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恵と知識の宝であるキリスト 지혜와 지식의 보화인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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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コロサイの信徒への手紙 2章1節~7節
2:1わたしが、あなたがたとラオディキアにいる人々のために、また、わたしとまだ直接顔を合わせたことのないすべての人のために、どれほど労苦して闘っているか、分かってほしい。
2:2それは、この人々が心を励まされ、愛によって結び合わされ、理解力を豊かに与えられ、神の秘められた計画であるキリストを悟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
2:3知恵と知識の宝はすべて、キリストの内に隠れています。
2:4わたしがこう言うのは、あなたがたが巧みな議論にだまされないようにするためです。
2:5わたしは体では離れていても、霊ではあなたがたと共にいて、あなたがたの正しい秩序と、キリストに対する固い信仰とを見て喜んでいます。
2:6あなたがたは、主キリスト・イエスを受け入れたのですから、キリストに結ばれて歩みなさい。
2:7キリストに根を下ろして造り上げられ、教えられたとおりの信仰をしっかり守って、あふれるばかりに感謝しなさい。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コロサイの信徒への手紙 2章1節~7節
지혜와 지식의 보화인 그리스도
2021년 6월27일 센겐다이교회 주일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골로새서 2장 1~7절
서론
하나님은 접근하기 어려운 빛 가운데 거하시며, 아무도 하나님을 본 적이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변함없이, 시간과 공간과 모든 피조물 위에 초월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자와 성령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충만함이 그리스도 안에, 육체 안에 거하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자신의 성전으로 삼으시고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이 놀라운 진리를 골로새 교인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은 간절히 기도하며 모든 목회적 배려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2장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바울의 수고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1절에서, 바울은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단어는 1장 29절에도 나오는 「힘을 다하여」라는 단어인데, 이 헬라어는 「경쟁하다」,「씨름하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선교라는 사역에 대한 자신의 수고와 헌신을 말하고 있는데, 다른 편지에서도 그렇듯이 자신의 사역에 대한 헌신과 노력을 마치 올림픽 경기에 출전하는 것처럼 비유하고 있습니다. 토쿄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올림픽이나 스포츠 대표 선수의 경우 국가를 대표하거나 특정 지역이나 지방을 대표해 경기에 출전하지 않습니까? 바울도 자신의 수고와 고난을 마치 교회를 대표하는 것처럼 주의 일에 힘쓰며 경기에 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바울의 자세를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입니다. 우리가 오늘 살아 있는 것도 실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그렇게 눈앞에 놓인 현실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 세상에서의 모든 삶의 영위는, 총책임자이시며 총감독이신 예수님을 위해 힘쓰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바울이 아무리 책임감이 강하고 믿음의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열심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2~3절을 봐 주십시오.
(2)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
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여기서「지혜와 지식」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원래 지혜도 지식도 첫째로 인간의 지혜와 지식을 의미할 때와 둘째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의미할 때가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특히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의 계시와 연관되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골로새 사람들에게도 역시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더 나아가 신비로운 지혜, 영적이고 주술적인 지혜까지도 의미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지혜와 지식을 얻는다는 것은 아마도 「본다」, 「체험한다」는 말로 대체할 수 있는 그런 의미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 사람들에게 지혜와 지식은 인간을 해방시키고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 여겨졌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과연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그런 해방을 맛볼 수 있을까?” “과연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그런 행복을, 신비로운 체험을 경험할 수 있을까?”하는 식으로 골로새 교인들의 믿음생활 속에서 조금씩 불만이 쌓여갔던 것 같습니다. 그럴싸한 말로 표현하자면 “은혜로 더 충만해지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간과할 수 없는 목마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되지는 못하는 것이 아닌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질병의 치유와 행복과 해방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목마름과 불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라든가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마도 골로새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놀라움을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어? 예수・그리스도가 그렇게 대단한 분이셨어요?”하는 느낌입니다.
골로새 사람들이 날마다 거짓 교사들에게 배운 내용은 아마도 다음과 같이 설명되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말입니다. 오시기는 오셨지만, 어떻게 오셨는가 하면, 그리스도의 영이 누구에게 머물러야 하는지, 그 대상을 찾다가 마침 나사렛에서 온 성실하고 잘 준비된 한 청년을 발견하고, 그 청년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갔어요 (아마,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을 때였을 것이다)”라는 식입니다. 즉 그리스도는 어디까진 영적인 존재, 천사 같은 아이온(영지주의에서 등장하는 신적 존재들을 부르는 호칭)과 같은 존재라는 이해입니다. 이런 이해를 갖게 되면, 우연히 그곳에 있던 나사렛 청년이 선택된 것이라, 결국 누구나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 됩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주장 뒤에는 헬라 철학에서 비롯된 영육이원론이 있었습니다. 영육이원론이란 하나님이 악을 창조하실 리가 없으므로 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어떤 영적 존재에 의해, 혹은 천사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은 거룩하고 육은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골로새 사람들도 그런 영향을 받아 성경의 가르침이 영육이원론을 말하는 것처럼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일서 4장 1~3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한 청년에게 들어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우리 인간과 같은 육체를 취하시고, 여자에게서 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 지내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은 중보자로서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속량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3) 지혜와 지식이 충만하신 그리스도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신앙고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참 인간이시다(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15)」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인으로서 하나님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여자로부터 아기로 태어나서 성장해 가셨습니다. 그리고 지혜와 지식에 있어서도 역시 성장해 가셨다는 것을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즉, 성경에 기록된 것은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이라기 보다는 예수님 자신이 지식에 있어서 아직 모르는 것이 있고, 성장과 함께 지식이 더해지는 예수님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에는 어린아이 예수가 강건하게 자라며 지혜가 많아지고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누가복음 2장 52절). 성경의 이런 기사는 거짓 교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사렛 예수가 결코 하나님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지 않으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안에서 제한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는 전능하신 예수님이 아니라 음식과 음료가 필요하고, 목이 마르고, 여행 중에 피곤해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도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도 앞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안에서 제한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후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18절과 빌립보서 2: 9~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8장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빌립보서 2장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즉, 예수님은 이전에 로고스로서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충만함과 영광을, 부활 후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처음으로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역은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주님이시며 군주이십니다. 하늘 오른편에 오르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여전히 우리를 중보하는 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시지만, 더 이상 희생제사를 드리는 사역이 아니라, 자기에게 속한 모든 자들을 모아, 자신의 모든 원수를 자기 발아래 둘 때까지 다스리는 왕으로서의 사역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오른편에서 한가롭게 쉬기 위해 승천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것은 자기 백성을 위해 거처를 마련하시고, 자신의 온전한 순종으로 얻은 지혜와 지식의 충만함을, 지상에 있는 자기 백성인 교회에 채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육신을 취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높이 들리워 올려지신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을 하늘로 높이 올리시기 위함이고, 육신을 취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충만함을 얻으신 것은, 교회를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충만하게 채우시기 위함입니다. 에베소서 4장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절대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충만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골로새 사람들처럼 더 충만해지기 위해 그리스도 외에 금식기도라든가,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서 갈급함을 채우려 하거나, 그리스도 외에 지식과 지혜를 구하거나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골로새서로 돌아가서 2장 4~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그리스도 가운데
4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비밀이요, 그리스도야말로 지혜와 지식의 보화라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면 바울이 왜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렇게 열심을 낼 수 있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간과 같은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중보자로서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속량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단순한 영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중보자가 되기 위해 육신을 입으시고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도 완전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시기에 우리에게 예수님은 비밀이시며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되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당시 이단적 가르침이 기승을 부리던 골로새 지방에서도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할 수 있게 되고, 결코 속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의 골로새 교인들에 대한 목회적 격려를 읽을 수 있는데, 그것은 5절의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기쁘게 봄이라」라는 말씀입니다. 골로새 교회는 분명 이단의 가르침에 흔들리고 있지만, 바울의 눈에는 분명한 그리스도의 교회이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리스도의 교회이기 때문에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 일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6~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여기서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라고 말합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이외에 곳에서 유혹되지 말고,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 나날이 성장하고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7절에서 자세히 말씀드리면,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라는 말은 완료형 수동태로 되어 있고, 반면,「세움을 받아」「믿음에 굳게 서서」라는 말은 계속을 나타내는 현재형 수동테로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너희는 뿌리를 내렸다」, 즉 「너희는 예수님과 결합되었다」는 뜻입니다. 「결합되었다」라는 것은 완료형입니다. 「세움을 받아」「믿음이 굳게 서서」라는 것은 지금 현재 진행형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지금도 그리스도라는 토대 위에 조금씩 돌을 쌓아 올려 견고하게 결합되어 가고 있는, 그 계속적인 의미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토대에서 벗어나 다른 곳을 기초로 삼는다면 교회는 결코 설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며 삽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내면에서 왠지 모르게 넘치는 감사가 솟아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오늘의 본문에서는, 이단의 가르침에 흔들리는 골로새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목회적 배려를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중보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사람으로 교회에 주어졌습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교회의 비밀이며, 교회의 지혜와 지식의 보화이며, 교회가 충만하게 되는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으로부터 우리는 한시도 눈을 떼지 말고, 우리의 현실 속에서 주어진 각자의 싸움에 최선을 다하는 자가 되도록 합시다.
【序】
神様は近寄り難い光の中に住まわれ、誰一人神を見たことがなく、見ることもかないません。神は永遠から変わることなく、時間と、空間と、そしてすべての被造物の上に超越されているお方です。従って、御子と御霊以外には、誰も神様を知ることができません。しかし、神様はご自身の充満がキリストの中で、肉体に住まわれるようにされました。そしてキリストの体である教会をご自身の神殿とし、そこを住処となさいました。この驚くべき真理をコロサイの人々に説明するために獄中にいるパウロは切に祈りながら、あらゆる牧会的な配慮をし、尽力をしています。2章1節をご覧ください。
【1】. パウロの格闘
“わたしが、あなたがたとラオディキアにいる人々のために、また、わたしとまだ直接顔を合わせたことのないすべての人のために、どれほど労苦して闘っているか、分かってほしい。”
1節で、パウロは「まだ直接顔を合わせたことのないコロサイの人々のために、どれほど労苦して闘っているのか、分かってほしい。」と訴えていますね。注目すべき言葉は「闘って」という言葉です。1:29にも出てまいりましたが、このギリシア語は、「競技する」、「格闘する」という意味です。パウロは神さまから与えられた宣教という務めに対する、彼の労苦や尽力のことを言っているのですが、他の書簡でもそうですが、自分の務めに対する尽力や取り組みを、まるでオリンピック競技にでも出場するかのように例えています。東京五輪も間近に迫っていますが、オリンピックや、スポーツの代表選手の場合、選手は国を代表したり、ある地域や県を代表して競技に臨みますね。パウロも自分の尽力と苦難を、あたかも教会を代表するかのように、主の務めに励み、競技に取り組んでいますと語っているのです。私たちもこのパウロの姿勢を見習っ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私たちが今、苦難に直面しているのは、実は神様からの務めであります。私たちが、今日、生かされているのも、実は神様からの務めであります。そのように目の前に置かれている現実に誠実に取り組んでいくということです。私たちのこの世での営みは、すべて総責任者であり、総監督である、イエス様の為に励むということですね。それにしても、パウロが、いくら責任感が強く、信仰の人だと言っても、まだ一度も会っていないコロサイの人々のために、なぜ、ここまで熱心になることができたのでしょうか。2~3節をご覧ください。
【2】. 偽りの教師たちの教え
“それは、この人々が心を励まされ、愛によって結び合わされ、理解力を豊かに与えられ、神の秘められた計画であるキリストを悟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知恵と知識の宝はすべて、キリストの内に隠れています。”
ここでは、知恵と知識という言葉が出てまいります。もともと、知恵も、知識も、第一に人間の知恵と知識を意味する場合と、第二に神の知恵と知識を意味する場合がございました。旧約聖書では、特に神の知恵と知識は、神の啓示と関連し非常に大切にされていました。コロサイの人々にとっても、やはり知恵と知識とは、神から与えられるものであると考えられていたようですが、さらに言えば、神秘的な知恵、霊的で呪術的な知恵さえも意味していました。そのような知恵と知識を得るということは、恐らく「見る」とか、「体験する」などという言葉に置き換えられるようなものであったと思われます。ですからコロサイの人々にとって、知恵と知識というのは人間を解放し、幸いにするものであると考えられていたと推測できるのです。果たして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そのような解放を味わうことができただろうか、果たして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そのような幸いを、神秘的体験を経験できただろうか、という風に、コロサイのキリスト者の信仰生活の中で、少しずつ不満が鬱積されていきました。きれいな言葉で言うなら、「恵みによってもっと満たされたい」ということです。これは現代に生きるキリスト者にとっても、看過することのできない渇きであると言えるでしょう。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経済的に豊かになれないではないか、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病の癒しと幸いと解放を受け取ることはできないではないか、という渇き・不満を持つことがあるからです。ですから、パウロが「神の秘義であるキリストを悟るようになる」ですとか、「知恵と知識の宝はすべて、キリストの内に隠されている」という言葉を聞いた時、おそらくコロサイの人々に、少なからず驚きをもたらしたに違いありません。「え、イエス・キリストって、そんなにすごいお方だったの?」という感じです。
コロサイの人々が日々、偽りの教師たちから教えられている内容は、恐らく次のように説明されていたと思われます。「キリストというのはね、来るには来たけれども、どのように来たのかと言うとね、キリストの霊が誰に留まるのか、その対象を探していた時に、ちょうどナザレ出身の、誠実で、よく準備された一人の青年がいるのを見つけてね、その青年にキリストの霊が入ったんだよ(ほーら、おそらく洗礼者ヨハネから洗礼を受けた時、あの時だと思われるよ)」という具合です。つまり、キリストはあくまで霊的な存在・天使のようなアイオーンのような存在であるという理解です。このような理解に立ちますと、たまたま、そこにいたナザレの青年が選ばれたのであって、結局は、誰でもキリストになれる可能性があることを意味します。偽預言者たちの主張の背後には、ギリシア哲学から起因している霊肉二元論がありました。霊肉二元論とは、神様が悪を創造されるはずがないので、悪に満ちているこの世界は、神様による創造ではなく、ある霊的存在によって、或いは天使によって創造されたと考えます。そして、霊は聖く、肉は汚れていると考えるのです。コロサイの人々も、そのような影響を受けて聖書の教えが霊肉二元論を言っているかのように誤解してしまいました。しかし1ヨハネ4:1~3には、次のようなみ言葉があります。
“愛する者たち、どの霊も信じるのではなく、神から出た霊かどうかを確かめなさい。偽預言者が大勢世に出て来ているからです。イエス・キリストが肉となって来られたということを公に言い表す霊は、すべて神から出たものです。このことによって、あなたがたは神の霊が分かります。イエスのことを公に言い表さない霊はすべて、神から出ていません。これは、反キリストの霊です。かねてあなたがたは、その霊がやって来ると聞いていましたが、今や既に世に来ています。”
神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が、霊的に、一人の青年に入ったのではありません。イエス・キリストが実際に私たち人間と同じ肉を取られ、女から生まれ、十字架に掛かられ、葬られ、三日目に復活されたのは、仲保者としてご自分に属する者たちを贖うためであったのです。
【3】. 知恵と知識の充満であるキリスト
神が肉を取られた、ということについてもう少し詳しく見ていきますと、私たちの信仰告白において、「イエス・キリストはまことの神であると同時に、まことの人間である(ハイデルベルク問15)」と告白しています。完全な神であると同時に完全な人間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イエス様は、成人としての神の姿で、この世に来られたのではなく、女から、赤ちゃんとして生まれて、成長して行きましたね。そして知恵と知識においても、やはり成長して行かれたということが聖書から読み取れます。ということは、聖書に書かれているのは、全知であられるイエス様というよりも、イエス様ご自身、知識としてまだ知らないことがあって、成長と共に知識が増し加えられていくイエス様の姿が描写されています。例えばルカによる福音書には、幼子イエスはたくましく育ち、知恵が増し、背丈も伸び神と人とに愛されたと書かれています(ルカ2:52)。聖書のこのような記事は、偽教師たちが考えるように、ナザレのイエスが決して神ではなく、普通の人間に過ぎ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それでは、なぜ、イエス様は全知ではなかったのでしょうか。それは、イエス様は完全なる神であられましたが、神の知恵は、人として来られたイエス様の中で制限されていたということです。同様に、聖書には、全能のイエス様ではなく、食べ物と飲み物を必要とされ、のどが渇き、旅をする中で疲れを覚えられるイエス様の姿が描写されています。さらに私たちと同じように悪魔から試みを受けられました。しかし、だからと言って、イエス様も罪を犯す可能性があった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これも先ほどと同じように、神の全能の力が、人として来られたイエス様の中で制限されていたということです。ところが、復活された後に、イエス様は天と地の一切の権能を授かったと言われました。マタイ28:18とフィリピ2:9-10をご覧ください。
マタイ28:18
“イエスは、近寄って来て言われた。「わたしは天と地の一切の権能を授かっている。だから、あなたがたは行って、すべての民をわたしの弟子にしなさい。”
フィリピ2:9-10
“このため、神はキリストを高く上げ、あらゆる名にまさる名をお与えになりました。こうして、天上のもの、地上のもの、地下のものがすべて、イエスの御名にひざまずき、”
つまり、イエス様は、以前、ロゴスとして御父と共に持っていた神の知恵と知識の充満と栄光を、復活後に、肉の体を持つ人間として、初めてお受けになったということです。従って復活されたイエス様の働きは、もうこれ以上、僕ではなく、主であられ、君主であられます。天の右に上られたキリストの働きは、依然として私たちをとりなす祭司の働きを担っていますが、もはや犠牲祭事を献げる働きではなく、ご自身に属するすべての者たちを集めて、自らの全ての敵をご自身の足元に置くまで治められる王としての働きとなりました。イエス様は、父の右に、どっこいしょっと、ゆっくり休むために昇天されたのではありません。天に上げられたのは、そこで、ご自身の民のために住まいを備え、ご自身の完全な従順によって獲得した知恵と知識の充満を、地上にいる、ご自身の民である教会に満たすためであったのです。繰り返しますと、肉をお取りになったイエス様が天に高くあげられたのは、キリストに結び合わせられている者たちを、天に高く上げるためであり、肉をお取りになったイエス様が、神の満ち満ちた充満を獲得されたのは、教会を神の満ち満ちた充満に満たすためであったのです。エフェソ4:10をご覧ください。
“この降りて来られた方が、すべてのものを満たすために、もろもろの天よりも更に高く昇られたのです。”
ですから、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以外によっては、断じて神のもとに引き寄せら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また、イエス・キリスト以外によっては、断じて神の知識の充満に与ることもできません。コロサイの人々のようにさらに満たされるために、キリスト以外から断食祈祷ですとか、禁欲的生活を通して渇きを潤してもらおうとしたり、キリスト以外から知識や知恵を求めたりする理由は、全くないということです。コロサイ書に戻りまして2:4~5節をご覧ください。
【4】. キリストの中で
“わたしがこう言うのは、あなたがたが巧みな議論にだまされないようにするためです。わたしは体では離れていても、霊ではあなたがたと共にいて、あなたがたの正しい秩序と、キリストに対する固い信仰とを見て喜んでいます。”
キリストこそ神の秘義であり、キリストこそ知恵と知識の宝であるという、その言葉の意味が理解できますと、パウロがなぜ、コロサイ人に対してそこまで熱心になることができたのか少しずつ分かってきます。キリストが私たち人間と同じ肉となって来られ、十字架に掛かられ、復活されたのは、仲保者としてご自身に属する者たちを贖うためでありました。キリストは単なる霊的存在ではなくて、私たちの仲保者となるために肉を取られ、完全な神でありながら、完全な人となられたのです。キリストが全き神であり、全き人であるが故に、私たちにとって、イエス様は秘義であり、知恵と知識の宝となるのです。このことをきちんと抑えているなら、当時、異端の教えが猛威を振るっていたコロサイ地方においても、偽りの教えを分別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決して騙されることはないのです。パウロの、コロサイ人への牧会的な励ましを、この箇所から読み取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が、それは、5節の、「体では離れていても、霊ではあなたがたと共にいて、…喜んでいます。」という言葉です。コロサイの教会は確かに異端の教えに揺さぶられていても、パウロの目には、れっきとしたキリストの教会であり、キリストに結合された、キリストの教会であるために、聖霊によって一つになり、一致が与えられると言っているのです。続いて6~7節をご覧ください。
“あなたがたは、主キリスト・イエスを受け入れたのですから、キリストに結ばれて歩みなさい。キリストに根を下ろして造り上げられ、教えられたとおりの信仰をしっかり守って、あふれるばかりに感謝しなさい。”
ここで、パウロはコロサイ人に「あなた方は、キリスト・イエスを主として受け入れたのですから」と言っています。コロサイ人はイエス様を自分たちの主として受け入れました。ですからキリスト以外の所から誘惑されることなく、キリストに結ばれて日々成長して建てあげら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7節で、細かいことを言いますと、「深く根を下ろすようにされて」という言葉は完了形の受動態になっていて、一方、「造り上げられなさい」「信仰が強固にされなさい」という言葉は継続を表す現在形の受動態になっています。どういうことかと言いますと、「あなた方は根を下ろした」、つまり「あなた方はイエス様と結合されました。結び合わされました。」というのは完了形であり、「造り上げられなさい」、「建てあげられなさい」と「信仰が強固にされなさい」というのは今、現在進行中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教会は今なお、キリストという土台の上に少しずつ石が積み上げられ、強固にジョイントされつつある、その継続的な意味あいが表現されています。この土台から外れて他の場所を基盤とするのなら、教会は決して立ち行かないということです。私たちはキリストの中にあって、成長していき、キリストの中にあって、歩むことができることを常に意識してまいりましょう。そのようにするときに、私たちの内側から何故か、あふれるばかりの感謝が湧き出るようになるのです。
【結論】
本日の箇所では、異端の教えに揺さぶられるコロサイの人々に対してパウロの牧会的な配慮を見てまいりました。イエス・キリストは仲保者としての働きを全うするために、完全な神でありながら、完全な人として、教会に与えられた。そしてこのイエス・キリストこそが、教会の秘義であり、教会知恵と知識の宝である、教会が充満にされる源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このイエス様から私たちは一時も目を離すことなく、私たちの現実の中で与えられている、それぞれの闘いに尽力していく者とならせていただきま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