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ーマ愛国者フィリピ人 로마의 애국자 빌립보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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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説教
-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フィリピの信徒への手紙 1章1節~2節
1:1キリスト・イエスの僕であるパウロとテモテから、フィリピにいて、キリスト・イエスに結ばれているすべての聖なる者たち、ならびに監督たちと奉仕者たちへ。
1:2わたしたちの父である神と主イエス・キリストからの恵みと平和が、あなたがたにあるように。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フィリピの信徒への手紙 1章1節~2節
로마의 애국자 빌립보의 사람들 카와에 토모아키목사
빌립보서 1장 1-2절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오늘부터 빌립보서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는 특별한 의미의 교회이고 바울은 그 성도들을 생각할때마다 그들의 신앙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마케도냐 제일의 도시가 빌립보이고 바울이 마케도냐에 오고 나서 즉, 유럽의 대륙에 첫발을 디디고 나서 최초로 개척한 교회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빌립보 교회인 것입니다.
지리적으로는 현재의 그리스의 필리피 라는 지명으로 불리워지는 곳입니다.
이 마을은 14세기에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어진 이래,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만, 로마제국 시대에는 군사상의 중요한 거점으로서 또는 해로와 육로를 연결하는 교통의 거점으로서 번영한 마을이었습니다. 그리고 전략적으로 로마의 퇴역군인이 이 마을로 대량 이주하면서 그들에게 로마의 국적 로마의 시민권을 줌으로서 이 중요한 장소를 작은 로마로 「로마화」 시켰습니다. 이런 의미로 빌립보에 살고 있는 주민은 로마황제를 「주」로 모시고, 로마의 국적을 가진 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퇴역군인들을 의식해서인지 빌립보서의 내용 가운데는 자주 군사용어가 나옵니다. 유명한 3장 20절의 「하늘의 시민권」이라는 단어도 그렇지만 그 밖에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1장 12절의 「복음의 전파」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이 전파라고 하는 단어는 길을 막는 장애물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전진하는이라는 군사용어입니다. 또 1장 23절의 「세상을 떠나서」 라는 단어도 그렇습니다. 이 「떠난다」라는 단어는 「텐트를 철수 한다」는 뜻으로 역시 군사용어입니다. 또 1장 27절의 「한마음으로 서서」와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서서」라는 단어는 요새에 배치된 군사처럼 단호한 모습을 말합니다. 또 「함께 협력한다」는 단어도 역시 군사용어입니다. 군사용어를 사용하는 바울의 배려를 보면 로마의 애국자 빌립보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 나라의 시민, 하나님 나라의 애국자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바울의 마음을 읽을 수 가 있습니다.
자색 옷감 장사 여인과의 만남
그런데 2차 전도여행에서 바울이 빌립보에 머문 시간은 수일밖에 되지 않았다고 사도행전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는 그 후에도 착실히 성장을 했습니다. 지금의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전도를 지원하고 항상 바울의 사역을 헌금과 기도로 후원하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당시 바울이 어떻게 해서 아시아에서 지중해를 건너서 마케도냐로 인도하심을 받았는지가 쓰여져 있습니다. 사도행전16장 6-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제 2차 선교여행은 15장 36절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15장 40절에 바울은 실라를 선택해서 출발했고 또 도중에 디모데를 함께 데려간 일을 16장 1-3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위에 16장 6-9절 말씀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케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이 구절을 보면 바울 일행은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라고 말합니다. 어떤일이 있었는지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당사자인 바울 일행에게는 굉장히 힘든 상황이 계속되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보통 “성령이 허락하시지 않았다”라는 표현은 나중에 돌이켜 그 당시를 생각해 보았을 때 말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입니다.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어쨌든간에 무엇을 해도 잘 되지 않고 악전고투하는 중에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운명에 휘둘리는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려움을 충분히 상상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괴로워하고 있는 중에 바울은 어느날 꿈속에서 환상을 봅니다. 한 사람의 마케도냐 사람이 “마케도냐에 와서 우리를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세운 아시에서의 선교계획이 계속해서 좌절되는 것을 경험하고 결국에는 마케도냐로 건너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사도행전 16장 11-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케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지금까지 바울일행의 전도의 방법이라고 하면 선교지에 들어가서 먼저 그곳에 있는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은 10명의 성인 남성이 있으면 그 마을에 회당을 세운다고 하는데 회당이 없었다는 것은 그곳에는 유대인 남성이 10명도 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이유로 안식일에 기도하러 강가로 갔습니다. 그러자 강가에 부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실은 이것이 바울에게 있어서는 운명적인 만남이었습니다. 바울이 그 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하나님이 그 부인들 가운데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상당히 실례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당시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남성중심 사회인 가운데 복음을 듣는 남성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바울일행에게 있어서 틀림없이 마음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정말 여기에 온 것이 잘한 결정이었을까?”라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의 관점에서 본 다면 한 사람의 여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 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 루디아의 가족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시고 나중에는 바울을 지원하고 바울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의미의 교회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바울과 루디아와의 만남은 처음으로 유럽으로 복음이 전해진 역사적인 순간인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복음이 전해지는 그 순간을 준비하여 주십니다. 바울은 제 2차 선교여행의 마케도냐의 빌립보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은 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확실한 인도하심에 감사드리며 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이 편지는 바울이 감옥에 감금되어 있을 때 쓰여졌고 옥중서신서 중의 하나입니다. 다만 바울이 감옥에 구속된 것은 순교가 가까워진 로마에서 뿐만 아니라 로마 외의 장소에서도 구속되었기 때문에 집필시기, 집필장소에 관해서는 학자들에 의해 의견이 다릅니다. (에버소 설, 가이사리아 설 등등)
어쨌든 옥중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도하며 이 편지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옥중에 있는 바울을 위해서 빌립보 교회에서는 에바브로디데를 통해서 헌금을 보냈습니다. 이 에바브로디데를 통해서 이번에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이 옥중서신을 맡겨서 보낸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1-2절을 보십시오.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의 편지의 서두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바울이 자신을 사도라고 칭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갈리디아서나 골로새서에서는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편지의 처음에 소개했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서에서는 그렇게 쓰지 않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의심과 반대가 없었던 사람에게 대해서는 바울은 사도성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없다고 느꼈을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립보 교회의 사람들은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거나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이 주목해야 할 점은 바울이 자기 자신과 디모데를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나열했다는 점입니다.
디모데는 제 2차 선교여행에서 바울과 동행하고 빌립보에서의 개척전도에도 같이 사역한 애제자였고 바울에게는 아들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그후에도 바울 대신에 디모데가 빌립보 교회에 파견됩니다. 바울이 편지의 발신자로서 동료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은 때때로 있었습니다만 자신을 사도라고 주장할 때는 반드시 자기 자신과 동료를 구별했습니다. 그런데 빌리보서에서는 나란히 나열했습니다. 게다가 종이라고 같이 나열한 점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종」이라고 하는 단어는 「노예」라는 의미이지만 유대인과 로마인에게는 「종」이나 「노예」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조금 다릅니다. 유대인에게 있어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단어가 구약성경에 몇번이나 나옵니다만 이것은 「선지자에 대한 호칭」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인에게는 부정적으로 들렸습니다. 적어도 로마인에게는 섬기는 일은 미덕이 아닙니다. 사람을 지배하고 컨트롤하는 것이야말로 미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빌립보의 사람들에게 대해서 교회의 지도자인 바울과 디모데가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는 것을 서두에 말한 것입니다. 이 내용으로 보아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멧세지는 교회에 있어서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이야말로 위대한 사람」이다라고 하는 멧세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면 “먼저된 자가 나중이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라고 하는 멧세지입니다. 편지의 수신인에 주목해 보아도 역시 같은 말을 할 수 있겠지요. 편지의 수신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성도는 빌립보교회의 성도 전원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백성인 빌립보 교회의 모든 성도」라는 의미입니다. 보통이라면 리더들이 먼저 언급되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어집니다. 그러나 바울의 편지에서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먼저 말한 후에 리더격인 감독들과 집사들을 말합니다. 이런 것도 역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는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야 말로 위대하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이 넘치는 장소입니다. 죄의 종이었던 죄인을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에 의해서 구속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안식 가운데로 초청하여 주셨습니다. 그러한 교회로 세상적인 가치관의 기준과 상식을 그대로 가지고 올 수는 없습니다. 바울의 편지의 서두를 보면 교회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그 생애를 통해서 모범을 보이신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섬기는 자가 되고 사람들의 발을 씻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멧세지가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용
오늘의 말씀을 우리들에게 적용해 본다면 가족전도를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에게 어떻게든 복음을 전하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어렵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이 종종 있지 않을까요? 제 부모님도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신 제 경험을 통해서 보면 가족전도는 앞이 보이지 않고 막연하고 정말로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복음이 전해진 것 처럼 우리들을 통해서도 복음을 가족에게 전하도록 계획을 갖고 계시며 그때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바울 일행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좌절을 통해서 빌립보로 인도하심을 받고 루디아의 가족을 통해서 유럽 최초의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유럽에 전해진 복음은 이윽고 16세기에 이르러 일본에도 전해져 결국에는 우리들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따라서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초조해하지 말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그 때가 꼭 온다는 것을 믿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관대한 마음으로 섬기고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며 반드시 하나님이 그 마음을 열어 주실 때가 올 것을 믿으며 기도합시다.
【序】
本日から、フィリピの信徒の手紙を読みながら、御言葉の恵みに与りたいと思います。フィリピの教会はパウロにとって大変思い入れのある教会であり、パウロは彼らのことを思い起こす度に、彼らの信仰をほめたたえています。マケドニアで第一の都市がフィリピであり、パウロがマケドニアに渡ってから、つまりヨーロッパ大陸に渡ってから、最初に開拓した教会が、まさに本日のフィリピ教会でありました。地理的には、現在のギリシャの中にあるピリッポイという場所になります。この町は14世紀にオスマン帝国に征服されて以来、廃墟となってしまいましたが、ローマ帝国の時代には、軍事上の重要な拠点として、或いは海路と陸路をつなぐ交通の拠点として栄えた町でありました。そして、戦略的にローマの退役軍人がこの町に大勢移住させられ、彼らにローマの国籍、ローマ市民権を与えることによって、この重要な場所を「小ローマ」として、ローマ化させていきました。そのような意味で、フィリピに住んでいる住民は、ローマ皇帝を主として崇め、ローマの国籍を持っていることに大変誇りを持っていたようです。パウロは退役軍人たちを意識してなのか、フィリピ書の中には、しばしば軍事用語が出て来ます。有名な3:20の「天の国籍」、「天の市民権」という言葉もそうですが、その他にも、例えば1:12の「福音の前進」という言葉です。この前進という言葉は、道をふさぐ障害物や危険にもかかわらず前進する、という軍事用語です。また、1:23の「世を去って」という言葉です。この「去って」という言葉はテントを撤収してということで、やはり軍事用語です。また、1:28の「一つの霊によってしっかり立ち」、「福音の信仰のために共に戦っており」という言葉ですが「しっかり立ち」とは、砦に配属された兵士のごとく、断固として立つことです。また、「共に戦って」という言葉もやはり軍事用語でございます。パウロはローマの愛国者フィリピ人をいかに、神の国の市民、神の国の愛国者にしようとしているのか、そのような配慮を感じ取ることが出来るのです。
【1】. 紫布を商う婦人との出会い
さて、第二次伝道旅行において、パウロのフィリピでの滞在は数日間にすぎなかったと、使徒言行録には記述されています。しかしフィリピ教会は、その後着実に成長していったようです。今やフィリピの教会はパウロの伝道の支え、常にパウロの働きを献金と祈りをもって支えてくれる教会となったのです。使徒言行録を調べてみると、当時パウロがどのようにしてアジアから、地中海を渡ってマケドニアへ導かれたのかが書かれています。使徒言行録16章6~9をご覧ください。聖書を開ける方は聖書を開いて下さい。第二次伝道旅行は、15:36から始まっています。15:40に、パウロはシラスを選んで出発したこと、また、途中でテモテを一緒に連れて行ったことが16:1、2節で確認できます。その上で、16章6~9の御言葉がございます。
“さて、彼らは(つまりパウロとシラスとテモテたち)アジア州で御言葉を語ることを聖霊から禁じられたので、フリギア・ガラテヤ地方を通って行った。ミシア地方の近くまで行き、ビティニア州に入ろうとしたが、イエスの霊がそれを許さなかった。それで、ミシア地方を通ってトロアスに下った。その夜、パウロは幻を見た。その中で一人のマケドニア人が立って、「マケドニア州に渡って来て、わたしたちを助けてください」と言ってパウロに願った。”
この個所を見ますと、パウロの一行は「アジア州で御言葉を語ることを聖霊から禁じられた」とあります。具体的に何が起こったのかは記されていませんが、しかし、当事者であるパウロたちにとっては、とてもつらい経験が次から次へと起こったのではないかと思われます。普通、「聖霊によって禁じられた」という表現は、後で振り返ってみて初めて口にすることができる表現だと思うからです。当事者たちの立場からは、とにかく、何をやってもうまくいかず、悪戦苦闘する中で、ただただ、「得体の知れない運命に振り回されているだけではないのか」と悩まされていたことが、十分に想像できるのです。神様の御心が分からず、苦しんでいる中で、パウロはある日、夢の中で幻を見ました。一人のマケドニア人が「マケドニア州に渡って来て、わたしたちを助けてください」と言うのです。このようにして、パウロ一行は、自分たちのアジアでの宣教計画がことごとく挫折し、ついに、マケドニアへ渡って行くことになりました。続いて使徒言行録16章11~14をご覧ください。
“わたしたちはトロアスから船出してサモトラケ島に直航し、翌日ネアポリスの港に着き、そこから、マケドニア州第一区の都市で、ローマの植民都市であるフィリピに行った。そして、この町に数日間滞在した。安息日に町の門を出て、祈りの場所があると思われる川岸に行った。そして、わたしたちもそこに座って、集まっていた婦人たちに話をした。ティアティラ市出身の紫布を商う人で、神をあがめるリディアという婦人も話を聞いていたが、主が彼女の心を開かれたので、彼女はパウロの話を注意深く聞いた。”
これまでのパウロ一行の伝道の仕方と言えば、宣教地に入り、まずその土地にあるシナゴーグ(会堂)に行って、福音を宣べ伝えました。しかしフィリピにはユダヤ人のシナゴーグがなかったようです。ユダヤ人は10人の成人男性が集まれば、その町に会堂を建設すると言われますが、会堂がなかったということは、その町にはユダヤ人が少なかったことを意味しています。そのため、安息日に、祈り場である川岸に行きました。すると、川岸には婦人が集まっていました。実は、これがパウロにとって運命の出会いであったのであります。パウロは彼女たちに福音を語ると、主が、彼女たちの中の、紫布を商う婦人であるリディアの心を開いてくださいました。こんなことを言うと、女性の方々には大変失礼であると思いますが、当時、政治的にも、経済的にも、男性中心の社会の中で、福音を聞いてくれる男性が一人もいないということは、パウロたちにとって、きっと心細かったに違いありません。「本当にこの町に来てよかったのだろうか」と、まだ、神様のことを疑っていたかも知れません。当時の人々の観点から見るなら、一人の女性に福音を伝えることが、何でそれほど重要な事件なのかと考えたことでありましょう。しかし、神様は、このリディアの家族を通して、教会を立ててくださり、後にパウロを支援し、パウロにとって特別、思い入れのある教会に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パウロとリディアの出会いが、アジアから初めてヨーロッパへと、福音が伝えられた瞬間でありました。同じように神様は、私たちを通しても福音が伝えられるその瞬間を神様は備えてくださることでしょう。パウロは第二次伝道旅行の、マケドニアのフィリピに最初に足を踏み入れた時のことを、回想しつつ、神様の確かな導きに感謝しながら、この手紙を書き始めたと思われます。
【2】. キリスト・イエスの僕
ところで、この手紙は、パウロが牢獄の中に捕らえられている時に書かれたもので、獄中書簡の一つです。ただ、パウロは監獄に拘束されたのは、死期が迫った最後のローマにおいてだけでなく、ローマ以外でも拘束されたことが分かっているため、執筆時期、執筆場所については学者によって意見が異なります(エフェソ説、カイサリア節など)。いずれにせよ、獄中の中でパウロはフィリピ教会のお一人お一人の顔を思い浮かべながら祈りつつこの手紙を書いたと思われます。苦難の中にあるパウロに対し、フィリピ教会から使者としてエパフロディトが遣わされました。彼を通して、贈り物を持って来てくれたのです。このエパフロディトが、再びフィリピ教会にパウロのこの手紙を持って、送り返されたようです。1:1-2をご覧ください。
“キリスト・イエスの僕であるパウロとテモテから、フィリピにいて、キリスト・イエスに結ばれているすべての聖なる者たち、ならびに監督たちと奉仕者たちへ。わたしたちの父である神と主イエス・キリストからの恵みと平和が、あなたがたにあるように。”
パウロの手紙の書き出しで、まず注目すべき点は、パウロが自分のことを使徒であると名乗ってはいないという点です。以前、読んでまいりました、ガラテヤ書や、コロサイ書では、自分が使徒であることが書かれていました。また、それ以外のほとんどのパウロ書簡においても、必ず自身が使徒であることが手紙の冒頭に紹介されています。ところがフィリピ人の手紙には、それが書かれていないというのはどういうことでしょうか。恐らくパウロの使徒職に対する疑いや反対がなかった人々に対し、パウロは使徒性を前面に打ち出す必要がなかったからと感じたからでしょう。フィリピの人々は、パウロの使徒性に何の疑いも持っていなかったと言うことです。同じく注目すべき点は、パウロが自分自身とテモテを、「キリスト・イエスの僕」として並列させているという点です。テモテとは、第二次伝道旅行でパウロに同行し、フィリピの開拓伝道にも携わったパウロの愛弟子であり、パウロにとって我が子のような存在でした。そして、この後も、パウロの代わりにテモテが、フィリピの教会に遣わされます。パウロが手紙の発信者として、同労者の名前を列挙することは度々ありますが、自分が使徒であることを主張する場合は、必ず自分自身と同労者とを区別していました。ところが、フィリピ人の手紙では全く並列に書かれているのです。しかも「僕」として並列させている点に、大きな意味がある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した。「僕」という言葉は、「奴隷」という意味ですが、ユダヤ人と、ローマ人では「僕」、「奴隷」という言葉からイメージする内容が若干、異なります。ユダヤ人にとって「神の僕」という言葉が旧約聖書に何度も出て来ますが、これは預言者に対する呼称でありました。神様に仕える者として、肯定的なイメージがありました。ところがローマ人にとっては、より否定的に聞こえるということです。そもそも、ローマ人にとって人に仕えることは美徳ではありません。人を支配し、コントロールすることこそ美徳だと考えられていたからです。そのようなフィリピの人々に対して、教会の指導者であるパウロとテモテが、キリスト・イエスの奴隷であると冒頭で名乗っているのです。このことによって伝わってくるメッセージは、教会において、「人々に仕える者こそ、偉大である」というメッセージ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言い換えれば、「先の者が後になり、後の者が先になる」というメッセージです。手紙の宛名に着目しても、やはり同じことが言えるでしょう。手紙の宛名には、「イエスに結ばれている聖なる者たち、ならびに監督たちと奉仕者たちへ」とございます。聖なる者たちとは、「聖徒」という意味であり、フィリピの教会の信徒全員を指していると思われます。「神の家族、神の民であるフィリピの人たち」という意味です。この群れの指導的な立場にいる者が、監督たちと奉仕者たち(直訳すると執事たちと書かれています)と考えられますが、普通であれば、指導者たちが先に言及されるべきではないかと、思われるのです。しかしパウロの書き方は、フィリピの聖徒たちの名前の後に、群れの指導的な立場である監督者たちと、奉仕者たちが、記述されているのです。このこともやはり、神の教会の中では、「人々に仕える者こそ、偉大である」「先の者が後になり、後の者が先になる」という、イエス様の御言葉と通じる部分があるのではないかと思わされます。教会は神の恵みと平安であふれている場所であります。罪の奴隷であった罪人を、ただ、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の恵みによって、贖い出し、神の安息に中に招き入れてくださいました。そのような教会において、世の価値基準や世の常識をそのまま持ち込むことは出来ません。パウロの書簡の冒頭において、教会で指導的立場になるためには、イエス様が、そのご生涯を通して模範を見せられたように、私たちもイエス様の僕として仕える者とさせていただき、人々の足を洗う者とならせていただこうという、メッセージが含蓄されているように見えるのです。
【適用】
本日の個所を私たちに適用しようとするなら、家族伝道が考えられる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家族に対し、福音を何とか伝えようとしても、現実は厳しく、心細く感じることが多々あ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私の両親もまだイエス様を受け入れていませんが、経験を通して、家族伝道とは、先が見えず、漠然としていて、本当に難しいものであると感じています。しかし、神さまは、パウロを通して福音を伝えたように、私たちを通しても、福音を家族に伝えるために、ご計画を持たれ、機会を備えていてくださいます。パウロの一行が、自分たちの計画通り進まず、挫折を通して、フィリピに導かれ、そしてリディアの家族を通して最初のヨーロッパ教会がスタートいたしました。ヨーロッパに伝わった福音はやがて、16世紀になり、日本にも伝えられ、ついには私たちにも伝えられました。したがって、家族に福音を宣べ伝えることを諦めるのではなく、焦らずに、福音を宣べ伝えるチャンスが、そのタイミングが、きっと与えられることを信じて、私たちは祈っていきましょう。そして、愛する家族、お一人お一人に寛大に接し、彼らに仕え、神の国を証し、必ず主が、心を開いてくださる時が来ることを信じて祈ってまいりま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