、エルサレムにある神殿においてのみ礼拝を捧げることができる旧約の信仰から、霊とまことによってどこででも礼拝を捧げることができる新約の信仰へ移行したということです。これまで祭司やファリサイ人の指導を仰ぎつつ、神を礼拝するという伝統的な体系から、人となって来られた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神を礼拝するという新しい体系へ移行したということです。イエス様は彼の礼拝を喜んでお受けになられました。
【2】. 『見える』とあなたたちは言っている。だから、あなたたちの罪は残る
さて、この後ファリサイ派の人々が再び登場いたします。しかし、イエス様を信じたこの男が、ファリサイ派の人々の手前でイエス様を礼拝したということは考えにくいので、恐らくこの39節から書かれているイエス様のお言葉は、場面が変わり、少し後になってから語られた可能性があります。39節をご覧ください。
“イエスは言われた。「わたしがこの世に来たのは、裁くためである。こうして、見えない者は見えるようになり、見える者は見えないようになる。」”
イエス様は「わたしがこの世に来たのは、裁くためである」と語っておられます。これは、一見するとヨハネ3:17の御言葉と矛盾するように聞こえてまいります。3:17をご覧ください。
“神が御子を世に遣わされたのは、世を裁くためではなく、御子によって世が救われるためである。”
イエス様は確かに御自身によって世が救われるために来たのでありますが、イエス様にある救いを受け取ろうとしない人々にとっては、逆にそれが裁きになるということを意味しているのです。イエス様の到来は、光の到来に譬えられます。光は闇を照らします。闇の中にいた者は、その光を受け入れ、解放されて、光の中に入れられるということが起こりますけれども、しかしその光を拒む者は、より深い闇の中へ入って行くのであります。イエス様のお言葉を聞いた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異議を唱えました。「我々も見えないということか!」。つまり「我々は盲目ではない」、「我々はラビのもとで特別な教育を受けてきた」、「我々は一般の群衆よりもはるかに多くの知識を持っている」と主張しているのです。するとイエス様は次のように言われました。41節です。
“イエスは言われた。「見えなかったのであれば、罪はなかったであろう。しかし、今、『見える』とあなたたちは言っている。だから、あなたたちの罪は残る。」”
ここで、イエス様の言われる「見えない」とはどういう意味でしょうか。見えないとは、闇の状態を指し、神様を知らない霊的な盲目状態を意味しています。本来アダムが罪を犯す前、人間は、闇の状態、霊的な盲目状態にはありませんでした。ところがアダムが罪を犯したことによって、神様との関係が断絶し、闇と霊的な盲目状態に陥ってしまいました。それだけではありません。誤り、偽り、恐怖、恥、嫉妬、人生の悲惨などを自らに呼び込んでしまったのです。一言で言えば、人間は堕落したことによって罪の奴隷となってしまったのです。パウロはそのような人間の堕落した状態を、次のように説明しています。ローマ1:21をご覧ください。
“なぜなら、神を知りながら、神としてあがめることも感謝することもせず、かえって、むなしい思いにふけり、心が鈍く暗くなったからです。”
ですから、イエス様が「見えなかったのであれば、罪はなかったであろう」と言われたその意味は、「もしあなた方が、自分が目の見えないことに気づいていたなら、医者のもとに走ったであろう」、「もしあなた方が神との断絶を認め、自分が罪人であり滅びて当然の者であ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れば、イエス様にある神の国の福音を受け入れただろう」という意味でございます。今や、魂の医者であられるイエス様が罪を取り除くためにこの世に来てくださいました。ところが、ファリサイ派の人々のように優越感に浸り「我々は見える」と言い張るならば、それは即ち、自らの罪のうちに残留することであり、闇の状態、霊的な盲目状態の中に残留することを意味するのです。見えない者が見えるようになるためには、魂の医者であるメシア、主イエスを求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罪を赦していただくために、父なる神と和解するために、人間は全て、この医者であられるイエス様のもとに走っ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そして父なる神もすべての人々に対し、そうすることを願っておられます。1テモテ2:4をご覧ください。
“神は、すべての人々が救われて真理を知るようになることを望んでおられます。”
神は全ての人々が、救い主イエス様を信じるようになることを望んでおられます。しかし、頑なにイエス様を拒絶する人々がいて、そのような人々が留まっているところがまさに神の審判が下るところなのであります。ですから先ほどの39節の「わたしがこの世に来たのは、裁くためである」とありましたが、この言葉は、審判することそれ自体が主目的になっているわけではなくて、光によってもたらされる救いと罪の赦しを、頑なに拒絶する人々に対し、警告しておられるということです。最後には神の審判が下るだろう、そのように警告しておられるのです。このように考えてみると、信じる者たちにおいて、自然に現れてくる態度とは「謙遜」なんだと思います。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イエス様が語られる御言葉より、自分たちの判断が正しいと考えていました。自分たちの考えが正しいと考えていました。そして「我々も見えないということか」と異議を唱えたのであります。これは謙遜とは正反対の態度ですね。高ぶった態度です。信じない人々の典型的な態度であると言えるでしょう。たとえ、指導者という立場にあっても、その言葉を受け入れるのが難しいほど、イエス様の外見が年若く、未熟者に見えたとしても、たとえ知識面で自分の方が優越感を持ってしまったとしても、御言葉の背後に神様が働いていることを認めて、謙遜になり、「あ~自分は霊的に盲目だったな」「自分にも足りない所があったな」と、主イエスの御言葉に心を開いて悔い改めることが求められているのであります。
【適用】
皆様の日々の信仰生活を振り返ってみてどうでしょうか。日々の信仰生活の中で謙遜の実が結ばれているでしょうか。それとも高ぶった態度や高ぶった考え方がところどころに表れてしまうでしょうか。私たちが救われたのは、私たちが何か人より努力したからではありませんね。人より知識を持っていたから、人より多くのことを成し遂げたから、人より年を重ね、経験豊かだから救われたのではありません。むしろ、私たちが弱かったため、私たちが孤独で、生まれつき目が見えず、主の御前に完全に白旗を上げ、降参したために、今では見えるようになり、罪の奴隷から解放されたのです。そのことを常に忘れず、私たちは、どのような人に対しても遜って低くなり、相手を自分よりも優れた者と考えるようにいたしましょう。日々の信仰生活の中で、私の心の王座にイエス様を迎え入れること、過去の自分は既に死んで主イエスが私たちの心の中に生きておられること、そのことを黙想しながら、私たちはキリストの体である教会を共に立て上げ、共にイエス様の御言葉に従順していく者たちとならせていただきま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