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ける水の源 생수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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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ヨハネによる福音書 7章37節~52節
7:37祭りが最も盛大に祝われる終わりの日に、イエスは立ち上がって大声で言われた。「渇いている人はだれでも、わたしのところに来て飲みなさい。
7:38わたしを信じる者は、聖書に書いてあるとおり、その人の内から生きた水が川となって流れ出るようになる。」
7:39イエスは、御自分を信じる人々が受けようとしている“霊”について言われたのである。イエスはまだ栄光を受けておられなかったので、“霊”がまだ降っていなかったからである。
7:40この言葉を聞いて、群衆の中には、「この人は、本当にあの預言者だ」と言う者や、
7:41「この人はメシアだ」と言う者がいたが、このように言う者もいた。「メシアはガリラヤから出るだろうか。
7:42メシアはダビデの子孫で、ダビデのいた村ベツレヘムから出ると、聖書に書いてあるではないか。」
7:43こうして、イエスのことで群衆の間に対立が生じた。
7:44その中にはイエスを捕らえようと思う者もいたが、手をかける者はなかった。
7:45さて、祭司長たちや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下役たちが戻って来たとき、「どうして、あの男を連れて来なかったのか」と言った。
7:46下役たちは、「今まで、あの人のように話した人はいません」と答えた。
7:47すると、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言った。「お前たちまでも惑わされたのか。
7:48議員やファリサイ派の人々の中に、あの男を信じた者がいるだろうか。
7:49だが、律法を知らないこの群衆は、呪われている。」
7:50彼らの中の一人で、以前イエスを訪ねたことのあるニコデモが言った。
7:51「我々の律法によれば、まず本人から事情を聞き、何をしたかを確かめたうえでなければ、判決を下してはならないことになっているではないか。」
7:52彼らは答えて言った。「あなたもガリラヤ出身なのか。よく調べてみなさい。ガリラヤからは預言者の出ないことが分かる。」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ヨハネによる福音書 7章37節~52節
생수의 근원
2026년 1월 18일 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요한복음 7장 37~52절
서론
유월절, 칠칠절(오순절)과 함께 초막절은 유대인의 3대 명절 중 하나입니다. 세 명절 중에서도 초막절이 가장 기쁨으로 가득 차 축하받았던 것은 그 명절이 9~10월에 열리는 추수감사절이기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초막절은 일주일 동안 진행되었으며, 그 기간 동안 사람들은 초막, 즉 임시 오두막을 지어 거기서 지냈습니다. 옛날 모세에 의해 인도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을 향해 가면서, 광야에서 천막 생활을 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축제 기간 동안 여인의 뜰에 세워진 등대에 불이 켜졌고, 밤에는 그 아래에서 축하가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일주일 동안 실로암 연못에서 길어 온 물을 성전 제단에 붓는 「물을 긷는 의식」이 행해졌습니다. 물은, 일본에 사는 우리에게는 흔한 것이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지난 내용에 이어, 초막절에 전하신 예수님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며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물을 긷는 의식
37~3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은 명절 끝날에 다시 서서 외쳐 이르셨습니다.「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 구절을 헬라어 원문을 보면 「그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흘러나올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배란 누구의 배일까요? 즉, 생수의 근원이 그리스도를 믿은 신자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인지, 신자의 배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리스도의 배에서 나오는 것인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39절에서 저자 요한은 「생수」를 「성령」이라고 다시 표현하고 있기에, 그 배는, 그리스도의 배에서라는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 오순절 날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셔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신 후, 성령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생수의 근원이시며 성령의 근원이십니다.
37절 첫머리의「명절 끝날 곧 큰 날에」이 유월절의 일곱째 날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여덟째 날에 거행된 「성회」를 가리키는 것인지, 이 부분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유월절 절기에 대해 기록된 부분을 확인해 보면, 말씀 발췌문 인쇄물에 인쇄된 대로 레위기(23:34~36)에는 여덟째 날의 성회가 정해져 있지만, 신명기(16:13~15)에는 일주일 동안만 지키라는 내용만 기록되어 있고, 여덟째 날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된 바 없습니다. 또한 여덟째 날의 성회에는 물을 긷는 의식이 행해지지 않았고, 등잔대의 불 아래에서 춤추는 일도 없었기 때문에 유대인들 사이에서 가장 성대하게 축하받는 날도 아니었다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런 점도 있지만, 우리는 이 「명절 끝날 곧 큰날」이, 여덟째 날에 거행된 「성회」를 가리킨다고 보고 계속 읽어 나가고자 합니다. 「성회」는 바로 하늘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예배를 의미하며, 종말론적 함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이 「물을 긷는 의식」은 다음 해의 수확도 축복받기를 바라는 기우제였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동시에 그것은 광야 여정에서 모세가 반석에서 물을 낸, 그 기적을 기억하기 위한 의식이기도 했습니다. 물을 긷는 의식은 모세에 의해 주어진 「목마름의 치유」를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른 광야에서 물을 마시고 싶어 불평하는 백성에게 모세가 반석을 쳐, 물을 냈습니다.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선포하신 구원의 선언은, 설령 물을 긷는 의식이 8일째에 누락되었더라도, 설령 등대에 불이 켜지지 않았더라도, 메시아이신 그분의 오심으로 목마른 사람들을 위해 이제 반석에서 생수가 쏟아지게 될 것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참 반석이라」고 선언하시며, 그 물은 결코 마르지 않을 것이며, 그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무리는 광야에서 조상들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났을 것입니다. 수많은 기적을 행한 모세와 예수님이 겹쳐 보였을 것입니다.
(2) 무리 중에서의 쟁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예수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로 의견이 갈리게 되었습니다. 40~43절을 보십시오.
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41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42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43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은「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선지자」란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기다리던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가리킵니다. 신명기 18:18을 보십시오.
신명기 18장
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또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어떤 사람은, 41절에 나와 있듯이 「그리스도라」라고 직접 말하는 자들도 나왔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메시아관은 정치적인 메시아였으며, 그것은 자신들보다 앞서 싸워 줄 용감한 왕을 의미했다고 생각됩니다.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반박했습니다. 미가서에는 메시아의 출생지가 분명히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가 5:2을 보십시오.
미가 5장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가서의 예언을 들어「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나올 것이다」라고 올바르게 주장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님은 실제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출생 직후 헤롯 대왕의 박해가 시작되자,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일시적으로 애굽으로 피난했습니다. 이후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인 나사렛으로 돌아와 정착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갈릴리의 나사렛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로부터 파견된 아랫사람들이 예수님께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돌아왔습니다. 이에 당국자들도 화가 났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고 추궁하자, 아렛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46~52절을 보십시오.
46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50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5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5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리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아랫사람은, 성전 경비대를 말하며, 레위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병사들처럼, 필요할 경우 무자비한 수단도 마다하지 않고 과감히 명령을 수행하는 식의 방식은 취하지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었고 평화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것처럼, 아랫사람들도「오실 메시아」를 기다렸고, 구약성경에 예언된 「그 선지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손을 대지 않은 이유에 대해, 46절에서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라고 솔직히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당국자들은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윱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라며 관리들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부정했습니다.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들 가운데 정말 나사렛 예수를 믿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을까요? 이후 등장하는 산헤드린 의원 니고데모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유해를 정중히 무덤에 안장하기 위해 유해 인도를 빌라도에게 청원했습니다. 그는 아마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더 나아가 12:42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42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놀랍게도, 여기에는 산헤드린 의원들 중에도 믿는 자들이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함부로 말하면 회당에서 출교될까 두려워 그 사실을 입에 올리는 것을 꺼렸을 뿐입니다. 니고데모가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그러자 그 말에도,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라고 일축하며 부정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정말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나온 적이 없었을까요? 요나서의 요나는 갈릴리의 가드헤벨 출신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열왕기하 14:25). 또한 학자에 따라서는 선지자 호세아도 갈릴리 출신이라고 생각되며, 예언자 나훔도 갈릴리의 가버나움 출신이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당국자들은 그분이 메시아인지 아닌지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단지 자기 보신을 위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일방적으로 탄압을 가하는 모습이 엿보입니다.
(3) 생수가 강이 되다
초막절에, 한때 이스라엘 백성의 갈증을 해소했던 그 반석이, 바로 나라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분명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분명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셔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 오순절 날에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오순절 날, 제자들이 기도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성령이 부어졌습니다. 성령으로 인해 사람들의 영의 눈이 열려, 예전에 주 예수께서 말씀하신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생수」란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내주함과 동시에, 장차 하늘 예루살렘에서 누리게 될 영생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그 물을 마시는 것이 구원이며, 그 물을 마시는 자들에게 영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47:1절과 6~9절을 보십시오.
에스겔47장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6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 내가 돌아가니 강 죄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예언자 에스겔은 환상 속에서 인도받았습니다. 보니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성전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 물은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였고, 그곳에 모여든 생물들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비슷한 환상을 저자 요한 자신도 요한계시록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1~5을 보십시오.
요한계시록 22장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요한도 에스겔과 마찬가지로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 강을 보게 되었습니다. 생수는 오순절 날, 성령 강림이라는 형태로 영적으로 성취되었지만, 장차 올 날, 주님의 날에 보이는 형태로 우리는 그것을 실제로 누리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매년 지켰던 초막절은 종말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장차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맛보게 될 영생과 그 기쁨을 미리 맛보는 것이었습니다.
결론
오늘의 내용을 정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초막절에 아들을 보내시고,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담대히 메시지를 전하심으로써 중요한 계시를 사람들 앞에 나타내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참 반석이시며 참 성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반석에서 물을 마시는 자는 모두 치유되고 깨끗해지며 영생이 주어집니다. 생수는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내주이시면서 동시에 장차 올 날에 하늘 예루살렘에서 누리게 될 영생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마시는 것이 구원이며, 그것을 마시는 자들에게 영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우리는 마음으로 응답하는 자로서,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주 예수께서 이루신 일을 함께 기뻐하는 자들이 되도록 합시다.
【序】
過越しの祭り、五旬祭と並んで、仮庵の祭りは、ユダヤ人の三大祝祭の一つです。三つの祭りの中でも、仮庵の祭りが最も喜びに満たされてお祝いされたのは、その祭りが9~10月に行われる収穫感謝祭でもあったからだと思われます。仮庵の祭りは一週間行われ、その間、人々は仮庵即ち、仮小屋を立ててそこで過ごしました。昔、モーセによって導かれたイスラエルの民が、エジプトの奴隷状態から解放され、約束の地を目指して、荒れ野で天幕生活をしたことを覚えるためであります。祭りの間、婦人の庭に立てられた燭台に火が灯され、夜にはその下でお祝いがなされました。また、七日間に渡ってシロアムの池から汲んで来た水を、神殿の祭壇に注ぐという「水汲みの儀式」が行われました。水は、日本に住んでいる私たちにとっては、ありふれたものでありますが、パレスチナの人々にとっては大変貴重なものでありました。本日は前回の内容に引き続き、仮庵の祭りで語られたイエス様のメッセージに耳を傾けつつ、共に御言葉の恵みに与りたいと願います。
【1】. 水汲みの儀式
37~39節をご覧ください。
“祭りが最も盛大に祝われる終わりの日に、イエスは立ち上がって大声で言われた。「渇いている人はだれでも、わたしのところに来て飲みなさい。わたしを信じる者は、聖書に書いてあるとおり、その人の内から生きた水が川となって流れ出るようになる。」”
イエス様は祭りの終わりの日に、再び大声でメッセージを語られました。「その人の内から生きた水が川となって流れる」とありますが、この個所はギリシア語を見ますと「その腹から生きた水が川となって流れ出る」となっています。その腹とは、誰の腹なのでしょうか。つまり、生ける水の源というのが、キリストを信じた信者の内側からなのか、或いはキリストの内側からなのか、信者の腹からなのか、キリストの腹からなのか、二通りの解釈が成り立つわけです。39節で、著者ヨハネは「生ける水」のことを、「聖霊」と言い直していることから、その腹とは、キリストの腹からというふうに考えた方が良さそうです。なぜなら、聖霊はイエス様が栄光をお受けになった後に五旬節の日に注がれたからです。イエス様が天に昇り、父の右の座に着座されてから、ご聖霊をこの世に派遣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イエス・キリストこそ、生ける水の源であり、聖霊の源なのであります。
37節の冒頭の「祭りが最も盛大に祝われる終わりの日」とは、過越しの祭りの七日目を指すのか、或いは八日目にもたれた「聖なる集会」を指すのか、ここもはっきりいたしません。過越しの祭りについて書かれている箇所を確認しますと、御言葉の抜粋のプリントに印刷した通り、レビ記(23:34~36)には、八日目の聖なる集会が定められていますが、申命記(16:13~15)には、七日間お祝いすることだけが書かれていて、八日目については特に何も言及されていません。そして、八日目の聖なる集会には、水汲みの儀式は行われず、燭台の灯の下で踊ることもなかったため、ユダヤ人の間で最も盛大に祝われる日でもなかったと指摘する学者もいます。そのようなこともありますが、私たちは、この「祭りの終わりの日」とは、八日目にもたれた「聖なる集会」のことを指しているとして読み進め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聖なる集会」とはまさに、天のエルサレムで捧げる礼拝を意味し、終末論的意味合いを持っているからです。さて、この「水汲みの儀式」とは、翌年の収穫も祝福されるようにという、雨乞いの儀式であったと考えられますが、同時にそれは、荒れ野の旅路においてモーセが岩から水を出したあの奇跡を覚えるための儀式でもありました。水汲みの儀式とは、モーセによって与えられた「のどの渇きの癒し」を象徴するものであったと言えるのです。乾燥した荒れ野の中で水を飲みたいと不平をこぼす民に、モーセが岩を打って水を出してくださいました。イエス様が大声で語られた救いの宣言は、たとえ水の儀式が八日目に欠如していたとしても、たとえ燭台に火が灯されなかったとしても、メシアであられるご自身の到来によって、渇く人々のために今や、岩から生ける水が注がれるようになるということを宣言しているのです。イエス様は、私こそまことの岩であると宣言され、そして、その水は決して枯れることがなく、その水を飲む者は永遠に渇くことがないと宣言しておられるのです。イエス様のメッセージを聞いた群衆は、荒れ野における先祖たちの記憶が鮮やかに蘇ったことでしょう。数多くの奇跡を行ったモーセとイエス様が重なって見えたに違いありませんでした。
【2】. 群衆の間の意見の対立
イエス様のメッセージを聞いた群衆は、イエス様について肯定的に考える人々と、否定的に考える人々とで、意見が分か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40~43節をご覧ください。
“この言葉を聞いて、群衆の中には、「この人は、本当にあの預言者だ」と言う者や、「この人はメシアだ」と言う者がいたが、このように言う者もいた。「メシアはガリラヤから出るだろうか。メシアはダビデの子孫で、ダビデのいた村ベツレヘムから出ると、聖書に書いてあるではないか。」こうして、イエスのことで群衆の間に対立が生じた。”
肯定的に考えるある人々は「この人は、本当にあの預言者だ」と言いました。「あの預言者」とは、ヨハネ福音書4章でサマリアの人々が待ち望んでいた「モーセのような預言者」のことを言っています。申命記18:18をご覧ください。
“わたしは彼らのために、同胞の中からあなたのような預言者を立ててその口にわたしの言葉を授ける。彼はわたしが命じることをすべて彼らに告げるであろう。”
さらに、肯定的に考える他の人々は、41節にありますように、「この人はメシアだ」と直接言う者も出てきました。当時の人々のメシア観とは、政治的なメシアであり、それは自分たちに先立って戦ってくれる勇敢な王を意味していたと考えられます。それに対し、否定的に考える人々は「メシアはダビデの子孫で、ダビデのいた村ベツレヘムから出ると、聖書に書いてあるではないか」と反論しました。ミカ書にはっきりとメシアの出生の場所が預言されているからです。ミカ5:1をご覧ください。
“エフラタのベツレヘムよ/お前はユダの氏族の中でいと小さき者。お前の中から、わたしのために/イスラエルを治める者が出る。彼の出生は古く、永遠の昔にさかのぼる。”
否定的に考える人々は、ミカ書の預言を持ち出し「メシアはベツレヘムから出るはずだ」と正しく主張しました。ヨハネ福音書には書かれていませんが、イエス様は実際、ベツレヘムでお生まれになったのであります。しかし出生直後、ヘロデ大王の迫害が始まったため、両親のヨセフとマリアは赤ちゃんの命を守るために一時的にエジプトに避難しました。その後、ヨセフとマリアの故郷であるナザレに戻って定着したために、イエス様はガリラヤのナザレ人として知られ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ります。さて、そんな最中、祭司長たちとファリサイ派の人々から遣わされた下役たちがイエス様に手をかけずに、そのまま戻って来ました。これには当局の人間も腹を立てたことでしょう。「なぜ、あの男を捕えなかったのか」と問い詰めると、下役たちは次のように答えました。46~52節をご覧ください。
“下役たちは、「今まで、あの人のように話した人はいません」と答えた。すると、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言った。「お前たちまでも惑わされたのか。議員やファリサイ派の人々の中に、あの男を信じた者がいるだろうか。だが、律法を知らないこの群衆は、呪われている。」彼らの中の一人で、以前イエスを訪ねたことのあるニコデモが言った。「我々の律法によれば、まず本人から事情を聞き、何をしたかを確かめたうえでなければ、判決を下してはならないことになっているではないか。」彼らは答えて言った。「あなたもガリラヤ出身なのか。よく調べてみなさい。ガリラヤからは預言者の出ないことが分かる。」”
下役とは、神殿警備隊のことで、レビ人によって構成されていました。彼らはローマ兵のように必要とあらば、非情な手段も厭わずに果敢に命令を遂行するというようなやり方はいたしません。基本的には、イスラエルの民であり、平和な人々でありました。そして全イスラエルが待ち望んでいたように、下役たちも「来るべきメシア」を待ち望み、旧約聖書に預言されている「あの預言者」を待ち望んでいたのです。彼らがイエス様に手をかけなかった理由として、46節で「今まで、あの人のように話した人はいません」と率直に答えています。これに対し当局者たちは、「お前たちまでも惑わされたのか。議員やファリサイ派の人々の中に、あの男を信じた者がいるだろうか。だが、律法を知らないこの群衆は、呪われている。」と下役たちの考えを頭ごなしに否定しました。議員やファリサイ派の人々の中に、本当にナザレのイエスを信じた人は一人もいなかったのでしょうか。この後に出てくるサンヘドリンの議員ニコデモは、十字架に掛けられたイエス様のご遺体を丁重に墓に葬るために、遺体の引き取りをピラトに願い出ました。彼は、恐らくイエス様を救い主として信じていたと思われます。さらに言えば12:42を見ますと、次のように書かれています。
“とはいえ、議員の中にもイエスを信じる者は多かった。ただ、会堂から追放されるのを恐れ、ファリサイ派の人々をはばかって公に言い表さなかった。”
意外なことに、ここにはサンヘドリンの議員の中にも信じる者たちが多くいたと書かれています。ただ、下手なことを言ったら会堂から追放される恐れがあったため、そのことを口にすることを憚れていたに過ぎないのであります。ニコデモが勇気を持って言いました。「我々の律法によれば、まず本人から事情を聞き、何をしたかを確かめたうえでなければ、判決を下してはならないことになっているではないか。」すると、その言葉に対しても、「あなたもガリラヤ出身なのか。よく調べてみなさい。ガリラヤからは預言者の出ないことが分かる。」と頭ごなしに否定しました。旧約聖書において、本当にガリラヤから預言者が出たことがなかったのでしょうか。ヨナ書のヨナは、ガリラヤのガト・ヘフェル出身であると聖書に書かれています(列王記下14:25)。また学者によっては、預言者ホセアもガリラヤ出身であると考えられていますし、預言者ナホムもガリラヤのカファルナウム出身であると考えられています。従いまして、当局者たちは、そのお方がメシアなのかどうか、ろくに調査もせずに、ただ自己保身のため、自分たちの既得権益を守るために、一方的に弾圧をかけている姿が透けて見えてくるのであります。
【3】. 生ける水が川となる
仮庵の祭りで、かつてイスラエルの民の渇きを癒したあの岩とは、私であるというイエス様のメッセージは、鮮烈に人々の記憶の中に残ったに違いありません。それまでははっきり理解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でしたが、そのメッセージは、イエス様が十字架によって挙げられ、復活して天に昇られてから、五旬節の日に成就されることになりました。五旬節の日、弟子たちが祈っていると、天から聖霊が注がれたのであります。聖霊によって人々の霊の目が開かれて、かつて主イエスが語られた御言葉の意味を理解できるようにされました。「生ける水」とは、信じる者たちに与えられる聖霊の内住であると同時に、やがての日に、天のエルサレムにおいて享受することになる永遠の命を意味していたのです。その水を飲むことが救いであり、その水を飲む者たちに、永遠の命が与えられるのであります。エゼキエル書47:1節と6~9節をご覧ください。
“彼はわたしを神殿の入り口に連れ戻した。すると見よ、水が神殿の敷居の下から湧き上がって、東の方へ流れていた。神殿の正面は東に向いていた。水は祭壇の南側から出て神殿の南壁の下を流れていた。”
6~9節
“彼はわたしに、「人の子よ、見ましたか」と言って、わたしを川岸へ連れ戻した。わたしが戻って来ると、川岸には、こちら側にもあちら側にも、非常に多くの木が生えていた。彼はわたしに言った。「これらの水は東の地域へ流れ、アラバに下り、海、すなわち汚れた海に入って行く。すると、その水はきれいになる。川が流れて行く所ではどこでも、群がるすべての生き物は生き返り、魚も非常に多くなる。この水が流れる所では、水がきれいになるからである。この川が流れる所では、すべてのものが生き返る。”
預言者エゼキエルは、幻の中で案内されました。見ると、神殿から生ける水が流れていると言うのです。神殿とはイエス様を指しています。その水は、すべてのものを清め、そこに群がる生き物は生き返りました。同じような幻を著者ヨハネ自身も黙示録の中で記述しています。黙示録22:1~5をご覧ください。
“天使はまた、神と小羊の玉座から流れ出て、水晶のように輝く命の水の川をわたしに見せた。川は、都の大通りの中央を流れ、その両岸には命の木があって、年に十二回実を結び、毎月実をみのらせる。そして、その木の葉は諸国の民の病を治す。もはや、呪われるものは何一つない。神と小羊の玉座が都にあって、神の僕たちは神を礼拝し、御顔を仰ぎ見る。彼らの額には、神の名が記されている。もはや、夜はなく、ともし火の光も太陽の光も要らない。神である主が僕たちを照らし、彼らは世々限りなく統治するからである。”
ヨハネもエゼキエルと同じように玉座から流れ出る命の水の川を見せられました。生ける水は、五旬祭の日に聖霊降臨という形で霊的に成就されましたが、やがての日、主の日に、見える形で私たちはそれを実際に享受す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従いまして、イスラエルの民が毎年祝っていた仮庵の祭りとは、終末論的意味が含まれており、やがて私たちが新しい天と新しい地で味わうことになる永遠の命と、その喜びの先取りであったのであります。
【結論】
本日の内容をまとめます。父なる神は、御子を仮庵の祭りに遣わし、そして反対する人々の只中でメッセージを大胆に語ることによって、大切な啓示を人々の前で現わされました。それはイエス・キリストこそ、真の岩であり、真の神殿であられると言うことです。この岩から水を飲む者は、すべての者が癒され、清められ、永遠の命が与えられるのであります。生ける水とは、信じる者たちに与えられる聖霊の内住であると同時に、やがての日に、天のエルサレムにおいて享受することになる永遠の命を意味していたのです。それを飲むことが救いであり、それを飲む者たちに、永遠の命が与えられるのであります。イエス様の招きの言葉に、私たちは心から応答する者として信仰を公に告白し、主イエスが成し遂げてくださった御業を共に喜ぶ者たちとならせていただきま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