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っているただ一つのこと 한 가지 아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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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説教
-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ヨハネによる福音書 9章13節~34節
9:13人々は、前に盲人であった人をファリサイ派の人々のところへ連れて行った。
9:14イエスが土をこねてその目を開けられたのは、安息日のことであった。
9:15そこで、ファリサイ派の人々も、どうして見えるようになったのかと尋ねた。彼は言った。「あの方が、わたしの目にこねた土を塗りました。そして、わたしが洗うと、見え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
9:16ファリサイ派の人々の中には、「その人は、安息日を守らないから、神のもとから来た者ではない」と言う者もいれば、「どうして罪のある人間が、こんなしるしを行うことができるだろうか」と言う者もいた。こうして、彼らの間で意見が分かれた。
9:17そこで、人々は盲人であった人に再び言った。「目を開けてくれたということだが、いったい、お前はあの人をどう思うのか。」彼は「あの方は預言者です」と言った。
9:18それでも、ユダヤ人たちはこの人について、盲人であったのに目が見えるようになったということを信じなかった。ついに、目が見えるようになった人の両親を呼び出して、
9:19尋ねた。「この者はあなたたちの息子で、生まれつき目が見えなかったと言うのか。それが、どうして今は目が見えるのか。」
9:20両親は答えて言った。「これがわたしどもの息子で、生まれつき目が見えなかったことは知っています。
9:21しかし、どうして今、目が見えるようになったかは、分かりません。だれが目を開けてくれたのかも、わたしどもは分かりません。本人にお聞きください。もう大人ですから、自分のことは自分で話すでしょう。」
9:22両親がこう言ったのは、ユダヤ人たちを恐れていたからである。ユダヤ人たちは既に、イエスをメシアであると公に言い表す者がいれば、会堂から追放すると決めていたのである。
9:23両親が、「もう大人ですから、本人にお聞きください」と言ったのは、そのためである。
9:24さて、ユダヤ人たちは、盲人であった人をもう一度呼び出して言った。「神の前で正直に答えなさい。わたしたちは、あの者が罪ある人間だと知っているのだ。」
9:25彼は答えた。「あの方が罪人かどうか、わたしには分かりません。ただ一つ知っているのは、目の見えなかったわたしが、今は見えるということです。」
9:26すると、彼らは言った。「あの者はお前にどんなことをしたのか。お前の目をどうやって開けたのか。」
9:27彼は答えた。「もうお話ししたのに、聞いてくださいませんでした。なぜまた、聞こうとなさるのですか。あなたがたもあの方の弟子になりたいのですか。」
9:28そこで、彼らはののしって言った。「お前はあの者の弟子だが、我々はモーセの弟子だ。
9:29我々は、神がモーセに語られたことは知っているが、あの者がどこから来たのかは知らない。」
9:30彼は答えて言った。「あの方がどこから来られたか、あなたがたがご存じないとは、実に不思議です。あの方は、わたしの目を開けてくださったのに。
9:31神は罪人の言うことはお聞きにならないと、わたしたちは承知しています。しかし、神をあがめ、その御心を行う人の言うことは、お聞きになります。
9:32生まれつき目が見えなかった者の目を開けた人がいるということなど、これまで一度も聞いたことがありません。
9:33あの方が神のもとから来られたのでなければ、何もおできにならなかったはずです。」
9:34彼らは、「お前は全く罪の中に生まれたのに、我々に教えようというのか」と言い返し、彼を外に追い出した。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ヨハネによる福音書 9章13節~34節
한 가지 아는 것은
2026년 3월 22일 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요한복음 9장 13~34절
날 때부터 맹인 되었던, 사람의 눈이 열리는 엄청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기적을 목격한 이웃들은, 예전에 눈이 보이지 않던 그를 바리새인들의 앞으로 데려갔습니다. 왜 바리새인들의 앞으로 데려갔느냐 하면, 당시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었기에, 이 기이한 사건에 대해 그들이 파악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소식이 바리새인들의 귀에 들어가자, 바리새인들 사이에서도 의견 대립이 일어났습니다. 즉, 이 일이 안식일에 일어났기 때문에 이 기적을 행한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고 비난하는, 이른바「체제 유지파」와, 도대체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의견이 나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세 차례에 걸쳐 관계자들과 면담을 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는 날 때부터 맹인되었던 사람이었다가, 보게 된 당사자와, 두 번째는 그의 부모와, 그리고 세 번째는 다시 그 당사자와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이 면담을 통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냉정하게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고백으로 이끌려 가게 됩니다. 오늘도 요한복음 9장을 통해, 함께 말씀의 은혜를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1) 권위의 오용
바리새파의 체제 유지파 사람들은 안식일에 치유를 행한 것을 왜 문제 삼았을까요?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시행 규칙으로서「조상들의 전통」이라는 것을 만들어 이를 엄격히 준수하고 있었습니다. 십계명의 넷째 계명에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죠. 이를 구체적인 시행 규칙으로 삼아, 안식일의 금지 사항을 39가지로 정해 두었습니다. 그중에는 예를 들어 900미터 이상 걸어서는 안 된다거나, 물건을 운반해서는 안 된다는 것 등이 있지만, 「반죽하다」라는 것도 있어서, 예수님께서 진흙을 이겨서, 날 때부터 맹인되었던 사람에게 바르신 행위가 율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예수님께서는 왜 굳이 안식일에 파문을 일으킬 만한 일을 하셨을까요? 종교 개혁자 칼뱅은, 예수님께서 굳이 안식일에 이 기적을 행하셨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적대자들의 악의에 찬 완고함을 부각시키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불화, 불일치, 분열이 일어나는 것은 탄식할 만한 일이며 해악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혹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조금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그 완고함에 대해, 불화, 불일치, 분열이 때로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통에 집착하거나 현상 유지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불화, 불일치, 분열을 직면하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만일 그러한 불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반드시 마음을 열고 그 문제의 근원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 16~18절 중간까지 읽어보십시오.
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17 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선지자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주 예수님을 지지하는 편에 섰다는 뜻입니다.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 지도자들은 다음으로 그의 부모와 면담하게 되는데, 18절 서두에서는, 「바리새인 중에」라는 말이 갑자기 「유대인들」이라는 말로 바뀌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유대인」이라는 말에는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완고한 백성」, 「빛을 믿지 않는 백성」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부모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모는 미묘한 대답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예수라는 사람을 미워하고 있었고, 만약 예수의 편에 서면, 자신들에게 해가 미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이 2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십시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유대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출교ἀποσυνάγωγος」라는 헬라어는, 성경에서 이 구절과 12:42, 16:2에만 등장하는 매우 드문 단어입니다. 그 의미는 공동체에서 파문당하거나, 유대 사회에서 제명된다는 뜻으로, 매우 엄중한 처분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부모는, 그가 자신들의 아들이며 날 때부터 맹인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기꺼이 증언했지만,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라고 얼버무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유대인들은 다시 그 사람을 불러냈습니다. 24절입니다.
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빌리면서, 사실상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투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용어로 말하자면「권력형 갑질」이겠지요. 종교 지도자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권위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사례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폐쇄적으로 변하고, 결국 사람들은 두려움과 불안 속에 떨게 됩니다. 지도적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는 「권위」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발생하지만, 그 권위를 잘못된 형태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섬기고 모범을 보임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일본 그리스도 개혁파 교회는 지난 10월에 개최된 정기 대회에서 「안심할 수 있는 교회를 위한 지침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해~」를 채택했습니다. 우리 일본 그리스도 개혁파 교회는 아직 성장 중인 공동체이지만, 결코 권위를 오용하지 않고, 공동체 전체가 열린 마음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무리가 될 수 있도록, 안심할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2) 한 가지 아는 것은
그런데, 시력을 되찾은 본인은 이러한 협박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권력자에게 아부하거나, 자신의 고백을 번복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면 유대인들의「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그는 매일 「너나 네 부모가 뭔가 죄를 지었기에, 네가 이렇게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태어난 것이다」라는 설명을 사람들로부터 몇 번이고 들어왔을 테니까요. 인과응보의 사고방식입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그런 설명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무엇이 하나님 앞에서 죄였는지, 부모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어떤 죄를 지었기에,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는지, 도저히 그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겉모습이나 소문만으로 결코 그 사람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고 싶지 않다!」는 신념이 그 안에 형성되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협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대담하게 증언했습니다. 25~27절을 보십시오.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26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유대인들은 눈이 떠졌다는 사실 자체, 즉 눈이 떠진 기적 자체에 대해서는 인정했지만, 그것이 과연 어떻게 일어났는지, 다시 말해 그 과정에서 안식일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닌지 집요하게 추궁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완고함에 어이없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니까」라고 비꼬는 투로 말했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한 것은 그들이 조바심을 냈기 때문입니다. 즉, 어떻게든 힘으로 억누르려 했으나, 이 남자는 자유롭고 대담하게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남자를 욕하며 말했습니다. 28절입니다.
28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이처럼 비난을 받자, 그 남자는 더욱 대담해졌습니다. 그는「이상하다」라고 지적합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 그것은 바로 유대인들이 이 남자에게 일어난 사실 그 자체, 기적 그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지극히 무지하고 지극히 불신앙적이었다는 점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던 자신이, 이제는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이 단 한 가지 사실밖에 모르는 그 남자는, 삼단논법을 통해 그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했습니다. 31~33절을 보십시오.
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이 삼단논법의 대전제가 되는「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신다」는 가르침은 구약성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욥기 35:12~13을 살펴보십시오.
욥기 35장
12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13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계속해서, 잠언 15:2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잠언 15장
29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오직 한 가지만 아는 이 남자는, 종교 지도자이자 학식이 있다고 여겨지는 바리새인들에게, 왜 이 삼단논법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의아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자는 보게 되고, 보이는 자는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쫓겨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며 자유로웠습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 실제로 자신의 삶이 변화했다는, 흔들 수 없는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가 알고 있는 오직 한 가지, 이 사실을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지식보다, 하나님께 받은 단 하나의 은혜가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신학을 배우는 것은 성경을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하는 데 중요하지만, 전도에 사용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간증의 말씀입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이 남자는, 죄인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지난번에 말씀드렸지만, 우리의 전도, 우리의 간증이라는 것도 그와 같이, 단 한 가지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한 가지,「나는 예전에 눈이 멀었으나 지금은 볼 수 있다」는 것, 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을 친구들에게도,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계속해서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전도이며 우리의 간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묵상하고, 그 은혜로 인해 우리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인생에 확실히 개입해 주신 하나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의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종교 지도자인 바리새인들과, 자신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은혜를 담대히 증언하다가, 쫓겨나 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서는 반드시, 권위를 오용하여 사람을 쫓아내는 쪽이 자유롭고, 쫓겨나는 쪽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권위를 오용하는 자에게는, 폐쇄적인 두려움과 불안이 사람들을 따라다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증언할 때, 그 남자는 오히려, 더욱 담대함과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간증은, 우리 교회의 전도 그 자체입니다. 「나는 한때 눈이 멀었으나, 이제는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우리도 담대하게 간증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더욱 풍성하게 개입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序】
生まれつき目の見えない人の目が開かれるという途方もない奇跡が起こりました。その奇跡に居合わせた隣人たちは、かつて目が見えなかった彼をファリサイ派の人々の所に連れて行きました。なぜファリサイ派の人々の所へ連れて行ったのかと言うと、当時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イスラエルの宗教指導者であり、この奇妙な出来事について把握してもらう必要があると感じたからでありましょう。この出来事がファリサイ派の耳に入るとファリサイ派の人々の間にも意見の対立が起こりました。即ち、これが安息日に起こったため、この奇跡を起こした人は罪人だと非難する、言わば「体制維持派の人々」と、どうして罪ある人がこんなしるしを行うことができるだろうかと言う「開かれた心を持っている人々」とに意見が別れたのであります。そこで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三度に渡って関係者に対し面談をすることにいたしました。一回目は目の見えない人が見えるようなった本人と、二回目は彼の両親と、そして三回目は再びその本人と面談を行いました。この面談を通して、生まれつき目の見えなかった彼は自分自身に起こった出来事について冷静になって振り返る事になります。そしてどうしても譲ることのできない告白へと導かれて行きます。本日もヨハネの福音書9章から、共に御言葉の恵みに与りたいと願います。
【1】. 権威の誤用
ファリサイ派の体制維持派の人々は安息日に癒しを行ったことを、なぜ問題視したのでしょうか。彼らはモーセの律法をきちんと守るために、施行細則として「先祖の言い伝え」なるものを作ってそれをきちんと守っていました。十戒の第四戒に「安息日にはいかなる仕事もしてはならない」とありますね。それを具体的に施行細則として、安息日の禁止事項を39項目、定めていました。その中には例えば900メートル以上歩いてはならないとか、物を運んではならないなどありますが、「こねる」というのもありまして、イエス様が泥をこねて生まれつき目の見えない男に塗った行為が律法違反に当たると言うのです。しかしそれにしても、イエス様はなぜ、あえて安息日に波風が立つようなことをされたのでしょうか。宗教改革者のカルヴァンは、イエス様はあえて安息日にこの奇跡を行ったに違いないと主張します。そうすることによって、敵対者たちの悪意に満ちた頑なさを浮き彫りにしようとされたというのです。教会の中で不和、不一致、分裂が起こることは、嘆かわしいことであり、害悪であります。しかし、今日においても、神様の御心を行うこと、あるいは神様のもとに来ることを少しも望まない人たちの、その頑なさに対して、不和、不一致、分裂が、時として生じるということがあるのです。伝統に固執したり、現状維持を求めたりする人々に対して、不和、不一致、分裂を突きつけざるを得ないという状況も起こるのであります。私たちの教会の中で万一、そのような不和が生じるのを見た時には、私たちは必ず心を開いて、その問題の源を見極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して神様の導きに従順することを第一と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ります。16~18節の途中までご覧ください。
“ファリサイ派の人々の中には、「その人は、安息日を守らないから、神のもとから来た者ではない」と言う者もいれば、「どうして罪のある人間が、こんなしるしを行うことができるだろうか」と言う者もいた。こうして、彼らの間で意見が分かれた。そこで、人々は盲人であった人に再び言った。「目を開けてくれたということだが、いったい、お前はあの人をどう思うのか。」彼は「あの方は預言者です」と言った。それでも、ユダヤ人たちはこの人について、盲人であったのに目が見えるようになったということを信じなかった。”
「いったい、あの人をどう思うのか」という質問に、彼はためらうことなく「預言者です」と答えました。彼は主イエスを支持する側に回ったということです。彼の言うことを信じようとしない指導者たちは、次に彼の両親と面談することになりますが、18節の冒頭で「ファリサイ派の人々」という言葉が、突然「ユダヤ人」という言葉に置き換えられています。ヨハネの福音書の中では「ユダヤ人」という言葉の中に、「現体制を維持しようとする頑な民」、「光を信じない民」という意味合いが込められているのです。
ユダヤ人たちは両親に尋ねました。すると両親は、微妙な答え方をしました。なぜなら、ユダヤ人たちがイエスという男を憎んでいて、もしイエスの側に立つなら自分たちに危害が及ぶ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たからです。そのことが、22節に書かれています。ご覧ください。
“両親がこう言ったのは、ユダヤ人たちを恐れていたからである。ユダヤ人たちは既に、イエスをメシアであると公に言い表す者がいれば、会堂から追放すると決めていたのである。”
ユダヤ人たちはイエスをメシアであると告白する者がいれば、会堂から追放することを決めていました。「追放ἀποσυνάγωγος」というギリシア語の言葉は、聖書の中でこの個所と、12:42、16:2にしか出てこない大変珍しい言葉です。その意味は、共同体から破門される、或いはユダヤの社会から除名されるという意味であり、大変厳しい処置でありました。そのため、両親は彼が自分たちの息子であり、生まれつき盲目であったことについては喜んで証言するものの、「彼がどのようにして目が見えるようになったのかについては、分からない。彼はもう大人ですから、自分のことは自分で話すでしょう」と、お茶を濁したのでありました。しょうがなくユダヤ人たちは、再び本人を呼び出しました。24節です。
“さて、ユダヤ人たちは、盲人であった人をもう一度呼び出して言った。「神の前で正直に答えなさい。わたしたちは、あの者が罪ある人間だと知っているのだ。」”
これは、神の名を用いながら、ほとんど脅迫しているのと変わらない言い方だと思います。今風に言えばパワハラですね。宗教指導者たちが既に持っている権威を、誤って使用しているケースです。こうなると、社会は閉鎖的になり、いよいよ人々は恐れと不安の中で怯えるようになっていきます。指導的な立場にある人には、「権威」というものが自然に発生いたしますが、その権威を誤った形で用いて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むしろ人々に仕え、模範を見せることによって、神様に栄光を帰すべきであります。日本キリスト改革派教会では先の10月に開催された定期大会において、「安心できる教会のための指針~ハラスメントを防止するために~」が採択されました。私たち日本キリスト改革派教会は、いまだ途上にある者たちでありますが、決して権威を誤用することなく、共同体全体が開かれた心で主の導きに従って行く群れとなるよう、安心できる教会形成をしてまいりたいと願います。
【2】. 知っているただ一つのこと
さて、目が見えるようになった本人は、この脅迫に対し屈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彼は権威者におもねったり、或いは自分の告白を曲げたりすることもしませんでした。もしかしたらユダヤ人たちの「あの者が罪ある人間だと知っているのだ」という言葉に、敏感に反応したのかもしれません。と言いますのは、生まれつき目の見えない彼は、日々「あなたか、あなたの両親が何か罪を犯したから、あなたは、このように目が見えない状態で生まれてきたのだ」という説明を、人々から何度も聞かされ続けてきたはずだからです。因果応報の考え方です。しかし当の本人にとっては、そのような説明はどうしても納得がいかなかったことでしょう。自分の何が、神の前に罪であったのか、自分の両親の何が、他の人々に比べて、生まれつき目が見えなくなるほどの罪に該当したのか、どうしてもそのことに納得できなかったのだと思います。ですから、人の外見や、噂だけで決してその人に罪があるかどうかを判断したくない!というような信念が彼の中に形成されていったに違いないのであります。その上で、彼は脅迫を恐れることなく、自分自身に起こったことを大胆に証言しました。25~27節をご覧ください。
“彼は答えた。「あの方が罪人かどうか、わたしには分かりません。ただ一つ知っているのは、目の見えなかったわたしが、今は見えるということです。」すると、彼らは言った。「あの者はお前にどんなことをしたのか。お前の目をどうやって開けたのか。」彼は答えた。「もうお話ししたのに、聞いてくださいませんでした。なぜまた、聞こうとなさるのですか。あなたがたもあの方の弟子になりたいのですか。」”
ユダヤ人たちは、目が開かれたという事実そのもの、目が開かれたという奇跡そのものについては譲歩したものの、それが果たしてどのように起こったのか、つまり、そのプロセスにおいて安息日規定を破っていたのではないのかと、しつこく詰問しています。それに対して、彼は「なぜまた、同じことを聞こうとなさるのですか」と答えました。ユダヤ人たちの頑なさにあきれているのです。そして、「あなたがたもあの方の弟子になりたいのですか」と皮肉を込めて語りました。勿論ユダヤ人たちはイエス様の弟子になりたいという思いは毛頭ありません。何度も同じことを質問したのは、彼らが焦っていたからです。つまり、何とか力で抑え込もうとしたのですが、この男は自由に、大胆にキリストを証しすることを止めなかったからです。ユダヤ人は男を罵って言いました。28節です。
“お前はあの者の弟子だが、我々はモーセの弟子だ。我々は、神がモーセに語られたことは知っているが、あの者がどこから来たのかは知らない。”
このように罵られると、男はさらに大胆になって行きました。男は「実に不思議なことがある」と指摘します。実に不思議なこと、それは、まずユダヤ人たちは、この男に起こった事実それ自体、奇跡それ自体は認めていながら、それにも拘わらずイエスという男について極めて無知であり、極めて不信仰であったという点であります。目の見えなかった自分が、今は見えるという、このただ一つのことしか知らない男は、三段論法によって、彼らに分かりやすく説明しました。31~33節をご覧ください。
“神は罪人の言うことはお聞きにならないと、わたしたちは承知しています。しかし、神をあがめ、その御心を行う人の言うことは、お聞きになります。生まれつき目が見えなかった者の目を開けた人がいるということなど、これまで一度も聞いたことがありません。あの方が神のもとから来られたのでなければ、何もおできにならなかったはずです。”
この三段論法で大前提となっている、「神は罪人の言うことはお聞きにならない。しかし、神をあがめ、その御心を行う人の言うことはお聞きになる」という教えは、旧約聖書のいたるところに見受けられます。その中で、二つほど例として上げさせていただきます。ヨブ記35:12~13(聖書協会共同訳)をご覧ください。
“彼らはそこで叫ぶが/悪人の高慢を前にして、神は答えない。神は空しい叫びを聞き入れず/全能者はそれを顧みることはない。”
続いて、箴言15:29をご覧ください。
“主は逆らう者に遠くいますが/従う者の祈りを聞いてくださる。”
ただ一つのことしか知らない男は、宗教指導者であり、学識があると見做されているファリサイ派の人々に、なぜこの三段論法を理解できないのか、不思議なことだと言っているのです。このようにして、見えない者が見えるようにされ、見える者が見えなくなるのであります。
結局、彼は、破門されること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が、それにも拘わらず、彼は恐れることなく、大胆であり、そして自由でありました。一体なぜでしょうか。それは、神様から恵みを受けて、実際に自分の生活が変化したという、動かしがたい事実があったからではないでしょうか。彼が知っているただ一つのこと、この事実を否定しようにも否定できなかったからです。多くの知識よりも、神様から受けた、ただ一つの恵みが、キリストの真の弟子に至らせるのであります。勿論、神学を学ぶことは聖書を色々な面から理解する上で重要でありますが、伝道に用いられるのは、何と言ってもお一人おひとりの証しの言葉であります。生まれつき目の見えないこの男は、罪人のモデルケースであると前回申しましたが、私たちの伝道、私たちの証しというものも、彼のようにただ一つのことを知ることなのだと思います。ただ一つのこと、「私はかつて盲目でありましたが、今は見えるということ」、このお一人おひとりの経験を友人にも、社会で関係する人々にも、語り続けること、それが私たちの伝道であり、私たちの証しなのだと思います。神様から与えられた恵みを黙想し、そしてその恵みによって私たちの人生が180度変えられる時、私たちは私たちの人生に確かに介入してくださった神様を告白せずにはいられなくなるのです。
【結論】
本日の内容をまとめます。宗教指導者であるファリサイ派の人々と、自分の身の上に起こった神の恵みを大胆に証しし、追放されてしまった男を見てまいりました。神の国の秩序においては、必ずしも、権威を乱用し人を追い出す側が自由であり、追い出される側が不自由であるということではないということを見てまいりました。むしろその逆で、権威を乱用する者には、閉鎖的な恐れと不安が人々に付きまといますが、神様が自分にもたらしてくださった恵みを証しする時、男はいよいよ大胆さと自由を得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ります。お一人おひとりの証しとは、私たちの教会の伝道そのものであります。「私はかつて盲目でありましたが、今は見えるようになりました」と、私たちも大胆に証し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祈り求めて行きましょう。そして神様が私たちの人生にさらに豊かに介入してくださいますよう祈り求めて行きま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