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年01月17日「御言葉によって主に養われよ 말씀으로 주께 공급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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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言葉によって主に養われよ 말씀으로 주께 공급받으라

日付
説教
川栄智章 牧師
聖書
ペトロの手紙一 1章22節~2章2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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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句のアイコン聖書の言葉

1:22あなたがたは、真理を受け入れて、魂を清め、偽りのない兄弟愛を抱くようになったのですから、清い心で深く愛し合いなさい。
1:23あなたがたは、朽ちる種からではなく、朽ちない種から、すなわち、神の変わることのない生きた言葉によって新たに生まれたのです。
1:24こう言われているからです。「人は皆、草のようで、/その華やかさはすべて、草の花のようだ。草は枯れ、/花は散る。
1:25しかし、主の言葉は永遠に変わることがない。」これこそ、あなたがたに福音として告げ知らされた言葉なのです。
2:1だから、悪意、偽り、偽善、ねたみ、悪口をみな捨て去って、
2:2生まれたばかりの乳飲み子のように、混じりけのない霊の乳を慕い求めなさい。これを飲んで成長し、救われ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
2:3あなたがたは、主が恵み深い方だということを味わいました。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ペトロの手紙一 1章22節~2章2節

原稿のアイコン日本語メッセージ

【序】

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上から新しく生まれ変わった人々は、神が良いお方であり、聖なる方であるのと同じように、自然に悪から離れ、聖さへの道を追求するようになっていきます。しかし、先週も学びましたように、聖められること、つまり聖化というものは、私たち自身がなしていく業ではなく、聖霊が私たちの信仰生活を通して、なしていく業であります。神の選びの民であるユダヤ人は、割礼を施し、神の選ばれた民というその外的な特権にも関わらず、聖められるどころか、逆に、心は頑なになり、律法に違反し、罪を犯して、全面的に腐敗して行き、そして、洗礼者ヨハネによる悔い改めの洗礼が必要とされました。つまり、律法を一生懸命に文字的に守り行うことによっては、新しく生まれ変わ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す。新しく生まれ変わるためには、身体全体が水の中に浸されて、再び起き上がるかのように、悔い改めを通して、過去の人生と決別し、心が柔らかくされ、心の割礼を受け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クシュ人がその皮膚の色を変えることができないように、豹がその斑点の模様を変えることができないように、ユダヤ人であれ、異邦人であれ、すべての人は、本性上不道徳なために、汚れているがために、人間の心の中から出て来るものは、専ら悪いものばかりでした。元の木が悪い木であるために、そこから結ばれる果実もやはり、悪いのであります。良い実を結ぼうとするためには、まず、良い木に結ばれる必要があり、これは神の一方的な恵みによって、上から新しく生まれ変わる、その恵みに与る以外には、道はありませんでした。

【1】. キリスト者が上から新しく生まれ変わったことは朽ちない種による。

上から新しく生まれ変わることを、ペトロは朽ちない種によって生まれると表現しています。種は小さいですが、その中には大変な生命力を秘めていますね。しかしペトロは、植物の、やがて朽ちていくような種ではなく、種は種でも、「朽ちない種によって、あなた方は新しく生まれたのですよ!」と言っています。朽ちない種と言いますから、どれだけ生命力を秘めていることでしょうか。22~23節をご覧ください。

“あなたがたは、真理を受け入れて、魂を清め、偽りのない兄弟愛を抱くようになったのですから、清い心で深く愛し合いなさい。あなたがたは、朽ちる種からではなく、朽ちない種から、すなわち、神の変わることのない生きた言葉によって新たに生まれたのです。”

それでは、この「朽ちない種」とは一体何かと言いますと、それは神の永遠に変わることのない「生きた御言葉」だということです。ペトロは以前にも1:3において、「生ける希望」という表現を使っていますが、本日のこの箇所では「生ける神の言葉」という表現を使っています。生けるというのは、生命力を持っているとか、死から蘇らせ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ふうに理解してください。私たちが普段放つ人の言葉でさえ、そこに不思議な力が宿っていると考えられて、日本では昔から「言霊」とか呼ばれたりしますから、いわんや人格を持っている神様の御言葉には、どれほどの超越的な力が宿っていることでしょうか。神の言葉というのは、私たちがただ、その真理の御言葉を「フムフム」と傍聴する対象のように、ただそれが、私たちの外にとどまっているだけではなく、私たちに中に植え付けられていると聖書は言います。ヘブライ書8:10(10:16)の御言葉によるなら、私たちの心の板に刻まれていると書かれています。実に、神は、この力ある超越的な御言葉によって無から有を創造され、天地万物を創造されたのです。私たちが上から新しく生まれ変わったのは、この神の朽ちない種によるものであり、つまり、昔も今も未来も永遠に変わることのない、アルファでありオメガである生ける御言葉によって新しく生まれ変えられた、再創造されたということです。1:24~25節にかけて、ペトロは、イザヤ書の御言葉を引用しながら、朽ちていく種と、朽ちることのない種を比較しています。“人は皆、草のようで、/その華やかさはすべて、草の花のようだ。草は枯れ、/花は散る。しかし、主の言葉は永遠に変わることがない。”人間は言ってみれば、草のようであり、朽ちていく種によって一度、肉的に母の胎から生まれてまいります。人間の繁栄は草の花に過ぎません。この世において、いかに権力者が自分の勝利を勝ち誇っても、やがては花のように散って消え去り、草自体、枯れてしまうと言うのです。しかし、上から新しく生まれ変わるということは、朽ちない種によって、神の生ける御言葉によって、霊的に生まれ変わるということであり、アダムの子孫としては一度死んで、もはやアダムの子孫に属するものではなく、キリストに属する者として、生まれ変わった(再創造された)という事です。この種が朽ちない種であるが故に、信者は霊的な人として、永遠の命に生まれ変わったのであります。旧約聖書で、イスラエルの民が荒れ野において天からのマナを食べて困難を乗り越えたことができたのは、人がパンだけで生きるのではなく、神の言葉によって生きることを教えられるためであったと、申命記には書かれています。申命記8:3をご覧ください。

“主はあなたを苦しめ、飢えさせ、あなたも先祖も味わったことのないマナを食べさせられた。人はパンだけで生きるのではなく、人は主の口から出るすべての言葉によって生きることをあなたに知らせるためであった。”

つまり、荒れ野という厳しい環境の中で、イスラエルの民が、不思議に40年間も生きながらえることができたという奇跡的な出来事は、その奇跡を通して、人はパンだけでいきるのではなく、主の口から出る御言葉によって生きることを教えるためであったというのです。さらに、神のロゴスが人となって来られたイエス様も、同じようなことを言われました。ご自身のことを、信者を永遠に生かすことのできる、天からのパンであると言われたのです。ヨハネの福音書6:51をご覧ください。

“わたしは、天から降って来た生きたパンである。このパンを食べるならば、その人は永遠に生きる。わたしが与えるパンとは、世を生かすためのわたしの肉のことである。”

荒れ野における天から降ってきたマナとは、やがて来られるイエス・キリストを予表していたという事が分かります。そして私たちが聖餐式で毎回パンを食べますね。あれは御言葉であられるイエス様を食べているのです。ですから、キリスト者がどのような困難の中にあっても、不思議に罪悪感と恐れから解放され、平安でいること、慰めと喜びで不思議に満たされているのは、朽ちない種である神の御言葉によって、新しく生まれ変わったため、そして永遠に生きる者とされたためであるということを、私たちは第一に覚えたいと思います。

【2】. キリスト者は乳飲み子のように、日々霊の乳を飲んで、救いが完成する

次に2:1~2節をご覧ください。

“だから、悪意、偽り、偽善、ねたみ、悪口をみな捨て去って、生まれたばかりの乳飲み子のように、混じりけのない霊の乳を慕い求めなさい。これを飲んで成長し、救われ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

この時、ペトロは、手紙の読者たちについて、洗礼を受けたばかりの若くて、或いは、まだ未熟なクリスチャンであると想定していた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なぜなら、この手紙を受け取った人々のうちで、ある人々は30年以上のベテランのクリスチャンだったからです。ですからこの文脈における「混じりけのない霊の乳」というのは、初歩的なクリスチャンの教えを指し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確かに、パウロの書簡では、「いつまでも乳ばかり飲んでいないで、固い食物を食べなさい」と勧めて、乳というのが、「初歩的な教え」を指していると考えられますが、この文脈において、霊の乳とは、ペトロによって語られた、福音そのもの、宣教の御言葉を指しています。キリストの御言葉です。旧約時代であれば、神の言葉と言えば、預言によって、ウリムとトンミムによって、幻や夢によって与えられるものだと考えられていたかもしれませんが、新約時代においては、神の御言葉は、使徒たちの告げ知らされた福音によって、彼らによって書き記された聖書の言葉によって、与えられるということです。この御言葉によってキリスト者は成長していくわけですが、それでは、その成長の目標は何かと言うと、2節の最後を見ますと「救い」であると書かれています。キリスト者は既に信仰によって聖なる者とされ、既に信仰によって救わたのではなかったのでしょうか?と思われる方もおられるでしょう。確かにその通りです。救いは既に始まっています。しかし、未だに「全き救い・全人的な救い」の完成には至っていないということです。心に撒かれた種が100倍60倍30倍の実を結ぶよう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天国に至るまで、信者は聖化されていく過程に置かれているというふうに理解してください。天国に積まれている資産を間違いなく信者に相続させるように、聖霊によって練り清められ、守り導かれるという過程です。出エジプトをした民がすぐに約束の地に入ることができたのではなく、荒れ野において信仰のトレーニングをしてから約束の地に入れられたように、キリスト者も、この地上で、旅人のように、巡礼者のように導かれる間に、少しずつ聖化されていき、少しずつイエス・キリストに似た者とされて、道徳的にも清められていき、やがて名実共に聖なる者とされるのです。1ヨハネ3:2には次のように書かれています。

“愛する者たち、わたしたちは、今既に神の子ですが、自分がどのようになるかは、まだ示されていません。しかし、御子が現れるとき、御子に似た者とな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ます。なぜなら、そのとき御子をありのままに見るからです。”

ですから、私たちは倫理的にも聖くな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兄弟姉妹を清い心で深く愛し合い」、「悪意、偽り、偽善、ねたみ、悪口をみな捨て去りなさい」と勧められています。このように勧めるのは、たとえ私たちが新しく生まれ変わり、聖なる者とされたとしても、この地上で生きる間、罪が決して信者たちから離れることがないからです。用心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ところで、2:1節の「悪意、偽り、偽善、ねたみ、悪口」とありますが、これらは、共同体の内に向けて、このような悪い態度が見受けられたのか、或いは共同体の外に向けて、このような悪い態度が見受けられたのか、はっきりしませんが、当時の状況を考えるなら、彼らキリスト者を迫害する共同体の「外の人々」に対して持っていた態度であっただろうと推測されます。なぜなら、共同体の外にいる人々がキリスト者に偏見を持ち、キリスト者をいじめたり、迫害していましたが、そのような者に対し、悪に対し悪をもって復讐するのではなく、悪に対し善をもって対応するように、そういったものを捨て去り、ただ乳飲み子のように御言葉の乳を慕い求めなさいと言っているように推測されるからです。想像してみていただけたらと思いますが、乳飲み子は、まだ良く目が見えない時から、母親の乳房を探し当てて、その乳をものすごい勢いで吸い出します。しかもそれを2~3時間ごとに繰り返しますから、乳を飲ませて、やっと寝付いたかなと思っても、またすぐに乳が欲しいと泣き叫びますので、母親は夜中に何度も何度も起こされてしまいます。ペトロが言わんとしているのは、御言葉が、そのように永遠に変わることのなく、生命力を持っていて、私たちを生かす、混じりけのない霊の乳であるのなら、私たちは、自分から積極的に神様の養いを求めて、熱心にそれを慕い求め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神様の御心を行おうとする者は、あたかも鹿が涸れた谷を彷徨い歩き、水を求めるように、神の御言葉である霊の乳を、渇きをもって、乳飲み子のように求めるべきです。御言葉は朽ちない神の種として信者の心の中で、恵みと真をもって治めるようになり、新しい生命の原理がその中に留まり、その原理は、もはや信者が罪を犯すことが出来ないように導いてくれるからです。この新しい生命は、私たちを日々新しくし、そして新しい力によって満たしてくださるのです。

【結論】

私たちは変わることも、朽ちることのない、永遠の命をもった「生ける種」によって、上から新しく生まれ変わりました。その心の撒かれた種を受け留めて、信仰によって救われましたが、なお、私たちは、全き救いの完成に到達するように、積極的に御言葉の乳を慕い求め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事です。なお、聖化の途上に置か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毎日聖書を読んで、或いは祈りを捧げて、或いはリジョイスなどの、御言葉の黙想を通して、引き続きイエス様と交わっ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事です。私たちの心の中に撒かれたその朽ちない種は、からし種のように小さいものかもしれませんが、やがてそれが大きな木となって豊かな実を結ぶように、そして、少しずつイエス様に似る者として変えられるように、私たちは聖霊に導かれながら、この世の歩みを全うしていきましょう。

原稿のアイコンハングル語メッセージ

말씀으로 주께 공급받으라

2021년 1월 17일 센겐다이 교회 주일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베드로전서 1장 22~2장 2절

서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이 선하시고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자연히 악에서 떠나 거룩함의 길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난 주에도 배웠듯이, 거룩하게 되는 것, 즉 성화라는 것은 우리 자신이 하는 일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통해 이루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들은, 할례를 행하고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외적 특권에도 불구하고 성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완악해져 율법을 어기고 죄를 짓고 완전히 타락하여 세례 요한의 회개 세례가 필요했습니다. 즉 율법을 열심히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으로는 거듭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거듭나기 위해서는 몸 전체가 물에 잠겼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처럼, 회개를 통해 과거의 삶과 결별하고,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구스 사람이 피부색을 바꿀 수 없듯이, 표범이 얼룩무늬를 바꿀 수 없듯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부도덕하기 때문에, 더럽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오로지 나쁜 것들뿐입니다. 원래 나무가, 나쁜 나무이기 때문에 거기서 맺히는 열매도 역시 나쁜 것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나무에 맺혀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거듭나는 그 은혜를 받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1)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거듭난다(새롭게 출생)는 것을, 베드로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씨는 작지만 그 안에 엄청난 생명력을 품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베드로는 언젠가는 썩어 없어지는 식물의 씨가 아니라, 씨는 씨지만「너희는 썩지 아니할 씨로 거듭났다!」고 말합니다. 썩지 않는 씨라고 하니 얼마나 생명력이 있는 것일까요. 22~23절을 보시겠습니다.

22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렇다면 이「썩지 아니할 씨」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앞서 1:3에서 「산 소망」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죽음에서 다시 살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평소에 내뱉는 사람의 말에도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여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언령(言霊)」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한국에서도「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의 말씀에는 얼마나 초월적인 힘이 깃들어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그저 그 진리의 말씀을 “그렇구나~, 그렇구나~”하고 설렁 설렁 들어 넘기는 대상처럼 우리 밖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심겨져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히브리서 8:10절 말씀에는, 우리의 마음에 이것이 기록되어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실로 하나님은 이 능력의 초월적인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이 하나님의 썩지 아니하는 씨로 말미암아, 즉 예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변함없는, 알파요 오메가이신 살아 계신 말씀으로 거듭난, 다시 창조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썩어질 씨와 썩지 아니할 씨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1:24~25절을 보시겠습니다.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인간은 말하자면, 풀과 같아서 썩어질 씨로 한 번, 육체적으로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아납니다. 인간의 번영은 풀의 꽃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권력자가 자신의 승리를 자랑해도 결국은 꽃처럼 흩어져 사라지고, 풀 자체도 시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난다는 것은 썩지 않는 씨로, 하나님의 살아 계신 말씀으로 영적으로 거듭난다는 것이며, 아담의 자손으로서는 한 번 죽고 더 이상 아담의 자손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속한 자로 거듭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씨가 썩지 아니할 씨이기 때문에 신자는 영적인 사람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신명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8: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8장

3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즉, 광야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신기하게도 40년 동안 살 수 있었던 기적적인 사건은, 그 기적을 통해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로고스가 사람이 되신 예수님도, 자신을 가리켜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신을 믿는 자를 영원히 살릴 수 있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51절을 보시겠습니다.

요한복음 6장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임을 알 수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찬식 때마다 빵을 먹는데, 그것은 말씀이신 예수님을 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신기하게도 죄책감과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평강 가운데 위로와 기쁨으로 신기하게 채워지는 것은, 썩지 않을 씨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서, 영원히 사는 자로 거듭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구원에 이르라

다음으로 2:1~2절을 보시겠습니다.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를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이 때, 베드로는 서신의 독자들을, 세례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혹은 아직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상정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서신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30년 이상 신앙생활을 한 베테랑 그리스도인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문맥에서「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초보적인 기독교의 가르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바울은, 서신에서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장성하여 단단한 것을 먹으라」라고 말했고 「젖」이라는 것이 「초보적인 가르침」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 문맥에서 「신령한 젖」은 베드로가 전한 복음 그 자체, 곧 선교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 예언으로, 우림과 둠림으로, 환상과 꿈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으로, 그들이 기록한 성경의 말씀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그리스도인은 성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성장의 목표가 무엇이냐 하면, 2절의 마지막을 보면「구원」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었고, 이미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닌가요?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구원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온전한 구원, 전인적 구원」의 완성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뿌려진 씨가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합니다. 천국에 이르기까지, 믿는 자는 성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천국에 쌓여 있는 유업을, 확실히 신자가 상속 받도록, 성령께서 연단하여 정결케 하시고 지키고 인도하시는 과정입니다. 출애굽한 백성이 바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믿음의 훈련을 받고 나서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이 세상에서 나그네처럼, 순례자처럼 살아가는 동안 조금씩 성화되어 가고, 조금씩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도덕적으로도 정결케 되어, 이윽고 명실상부 한 거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2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우리는 윤리적으로도 거룩해져야 합니다. 「형제자매를 깨끗한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라」,「악의, 거짓, 위선, 시기, 질투, 악담을 다 버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권면하는 이유는, 우리가 거듭나서 거룩한 자로 거듭났다고 해도 이 땅에 사는 동안 죄는 결코 믿는 자들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2:1절의 「악독, 기만, 외식, 시기, 비방하는 말」이라고 했는데, 이것들이 공동체 내부를 향해서 이런 나쁜 태도를 보였는지, 아니면 공동체 외부를 향해서 이런 나쁜 태도를 보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당시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공동체의 「바깥 사람들」에 대해 가졌던 태도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왜냐하면 공동체 밖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편견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거나 핍박했지만, 그런 자들에게 악에 대하여 악으로 악을 갚는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하여 선으로 대응하듯이, 나쁜 태도들을 버리고 젖먹이처럼 말씀의 젖을 사모하고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입니다. 상상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젖먹이는 아직 눈이 잘 보이지 않을 때부터 엄마의 젖을 찾아내어 그 젖을 엄청난 기세로 빨아 먹습니다. 게다가 2~3시간 마다 이를 반복하기 때문에, 젖을 먹이고 겨우 잠이 들었다고 생각해도 금방 다시 젖을 달라고 울어대기에 엄마는 한밤중에 몇 번이고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베드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말씀이 그렇게 영원히 변치 않고 생명력을 가지고 우리를 살리는, 썩지 않는 영의 젖이라면, 우리는 스스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양식을 구하고 간절히 사모하며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자는, 마치 사슴이 마른 골짜기를 헤매며 물을 찾듯, 하나님의 말씀인 영의 젖을 갈급한 심정으로 젖먹이처럼 찾아야 합니다. 말씀은 썩지 않는 하나님의 씨로서, 믿는 자의 마음속에서 은혜와 진리로 다스리게 되고, 새로운 생명의 원리가 그 안에 머물러, 그 원리는, 더 이상 죄를 짓지 못하도록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이 새 생명은,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하시고 새로운 능력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변하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살아있는 씨」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 마음에 뿌려진 씨를 받아, 믿음으로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온전한 구원의 완성에 이르도록 적극적으로 말씀의 젖을 사모하고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화의 과정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혹은 기도를 드리고, 혹은 리죠이스(일본 그리스도 개혁파 묵상 월간지) 등의 말씀 묵상문서를 통해 예수님과 지속적으로 교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뿌려진 그 썩지 않는 씨는, 겨자씨처럼 작은 씨일지라도, 언젠가는 그것이 큰 나무가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그리고 조금씩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 세상의 행보를 완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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